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연재를 시작한 ‘고대인의 밥상’이 이번 학기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기자들은 맛으로 평판이 좋은 30개 밥집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냈다.
안암캠퍼스와 맞닿아 있는 정경대 후문, 참살이길, 정문 앞 제기동까지 정성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밥집은 곳곳에 숨어있었다. 2015년 2학기부터는 세종캠퍼스로 확대해 세종캠 주변 맛집도 소개했다.
본교 주변 밥집은 학교 구성원의 입을 즐겁게 하고, 배를 든든하게 채워줬다. 그동안 고대인의 밥상에 나왔던 가게 네 곳을 재방문해 근황을 묻고, 고대인의 밥상에 실리지 못한 밥집 7곳을 추가로 소개한다 

 
▲ 다시 찾아 근황을 물은 밥집 네 곳의 위치.

 

후배 사랑 가득 담긴 샌드위치

▲ 사진 | 김나영 수습기자 news@

고대인의 밥상 10번째 주인공 ‘프로마치(FROMAQI)’를 다시 찾았다.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인 ‘페스토 치킨 샌드위치’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외국인 손님도 여럿 보였다. 프로마치만의 특제 페스토 소스는 바질을 빻아 올리브유, 치즈, 잣 등과 함께 갈아 만든 녹색의 이탈리아 소스로 아삭아삭한 질감이 특징이다. 페스토 소스에 닭가슴살을 버무리고 싱싱한 토마토와 함께 프로마치의 자부심인 브리치즈를 잘라서 넣으면 담백한 맛이 일품인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이산(남·33) 사장은 고대인의 밥상 이후, 더욱 나은 양질의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정기적인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작했다. ‘학생들이 구매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을 받고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만족을 주자’는 경영 철학에서다.

본교 경영학과 04학번 졸업생인 이산 사장은 후배들을 대상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만큼 재학생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가게 안에는 디자인조형학부 학생들의 그림이 곳곳에 걸려있다. 작품들은 모두 디자인조형학부 학생들의 제안으로 기증받은 것이다. 그는 “과제를 하면서 정성 들여 만든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될 곳이 없이 버려지는 고충을 해결하고 싶었다”며 “식사하는 사람들도 그림을 보며 입과 눈을 즐겁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러 본교 재학생들을 아르바이트 쓰고 있는 것도 고대인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이유에서다. 그는 “후배들에게 특별한 애착을 지닌 만큼, 더 좋은 맛과 양으로 보답하겠다”며 “학생증을 제시하면 가격도 할인해주고 있으니 많은 학생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창업 2주년을 맞이하여 6월부터 ‘프로마치 도서관’이라는 작은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이산 사장이 매달 프로마치 음식을 즐기면서 볼만한 책을 추천하고, 손님들에게 추첨을 통해 그달의 책을 나눠주는 이벤트다. 이 사장은 “여건이 된다면 뮤지컬 등의 공연표를 나눠주는 이벤트도 기획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오늘도 프로마치는 삼촌처럼 학생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김나영 수습기자

 

3대가 만드는 푸짐한 집밥

▲ 사진 | 이명오 수습기자 news@

제기동을 40여 년간 지키며 매일 손수 만든 집밥을 내놓는 식당이 있다. 진미식당과 방영준(남·56) 사장은 8번째 고대인의 밥상으로 소개됐다. “작년 이맘때 고대신문에서 취재한 일이 생각나네요. 우리 가게가 소개된 신문을 단골 학생이 들고 와서 읽었는데 흐뭇하더라고요.”

진미식당의 시작은 단순했다. 40여 년 전, 밥 한 끼 해결하는 것도 힘든 시기에 박영준 사장의 어머니가 식당을 차렸다. 그의 어머니는 백반 메뉴 하나로 식당을 운영했다. 10년쯤 지나자 손님들은 다양한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방영준 사장은 메뉴판에 글자를 추가로 넣으면서 한 가지 다짐했다. ‘매일 신선한 재료로, 주문하는 즉시 음식을 만들자’는 것. 박 사장은 그 다짐에 따라 갓 만든 따끈한 음식과 매일 다른 반찬을 내놓는다. 이를 위해 방 사장 부부는 하루에 두 번씩 경동시장과 청량리시장에서 무거운 장을 봐온다. “자주 오는 손님을 위해 매일 똑같은 반찬을 드릴 순 없으니까요.”

