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심판 선고 31분 전 안국역. 개찰구를 지나려던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휴, 오늘은 안 나올 수 없더라구….” 속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개찰구 앞 벽면에는 두 장의 종이가 붙어있었다. 비상국민행동(왼쪽 화살표/1, 6번 출구), 탄기국(오른쪽 화살표/4, 5번 출구). 같은 지하철을 타고 왔지만 개찰구를 통과하는 순간 두 갈래로 나뉜다. 인파에 빙빙 돌아 비상국민행동 시위대에 다다랐을 땐 탄핵 심판 시작 시각 20분 전이었다.

“촛불이 민심이다! 헌재는 탄핵하라!”

  탄기국과 비상국민행동 사이에는 촘촘히 주차된 경찰차 벽과 바리케이드가 굳게 자리를 나누고 있었다. 집회차 위의 발언자, 시위대 무리의 시민들, 이제 막 시위대에 합류하는 시민들. 미소를 머금었음에도 굳은 표정의 그들에게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건너편 건물 6층 창가에서도 ‘박근혜 탄핵/ 촛불 승리’가 적힌 빨간 플래카드가 보였다. 긴장된 열기가 가득 찬 광장의 전광판 속에 8명의 재판관이 등장했다.
“지금부터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권한대행)의 말에 5000여 명의 시민은 짧은 환호를 끝으로 숨죽였다. 바로 뒤 탄기국 집회 마이크로부터 울리는 갈라진 목소리가 극명하게 들리던 순간이었다.

“…이제 탄핵 사유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세 가지의 탄핵 사유가 차례로 인정되지 않자 탄식이 뿜어 나오기도 했다. 시민들은 침묵하며 다음, 그다음 문장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정미 권한대행이 결정문을 낭독한 지 17분. “피청구인의 행위는 최서원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또렷하게 들리는 ‘남용’이란 단어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결정에는….”

“와아아!”

  이정미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파면 주문을 선고하자 시위대는 어느 때보다도 우레 같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세 달 동안 손에서 놓지 않았던 ‘박근혜 탄핵’ 빨간 플래카드는 환호성과 함께 구겨졌다. 안경 쓴 누군가는 옆에 있던 누군가와 어깨동무한 채 방방 뛰기 시작했으며, 건물 한쪽 모퉁이에 서 있던 누군가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웃으며 닦았다. 기쁨의 포효, 드디어 해냈다는 벅찬 눈물, 그동안의 고생이 떠오르는 가슴 아픈 통곡. 거리에는 감정들이 여러 모양으로 뒤섞였다. 박장현(남·59) 씨는 “당연한 판결입니다. 기쁩니다”며 솔직하고도 담백한 감회를 전했다. “드디어 진정한 봄이 왔다!”는 외침도 들렸다. 차 벽과 바리케이드 너머에 있는 탄기국의 시위는 계속됐다.

  12시경. 비상국민행동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시민들과 청와대로 행진했다. 인산인해였던 거리는 순식간에 휑해졌다. 목적을 달성한 시민들은 각자 집으로, 회사로 돌아갔다. 주변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역사적인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안국역 1, 6번 출구 사이 거리에는 시민들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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