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한가롭고, 누군가에겐 바빴던 지난 여름, 녹지운동장에는 끊임없이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년 정기전에서 쓰라린 패배를 겪었던 고려대 럭비부는 스스로를 위해, 럭비부의 자부심을 위해 연습에 임했다.

  고려대 운동부에게 가장 큰 행사인 정기전. 그 해 운동부 성적은 정기전 결과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름방학 동안 정기전을 대비해 훈련을 진행한 럭비부는 그 무더웠던 여름날에도 계절을 잊고 지냈다.

 

▲ 선수들이 강한 디펜서를 만나는 상황에 대비해 훈련하고 있다. 사진 | 심동일 기자 shen@

 

열정으로 그라운드를 채우는 나날
  녹지운동장으로 올라가는 길, 아이스링크장이 보일 때부터 함성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비가 오는 데도 연습을 하는 건가?’ 의아해질 무렵 굵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유지훈, 겨드랑이 파고들어! 도망 가지마.” “나이스!” “고대, 고대, 고대!” 여러 목소리가 한 데 어우러져 울려 퍼졌다.

  소나기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습한 날씨에도, 럭비부는 개의치 않는 듯 연습에 몰두했다. 공격선수들은 디펜서들을 막으면서 H라인 골대로 들어가 공을 그라운딩하는 연습을 진행했다. 강한 백스플레이를 선보이는 연세대를 뛰어넘기 위한 훈련이었다. 그렇게 50분간 쉬지 않고 그들은 계속 달리고, 던지고, 찼다. 훈련의 강도를 보여주는 듯 옷은 이미 땀으로 가득했고, 운동장은 습한 열기로 달아올랐다.

  “유니폼이 찢어져도 붙어. 몸싸움해서 잡혔는데 계속 잡혀 있을 거야?” “얘들아, 겨드랑이 내주지마 끝까지.” “상대한테 잡혀서 몸 들리면 안 된다, 자세 유지해!” 김용회 코치의 악에 받친 목소리에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더욱 연습에 집중했다.

  급한 마음에 상대의 목 위로 태클을 걸던 한 선수가 김성남 감독에게 포착됐다. “목 위로 잡는 반칙 위험한 거 알아? 몰라? 경기 못 나갈 수도 있으니 조심해.” 럭비 경기의 특성상 몸싸움이 거칠고 체력소모도 심해서 그 과정에서 위험한 실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진규(사범대 체교13, C.T.B) 선수는 훈련 도중 뼈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상반기 경기에 참여하지 못 했다.

  치열한 연습이 끝나고, 선수들은 당일 사용했던 전술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나눴다. “쉬지 말고 한 번에 가야해.” “자세를 낮춰야 상체가 안 들리잖아.” 정부현(사범대 체교13, S.O) 선수는 “우리끼리 의사소통이 잘돼야 정기전에서 잘 뛸 수 있어”라며 긴장한 동료선수들을 다독였다.

 

방학은 오로지 럭비에 집중하는 시간
  럭비부 선수들은 매일 월요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녹지운동장에 모여 자체훈련을 진행했다. 김성남 감독은 패턴(pattern), 옵션(option) 등 과학적인 시스템을 활용해 단계적으로 약점을 보완했다.

  “실수하지 말라고, 그냥 받아쳐.” 언성을 높인 코치의 목소리가 녹지에 울려 퍼진다. “분위기 안 좋다가 좋아진 적 있어? 안 좋을 때 좋아져야 좋은 팀이지. 정기전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 말을 하고 서로 얘기를 하면서 진행해야지. 자신 있게 하고, 표정관리 잘하고, 준비 잘하자.”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코치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기전이 얼마 남지 않아 모두들 예민한 시기, 예정된 훈련은 끝났지만 쉽게 운동장을 떠나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비가 와도 연습은 계속 한다고 정부현 주장이 선수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의 연습량을, 녹지 한 켠을 가득 채운 물병들로 헤아릴 수 있을까. 무쇠도 녹일 것 같은 폭염에도 아랑곳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뜨거운 선수들, 이들의 열정이 정기전에서 승리의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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