방영준 사장은 낡은 공책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가게 외상장부였다. 장부엔 학과별로 학생 이름과 액수가 적혀있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에게 흔쾌히 외상을 해줬던 그다. “한 학생이 직장을 얻고 외상값을 갚으러 왔었어요. 난 기억도 못 하고 있는데 말예요. 외상값을 떠나 다시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반가웠어요.”

방영준 사장은 혼자 밥만 먹고 가는 학생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과거에 학생들이 선후배 간 여럿이 식당을 찾아와, 그와 술자리 갖는 일이 잦았던 기억이 나서다. “식당 일을 하다 보면 예전보다 학생들 사이에 정이 많이 사라진 거 같아요. 학생들이 서로 두터운 우정을 쌓았으면 좋겠어요.”

최근 진미식당에는 새로운 얼굴이 보인다. 바로 방영준 사장의 아들이다. 그는 식당일을 돕고 있는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식당을 운영할 예정이다. “젊은 아들이 운영하는 만큼 음식도 학생들 입맛에 맞게 진화할 겁니다. 아들이 예전의 저처럼 학생들과 잘 어울릴 테니, 여러분도 진미식당 많이 사랑해주세요.”

김태우 수습기자

 

감사의 마음을 감자탕에 담다

▲ 사진 | 이명오 수습기자 news@

광주식당은 ‘고대인의 밥상’ 다섯 번째 주인공이다. 감자탕의 맛과 양으로 고대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식사하던 중국인 송의민(宋依敏, 경영대 경영15) 씨는 “한국에 와 처음 접한 음식이지만 맛있고 고기도 많아 한 달에 두세 번 방문한다”고 말했다. 평일 늦은 오후 광주식당 벽 한 켠엔 본지 기사가 벽에 자랑스레 걸려있다. 사장 편경선(여·41) 씨 부부가 손수 바른 벽과 보글보글 끓는 감자탕 소리가 식당 안을 정감 넘치게 한다.

“2007년 정문에서 장사를 시작한 가게가 올해로 10년이 다 돼가니 고려대에 너무 감사하죠.” 광주식당에 고려대는 ‘감사’다. 편 씨는 말하는 내내 ‘감사’란 단어를 수십 번 내뱉었다. 학생들이 광주식당의 운영철칙인 ‘좋은 재료로, 배부르고 맛있게’를 알고 찾아와줘서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밥집 장사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었는지 장사 시작하고 3년 정도는 손님이 없었어요.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이 하나둘 늘기 시작한 거죠. 저희 집이 삼면이 유리라 바깥이 훤히 보여요. 다른 식당에 학생들이 들어차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애타고 씁쓸했죠. 지금 받고 있는 학생들의 꾸준한 사랑은 과분하지마는 음식에 대한 신조를 알아준 것 같아 감사해요.”

편경선 사장에겐 찾아오는 손님 모두가 오늘의 광주식당을 만든 동력이다. 학생들에게 느낀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는 그다. “중국인 손님이 40% 정도인데, 오늘도 어학원을 다녔던 친구가 다녀갔어요. 이젠 다른 학교에 다니는데 여기까지 찾아와줬더라고요. 기회가 된다면 장학금 기부를 통해 고려대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되돌려 주고 싶어요.”

광주식당의 미래에 관해 묻자 편 씨가 낮은 웃음과 함께 슬쩍 말을 건넸다. “고려대를 대표하는 식당이 되고 싶어요. 많이 노력해야겠지만, ‘고려대’ 하면 광주식당이 되도록 만들고 싶어요.”

나지원 수습기자

 

"좋은 국수로 돌아올게요"

▲ 사진 | 이명오 수습기자 news@

‘가게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오늘로 영업을 중단합니다. 그동안 국수사랑을 애용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고대인의 밥상 11번째 식당 ‘국수사랑’이 5월 30일을 마지막으로 가게 문을 닫았다. 고파스에 올라온 국수사랑의 폐업소식은 아쉬움을 담은 댓글로 가득 찼다. 국수사랑은 이처럼 많은 학생의 사랑을 기억하며 3년의 영업 활동에 마침표를 찍었다.

