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시리아 알레포에서 오므란 다크니시라는 다섯 살짜리 아이가 건물이 무너진 잔해 속에서 구조됐다. 그의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렸지만 이 소년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울지도 않았다. 피가 흐르는 얼굴을 만지다 피 묻은 손을 의자에 쓱 닦을 뿐이었다.

  약 1년 전, 터키의 한 해수욕장에서 조그마한 시신이 발견됐다. 시리아를 탈출한 아일란 쿠르디였다. 아일란은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5년 넘게 싸우는 고국을 떠나던 길에 배가 난파돼 죽고 만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혹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가족과 함께 고국을 떠났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더 나은 세상이 아니었다. 단지 전쟁이 없는 평범한 일상을 원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아이는 세 살배기가 알기에는 아직 이른 죽음을 맞이했다.

  아일란의 사진이 퍼지자 전 세계는 같이 슬퍼했다. 시리아 내전과 난민의 심각성을 깨달은 유럽연합은 적극적으로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을 멈추려는 노력 따위는 없었다. 다크니시의 사진으로 전 세계는 또 다시 슬퍼했다.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던 러시아는 여론을 의식해 유엔의 48시간 휴전 제안에 동의했다. 48시간 동안 알레포에 갇힌 사람들은 구호물자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전쟁을 멈추려는 노력은 없었다.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어른들의 싸움은 계속될 뿐이었다.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그들이 도와주고 있는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 아이와 병원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전쟁 규칙’이 깨진 그 싸움 속에서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다. 6년 동안 5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숨졌다.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전쟁을 멈추지 않는 그들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우리가 다를 게 뭘까. 우리가 아일란과 다크니시를 주목하고 전쟁을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과연 그들은 어른들의 싸움을 그만둘까.

  우리는 그 아이들을 다시 잊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의 사진이 퍼지게 된다면 우리는 기억하는 척 할 거고, 그렇게 된다면 시리아에서는 잠시 포성이 멈추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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