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혐오에 기죽지 않고 ‘정치세력’으로 맞서다
성소수자, 혐오에 기죽지 않고 ‘정치세력’으로 맞서다
  • 김태우 기자
  • 승인 2017.03.13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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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뒤 열린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릴게요.”

  2월 16일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성소수자 단체 회원들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게 항의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틀 전 한국기독교총연맹을 비롯한 보수 개신교가 모인 자리에서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의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에 대한 항의였다. 문재인 전 대표의 답변이 끝나자 청중에서 “나중에! 나중에!”라고 반복적으로 외쳤다. 문 전 대표는 더는 성소수자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난 2월 25일 제9회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진행된 ‘성소수자 인권운동, 변화의 때가 왔다!’ 토론회에 200여명의 사람이 참석했다. 이들은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유력 대선주자들의 언행에 낙담했고 분노했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나중에’ 식의 태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그들의 지난 혐오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진단했다.

혐오의 타겟, 성소수자
  
성소수자가 혐오의 대상으로 타겟이 된 시점은 이른바 보수 세력이 ‘차별금지법’으로 위협을 받으면서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선 국민 기본권 보장과 불평등 완화에 집중했다. 이는 2001년 국민인권위원회 설립과 2007년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입법 추진으로 이어졌다. 신체조건, 성적지향, 종교와 사상, 범죄전력, 사회적 신분 등 어떠한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것을 규정한 차별금지법은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부딪혀 입법에 차질이 생겼다.

  먼저 보수 개신교가 해당 법을 반대하고 나섰다. 차별금지법이 입법되면 기독사학에서의 채플 수업 거부에 제재를 가하기 힘든 것 등 종교적 활동에 제약이 걸린다는 판단에서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은 “결국 보수 개신교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기 위한 구실을 ‘성적 지향’, 즉 성소수자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의 등장은 혐오의 세력화에 불을 붙였다. 성소수자 이슈에 보수 개신교뿐만 아니라 어버이연합과 같은 극우 단체도 등장한 것이다. 보수언론은 과격한 극우 세력의 행동에 주목하고 그들의 주장을 보도했다. 그 과정에서 성소수자 이슈와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보수 개신교의 대립구도로 굳어져갔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행성인)’ 이나라 사무국장은 “국내 성소수자 이슈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적폐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혐오 전위 부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같은 보수 개신교 뒤엔 대형교회들이, 대형교회 뒤엔 정·재계의 주요 기득권 세력이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성인 이나라 사무국장은 “결국 성소수자 문제는 당사자의 성적 지향에 국한된 것이 아닌 사회 구조적 모순에서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 속에 피어난 자긍심
  
혐오의 정치가 세력화되자, 성소수자 단체들은 연대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현재 25개 단체가 소속된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2008년에 발족한 성소수자 연대체로 차별금지법 제정, HIV/AIDS, 군형법 등 성소수자 주요 이슈에 공동투쟁을 해왔다. 이와 더불어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협력하면서 사회운동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했다.

  혐오세력 속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소수자 당사자에게 자존감을 키워줬다. 특히 2011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와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둘러싼 시청 점거농성이 큰 계기가 됐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성적 지향이 포함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안은 반대세력의 압력 속에서 해당 내용을 유지하며 통과됐다.

  이후 2014년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이 담긴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제정을 앞두고 극우보수 세력의 반발로 폐기됐다. 행성인 이나라 사무국장은 “서울시민인권헌장 폐기로 인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성소수자 단체를 찾아 사과했는데, 이 덕분에 우리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점차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앞선 두 차례의 경험으로 성소수자들이 집단적 저항의 주체임을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성소수자가 사회적으로 점차 가시화되면서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지역적으로 확장됐고. 소수자 운동의 지지자가 확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대구, 대전, 부산을 중심으로 지역성소수자의 커뮤니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구의 경우 2009년부터 퀴어문화축제를 시작하면서 무지개인권연대가 조직돼 지역사회 인권감수성 증진 활동을 하고 있다. 퀴어문화축제 강명석 조직위원장은 “성소수자의 사회적 가시성은 움츠러든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2000년 22개 단체 참여로 시작한 퀴어문화축제는 2016년엔 104개 단체가 참여하며 언론과 대중에게 주목을 받았다. 강명석 조직위원장은 “최근엔 성소수자 단체뿐만 아니라 4.16연대와 구글코리아와 같이 사회 각계각층의 참여하고 있다”며 “퀴어문화축제가 누구든지 차별과 폭력에 대한 부당함을 표출하는 사회운동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2월 24일부터 사흘 간 열린 ‘성소수자 인권포럼’

정치 세력화와 성평등 교육
  
조기 대선을 앞두고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정치세력화에 목소리를 높였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정욜 대표는 선거 국면 때마다 성소수자 혐오세력을 안심시키는 정치인의 행태를 지적했다. 그는 “대선국면을 계기로 성소수자 세력이 제도권 정치에 적극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 인권 신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도권 정치 속에서 발현돼야 정치인들이 성소수자 인권의 중요성을 흔들림 없이 견지한다는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정치세력화 움직임은 이미 작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레인보우보트(rainbow vote)’ 유권자 운동으로 확대됐다. 약 37일 간 진행된 이 운동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모으는 동시에, 호모포비아 후보 12명을 선정해 출마 지역구에 알리는 등의 캠페인을 진행했다. 레인보우보트 운동으로 선정된 호모포비아 후보의 국회 입성을 전부 막진 못했다. 하지만 띵동 정욜 대표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5664명의 사람이 유권자 선언에 동참하면서 성소수자의 정치세력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과제는 현재 진행 중이다. 대중이 성소수자가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고, 이들이 차별받는 사실에 공감하는 데서 멈춰있다는 것이다. 행성인 이나라 사무국장은 일반 대중이 성소수자 문제를 ‘타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을 지적하며 그 원인으로 ‘보편적 인권의식 부족’을 꼽았다. 그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성소수자’가 아닌 ‘인권’ 운동”이라며 “성소수자, 장애인, 감염병 환자, 이주노동자 등 차별 받고 있는 소수 사람의 인권 증진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편적 인권의식 증진을 위해 양성을 넘어선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현재 교육부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의 수차례 권고에도 불구하고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성소수자와 동성애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젊은 세대일수록 보편적 인권 의식 수준이 향상되고 있지만, 온라인에 왜곡된 동성애 정보가 여전히 만연한 상황이다. 기성언론이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다름’이 아닌 찬반의 시각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은 “청소년기에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접해 성인권감수성 발달에 도움을 주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성소수자를 포함한 내용의 성 평등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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