국수사랑은 푸짐한 양과 저렴한 가격으로 호평을 받아왔다. 서성희(여·58) 사장은 학생들이 많이 오는 만큼 좋은 음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싶었다. 가격과 질을 모두 잡기 위해 매일 아침 경동시장으로 향했다. 업체에서 납품을 받는 방법도 있었지만 서 사장은 직접 식재료를 고르는 길을 선택했다. 납품업체의 여러 제안도 있었지만 서 사장은 단칼에 거절했다. “이익을 늘리기보다 학생들이 맛있게 먹기를 원했어요. 음식을 제대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배운 내 방식으로 음식을 해왔죠. 제가 내놓은 음식을 학생들이 많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서성희 사장은 딸, 여동생과 함께 식당을 운영했다. 특히 지적 장애가 있는 딸이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고 싶었다. 그는 딸이 식당에서 서빙, 계산 등을 하며 사회에 적응해가는 과정에 큰 만족을 느꼈다고 했다. “다만 딸이 지적 장애가 있어 손님들이 불친절하다고 느꼈을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해요. 그래도 딸과 여동생이 함께 식당을 운영하니 굳이 종업원을 고용해서 속 썩을 일은 없었죠.”

서성희 사장은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없지만, 고대 근처로 돌아오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돌아오게 된다면 더 넓은 곳에서 더 좋은 음식을 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학생들이 보여준 사랑에 언젠가는 보답하고 싶다는 서성희 사장. 국수사랑의 갑작스런 마침표가 고대생과 서성희 사장 모두에게 기쁨의 느낌표로 돌아올 날을 기다려본다.

이민준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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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고대인의 밥상에 30개의 밥집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그간 실리지 못한 밥집 7곳을 추가로 소개한다.

 

무더위를 날리는 얼큰한 우동

▲ 사진 | 김나영 수습기자 news@

고려대역 3번 출구를 지나 회기 방향으로 10여 분을 걷다 보면 유독 한 가게의 간판이 눈에 띈다. 주변의 화려한 간판들 사이 오래돼 색마저 변한 간판.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이곳은 음식점 ‘돌냄비열우동’이다. 이 가게는 고덕선(남·48), 김윤경(여·44) 씨 부부가 8년째 운영하고 있다.

기본 메뉴인 열우동을 시키면 날달걀, 찬밥, 그리고 돌 냄비에 펄펄 끓어오르는 우동이 나온다. 날달걀을 우동에 넣고 국물부터 한 숟갈 떠본다. 입안을 단번에 둘러오는 얼큰함에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다. 이번엔 숟가락에 국물과 우동 면, 숙주를 올려 한입에 먹어본다. 면발과 숙주에 스며든 국물은 한층 더 혀를 자극한다. 이때 반쯤 익은 달걀을 먹으면 얼얼해진 혀가 금세 진정된다. 면발을 다 먹을 때까지도 여전히 뜨거운 국물에 찬밥을 말면 한 끼를 알차게 먹을 수 있다.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은 덕분에 끝 맛도 깔끔하다.

돌냄비열우동의 음식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 부부의 고민이 담겨 있다. 열우동은 뜨거움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사기그릇이 아닌 돌 냄비에 담긴다. 재료도 백화점에 납품되는 질 좋은 면과 매일 경동시장에서 사 오는 싱싱한 채소만 고집한다. “한번은 이공계 학생이 택시를 타고 와 우동을 먹고 간 적이 있어요. 정말 고맙죠. 찾아와주는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보장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우동 면도 백화점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다는 A급 면을 고집하는 거죠.”

이열치열. 다들 한 번쯤 뜨거움에서 시원함을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더위에 지칠 때 열우동으로 시원하게 땀 한 번 빼보는 것도 색다른 피서법이 될 것이다.

