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게이오대(慶應義塾大) 동양사학과 재학 중의 모습
▲ 일본군 학병으로 징집되었을 때 그는 광복군으로 탈출을 계획했다. 한국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 1945년 8월 20일 중국 산둥성 유현에서 광복군 국내정진대원들과 (왼쪽부터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 1953년 대만대학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평교수 시절 그는 대만대, 하버드대, 하와이대, 프린스턴대에서 객원교수 생활을 했다.
▲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열린 국제 세미나. 설립 이후 제2대 소장을 역임하며 연구소의 문호 개방과 연구능력 확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 1982년 9월 3일 고려대 제 9대 총장 취임식에서 연설하는 모습
▲ 고려대가 6년 만에 승리한 1982년 정기전. 안세희 연세대 총장과 함께.
▲ 홍보관 앞에서 학생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한 학생을 제적시키라는 문교부의 요구에 “아이들을 사형집행 하라는데 밥이 먹히는가”라고 고함을 지르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 고대 여주병원 개원식에서의 김준엽 총장. 총장 재임 중 그는 부족한 시설확충을 위한 모금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과학도서관, 법학관, 정경관, 구로·여주 병원, 조치원캠퍼스 제5교육동 및 낙산수련장 등을 신축했다.
▲ 박정희, 전두환 정권 하에서 정부를 비판하였다는 구실로 (1984년 6월 기준) 전국적으로 86명, 고려대에서만 6명의 교수가 해직당했다. 김준엽 총장은 문교부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해직교수들의 복교를 이끌었다. (왼쪽부터 강만길, 김용준, 김준엽 총장, 조용범, 김윤환, 이상신 교수)
▲ 해직 교수의 원적대학 복교, 총학생회 부활 주장, 민주화 시위 관련 학생 징계 거부 등 학원자율화를 요구한 김준엽 총장은 관례적으로 행해지던 교직원자녀 입학이 부정이라는 구실로 문교부에 의해 강제 사퇴당했다. 퇴임식을 겸한 1985년 2월 25일 졸업식. 졸업사를 마친 총장 뒤를 학생들이 따르고 있다.
▲ 총장 사퇴 반대시위는 한 달이 넘도록 이어졌다. 1985년 3월 15일 학생들이 ‘고대혼을 압살당했다’며 관을 메고 본관 주위를 돌고 있다. 후에 김준엽 총장은 ‘총장 사퇴 반대시위’를 ‘독재정권이 준 훈장이자 인생 최고의 영예’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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