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대원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공론화됐다. 화재진압 장비도 부족하고, 적절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점차 소방관들의 처우는 개선되고 있지만, 7~80년대부터 근무하기 시작해 현재 퇴직하거나 퇴직은 앞둔 소방대원들의 건강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 당시에는 화재 진압에 반드시 필요한 공기호흡기가 개인별로 지급되지 않아 필요한 장비 없이 화재 현장에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78년부터 35년 간 현장에서 근무한 손준호 전 소방대원은 사명감 하나만으로 현장을 누볐다. 하지만 그는 유독물질이 가득한 현장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6개월 전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그는 여전히 투병 중이다.

  손준호 전 소방대원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현장에서 일할 때 몸을 아끼지 않고 사람들을 구조해 잘한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 다녔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서부소방서 부임했을 직후 출동한 사건을 꼽았다. 가내(家內)공장 화재사건이었다. “전소한 기와집의 목욕탕으로 진입하니 셀 수도 없는 사람이 욕조 안에서 죽어있었어요. 구정 전이었는데 대피한 후에 명절 선물을 두고 나와 다시 들어갔던 거였어요. 손에는 다 돈을 들고 있었어요. 목욕탕 창문에 방범창이 있었는데 한 여자가 그걸 입에 물어뜯으려는 채 죽어있더라고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는 소방대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1978년부터 약 10년간 산소호흡기 없이 화재를 진압했다. 거센 불길도 그를 주저하게 하지는 못했다. “유독가스를 많이 마셨어요. 화재 현장에 갔다 오면 3일 동안은 새까만 가래가 나왔어요.” 장비를 갖추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도 빈번히 노출됐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였는지 묻자 그는 위험한 순간이 너무 많아 딱히 꼽기 어렵다고 했다. “관창(소방호스)을 놓치면 군인이 총을 버리는 거랑 똑같았어요. 물에서 산소가 나오는데 공기호흡기가 없을 때는 관창 하나에 의지해 화재현장으로 들어갔어요. 관창을 놓치는 게 위험했죠.”

  결국 림프종이라는 병에 걸렸다. 화재현장을 누비며 사람들을 구한 대가였다. 그는 현장에서 활동할 당시 경찰병원에서 혈액에 염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직 후 4년 정도 치료를 받았으나, 6개월 전 림프종을 진단받았다. 하지만 국가로부터 받은 금전적인 지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공무상 요양 신청을 해야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신청을 해도 지원받기 어려워 신청할 생각조차 못한 것이다. “당연히 안 되는 거로 알고 있었어요. 지금까지 사비로 치료비를 냈어요.”

  이런 그에게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유사한 질병을 앓고 있던 전직소방관이 치료비 보장 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이제 저도 치료비를 받을 수 있는 절차를 진행해보려고요.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해보고 우선 공단에 신청을 하고.”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일해 림프종이라는 병을 얻었지만 그는 일생을 소방관으로 보낸 걸 후회하지 않았다. “뭐, 이건 직업이었고 대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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