서주희 수습기자

 

색다른 도우는 6월까지만

▲ 사진 | 박윤상 수습기자 news@

피자를 먹을 때면 가장자리를 남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오히려 가장자리가 더 맛있는 피자집이 있다. 바삭한 가장자리에서 피자 도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안암역 2번 출구에서 한 블록 아래에 있는 피자집 ‘르구떼’다. 불어로 ‘다시 맛보다’라는 뜻의 르구떼는 말 그대로 한 번 맛보면 자꾸만 찾고 싶어지는 가게다.

가게에 들어가면 주방 안에 호빵처럼 동그랗게 뭉쳐진 피자 반죽이 보인다. 22년째 피자를 만들어 온 정의현(남·47) 사장의 작품들이다.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도우는 반죽 후에 24시간 발효하고, 동그랗게 접은 다음 다시 24시간을 발효한다. 이렇게 48시간이 지나야 반죽은 비로소 쫀득쫀득한 도우로 재탄생한다. 정 사장은 차별화된 도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번 도우, 시금치 도우 등 7가지의 다양한 도우는 르구떼가 내세우는 자부심이다. 정 사장은 안암에 있는 카페 공린가에서 커피를 배워 커피 가루가 함유된 번 도우를 발명했다. 정 사장은 “다양한 도우를 개발하는 것은 국내의 몇 없는 반죽 기술자로서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르구떼의 인기 메뉴는 ‘미친감자골드’다. 하얀 마요네즈 소스와 빨간 베이컨 그리고 노란 골드 크러스트의 색감은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낸다. 조각조각 들어간 자그마한 감자 토핑과 그 위에 뿌려진 수북한 치즈의 자태는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였다. 피자를 한 조각 잘라 베어 물자 치즈의 쫀득함과 감자의 담백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적당히 노릇하게 구운 도우는 쫄깃하고 부드러워 식감이 좋다.

6년이 넘도록 피자 맛집의 명성을 지킨 르구떼는 아쉽게도 6월 말 안암에서 사라진다. 르구떼는 현재 건물주와 권리금반환소송 중이다. 정 사장에 따르면 작년 세월호, 메르스로 인한 경기 침체가 영업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이 소식이 5월 22일 전해지자 르구떼를 찾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일주일새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와 같은 학생들의 성원에 정 사장은 “일주일 동안의 행복한 경험이 새로운 용기를 주었다”고 말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만간 사라질 르구떼와의 추억을 위해 피자 한 조각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박윤상 수습기자

 

두터운 참치김밥 인심도 가득

▲ 사진 | 이민준 수습기자 news@

시험 기간 늦은 시간에 출출할 때.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허전해질 때. 지갑은 가벼운데 푸짐한 양이 생각날 때. 항상 생각나는 곳이 있다. “떡볶이 다 먹었네, 좀 채워줄게”하면서 그릇을 가져가는 아주머니. 2005년부터 한결같이 ‘고른 햇살’은 고대인의 출출함과 허전함을 채워줬다.

오후 11시가 지나서 찾은 고른 햇살은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가게를 확장할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김지은(여·36)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재료를 하나하나 직접 준비하기에 양이 늘어나면 감당할 수 없고 직원이 늘어나면 음식 맛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김 씨가 가장 자부하는 메뉴는 참치 김밥이다. 김밥에는 김 씨가 일식집에서 직접 배워온 초밥 소스와 20년 전통의 삼양동 맛집에서 공수해온 참기름이 들어간다. 초밥 소스는 김밥에 새큼함을 더해 감칠맛을 돌게 한다. 처음부터 참치 김밥이 지금의 두께는 아니었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실수로 참치 양을 많이 넣었는데 김밥을 보고 환호하는 학생들을 보고 재료의 양을 늘렸다고 한다. “항상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장사하고 있어요. 제가 돈을 좇았다면 지금의 가격과 김밥 두께는 아마 없었을 거예요.”

