꽃을 샀다. 올해 들어 두 번째다. 받아본 적도 없던 꽃을 사려니 기분이 묘했다. 2주 전엔 강남역이더니 이번엔 꼬박 9 정거장 차이 나는 구의역이다.

화요일 아침, 홀린 듯 지하철로 향했다. 9-4번 출구엔 어제의 흔적이 가득했다. 스크린 도어가 열리기도 전, 눈앞에 보이는 형형색색의 포스트잇과 꽃. 꽃을 보고 있자니 느껴지는 엄숙함과 슬픔. 매일 마주하는 공간에서, 비슷한 나이의 김 군이, 죽었다는 사실이 주는 충격은 컸다. 그날은 ‘19살’에 눈물을 쏟았다.

사고 나흘 후 김 군의 어머니께서 남기신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 했다. 더는 19세 청년의 문제로 보이지 않았다. 2인 1조 안전수칙은 지켜질 수 없는 문구에 불과했다. 효율이란 왕이 군림하는 피라미드는 불평등한 구조적 문제다. 구의역은 이윤이 우선이라 수단이 돼버린 인간의 문제고, 효율이란 미명아래 장만 된 약자의 문제다. 게다가, “전자운영실과 역무실에 작업 내용을 보고해야 하는데 보고 절차가 생략됐다”니. 개인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인한 과실이라니. 그날은 분노했다.

19살의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마냥 어리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서울 메트로가 자회사를 설립할 때 배제한 직원들을 위해 피켓을 들었던 ‘사람’이다. 그는 문제를 직시하고 소리칠 줄 알았다. 그런 그를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던 나다.

첫 미디어학 수업에서 처음 취재한 인터뷰이가 건설 현장 하청 근로자였다. 떨어지는 돌덩이에 머리를 맞아 뇌를 다쳤던 그를 보고 순간, ‘조심하지’ 생각했었다. 평소엔 힘의 논리에 억압당하는 현실을 타개하자고 외치며 약자의 편인 척 가면을 썼다. 그랬던 나는 오늘, 부끄럽다.

그날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은 게 아닐까. 불편한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나 비정규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이의 말처럼 그는 어린 나였고, 지금의 나이고, 앞으로의 나 아닐까.

그 후로도 수많은 지하철은 내 앞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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