김 씨는 대학생의 나이인 25살 때 가게를 시작했다. 고른 햇살에는 그녀의 청춘이 담겨 있다. “대학생들의 청춘을 느낄 수 있는 고연전이 좋아요. 마지막 날 기차놀이 때 학생들이 자주 왔었는데 요새는 안 오더라고요.” 고른 햇살은 항상 고연전 마지막 날 학생들을 위해 음식을 넉넉히 준비해놓고 기다린다. 이번 고연전 기차놀이는 고른 햇살에서 풍족한 인심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박영민 수습기자

 

정갈한 보쌈정식과 매콤한 제육의 이중주

▲ 사진 | 장우선 수습기자 news@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법대 후문 ‘아미가(雅味家)’의 문을 열면 김남주 시인의 ‘옛 마을을 지나며’ 한 구절을 만날 수 있다. 어머니와 함께 본교 구내식당을 시작으로 30년 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소미아(여·51) 사장은 “추운 겨울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를 남겨두는 넉넉한 마음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그 속에는 오랜 기간 가게를 운영하며 지켜온 음식에 대한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제육쌈밥과 보쌈을 시키자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와 각종 밑반찬이 먼저 나온다. 아미가의 된장찌개는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으깨 만든 집된장이 들어가 고소하다. 이어 달구어진 철판 접시 위에 자글자글 소리를 내는 제육은 매콤하면서도 깔끔하다. 아삭하게 씹히는 양파와 함께 고기는 빨간 양념 옷에 잘 버무려졌다. 함께 나온 보쌈은 부드럽고 쫄깃하다. 보쌈은 돼지고기의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생강, 계피, 월계수, 홍계피 등 열 가지 약재를 넣어 50분 동안 푹 삶아 만든다. 매콤달콤한 무말랭이를 곁들이면 씹는 맛이 더해진다.

“소박하고도 정갈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소스와 밑반찬까지 직접 만들고 있다”는 식당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소미아 사장은 “손님들에게 아미가가 양껏 먹을 수 있는 인심 있는 식당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바르다 아(雅)와 맛 미(味). 바른 마음으로 맛을 내는 집을 찾아가 건강한 식사 속에 담긴 따뜻한 마음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장우선 수습기자

 

맛있는 족발을 만드는 황금비율 장국

▲ 사진 | 김해인 수습기자 news@

허영만 작가는 <식객>에서 “장국이 족발의 맛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장국은 족발을 삶는 육수로 족발이 유명한 식당에는 그 집만의 장국이 있다. 황금족발의 박호근(남·58) 사장도 족발의 맛을 한약 재료 8가지와 채소 6가지로 만든 ‘황금비율’ 장국에서 찾았다. 사장에게 장국의 비법을 묻자 그는 장난스럽게 답했다. “배합은 못 알려줘. 대박 비결이니깐. 네가 어디 가서 족발집 차릴지 누가 알아!”

황금족발에서 제일 인기 있는 메뉴는 앞발이다. 보통 족발집은 소·중·대로 나뉘어 앞발과 뒷발이 섞이는 경우가 많다. 황금족발에서는 취향에 따라 온전히 앞발 또는 뒷발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집 족발에서는 돼지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 비결은 가게를 개점하기 전 사장이 공들이는 5시간에 있다. 그날 잡은 돼지에서 잡냄새를 제거하고 피를 빼는 데 2시간, 삶는 데 2시간 반이 걸린다. 마감 시간 전에 족발이 다 팔리기도 하지만 추가로 만들지 않는다. “다 팔려도, 그날 삶아서 최고로 맛있을 때 내놓으려고 더 안 만들어.”

윤기가 흐르는 족발 한 점을 집어 들어 새우젓에 살짝 찍고 입으로 넣어 보면, 야들야들한 갈색 껍데기는 쫀득한 맛에 씹을수록 고소함이 배어 나온다. 촉촉한 비계와 담백하면서도 조금 싱거운 듯 맛있는 속살이 입에서 녹아내린다. 이때 갓 무쳐 나온 부추 무침과 풋고추를 쌈장에 푹 찍어 입안에 넣으면 매콤 짭짜름한 맛이 조금은 심심한 족발의 맛을 달래준다.

황금족발은 신탄진에서 시작해 7년간 운영해왔다. 단골들이 꾸준히 이 집을 찾는 데에는 무심한 듯 친절한 박호근 사장에게도 있다. 손님들에게 관심이 없는 듯 조용히 앉아있다가도 손님들의 이것저것을 살피며 부족한 곁 찬을 채워준다. 덕분에 손님들은 기분 좋은 따스함과 족발의 든든함을 안고 가게를 나선다.

김해인 수습기자

 

한끼 배불리 먹이는 돈까스

▲ 사진 | 심동일 수습기자 news@

바사삭.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튀김옷이 고기를 감싼다. 짭조름한 육즙의 맛과 기름향이 입 안을 맴돈다. 기름내음을 잔치국수 국물로 넘기고 잘 비벼진 덮밥을 한입 뜬다. 고슬고슬한 밥과 담백한 소스가 입속에서 어우러진다. 안암캠퍼스 정문 앞, 고래돈까스다.

메뉴는 하나다. 덮밥과 잔치국수 그리고 큼직한 돈까스 세덩이가 함께 나온다. 이 때문에 ‘가성비 좋은 식당’으로 고대생들에게 정평이 나있다. 남편 이세오(남·58) 씨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김은주(여·52) 씨는 웃으며 “학생들에겐 많이 주고 싶다”며 “양이 적은 것 보다는 배부른 게 낫지 않냐”고 말했다.

양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 두툼하고 부드러운 안심 고기를 얇은 튀김옷이 감싸고 있어서 느끼함이 적고 식감이 좋다. ‘100% 수제’라는 원칙도 맛을 더욱 좋게 한다. 고기 겉면의 먹기 불편한 부분을 걷어내는 ‘표피작업’부터 간이 배게 하는 염질까지 모두 수작업이다. 튀김옷도 당일에 직접 재료를 배합해 만든다. 같은 배합에도 그날의 습도와 기온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서다.

김은주 씨는 “월급이 나오면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돈까스를 먹으러 오던 형편이 어려웠던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자식에게 먹인다’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는 고래돈까스에는 오늘도 손님들로 가득하다.

김희원 수습기자

 

안암에서 맛보는 정통 중국의 맛

▲ 사진 | 심동일 수습기자 news@

“고대생들이 진정한 중화요리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광둥요리인 파인애플 꿔바로우(咕咾肉)부터 베이징요리 경장육사(京酱肉丝)까지 대륙을 대표하는 명채(名菜)를 본교 주변에서도 맛볼 수 있다. 정경대 후문에 위치한 ‘일미옥(一味屋)’이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인 리춘쉐(李春學, 남·48) 사장은 한국에 온지 16년째다. 리 사장은 일찍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14년 간 중국인 손님을 상대로 한 ‘동북관(東北館)’이란 가게로 명성을 얻었다. 그런 그가 안암으로 가게를 옮긴 건 한국에서 오래 장사하려면 한국인 손님을 많이 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2014년, 그는 ‘동북관’을 그만 두고 ‘일미옥’이라는 이름으로 재출발했다. 개업한지 2년 만에 중국 유학생은 물론이고 많은 한국 학생들도 단골손님이 됐다. “대학생들은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또 쉽게 받아들여요. 고대생은 더 그러한 것 같아요. 고려대 주변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예요.”

리춘쉐 사장은 일미옥이 진정한 중화요리를 선보이는 가게라 자부한다. 사장부터 주방장까지 중국인이고 다른 중국집에선 찾을 수 없는 요리가 있어서다. 그 중에서도 리 사장은 특색가지(扒茄子)를 자신 있게 추천했다. 특색가지는 중국 어디서나 쉽게 먹어볼 수 있는 요리지만, 정통의 맛을 내는 건 쉽지 않다. 특색가지는 가지와 돼지고기를 함께 볶는데 이때 불의 세기와 시간이 중요하다. 자칫하면 가지가 느끼해지거나 고기가 타버려서다. 가지는 입안에 들어가면 저절로 녹아버리고 입안에 남아 씹히는 것은 돼지고기뿐이다. 마늘, 부추와 청양고추의 향은 섞이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어 그야말로 오색오미(五色五味)이다.

일미옥의 메뉴는 맛이 좋고 양도 많아 한 사람 한 접시면 충분히 배부르게 먹는다. 요리는 고급이지만 가격은 다른 중국집보다 싼 편이다. “학생들이 돈이 어디 있어요. 다른 음식점에선 비싼 중화요리를 여기에서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었으면 좋겠어요.”

심동일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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