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지하철, 백화점, 대형마트, 병원 등 일상적 공간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화학세제는 안전할까. 그런 의문에서 이 기사는 출발했다. - 한겨레21 기사 <화학세제 ‘독’안에 든 병원 청소노동자> 도입부

  ‘그런 의문에서 이 기사는 출발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의문, 그 의문 하나로 기자는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심층 취재했다. 그로 인해 유해 물질에 노출돼 있던 수많은 청소노동자들은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됐다. 그 하나의 작은 의문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기었다는 생각에 이 문장만 수백 번 곱씹었다. ‘그렇지, 이런 게 기사고 이런 역할을 하는 게 기자지.’

  하지만 SNS에서 접했던 언론은 진짜 기사와 기자들이 아니었다. 그 기자들에게 사명감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링크를 클릭해 기사를 보게 할까(사실 기사보다는 광고 가 더 많이 노출되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겠지만)만을 고민하고 있었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화장을 안 한 상태로 나타났을 때, 언론은 화장 전, 후의 얼굴을 비교하기 바빴다. 성범죄를 보도할 때 더욱 심각했다. 가해자의 언어와 변명을 기사의 제목으로 뽑아내고 자극적인 단어들을 사용했다. 얼마 전, 안암역 몰카 사건에서도 언론의 행태가 분명히 드러났다. 사건 관련자가 모두 우리학교 학생인 만큼, 피해자대책위원회(피대위)는 공론화 시점을 두고 고민할 정도로 사건 대응에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하지만 한 언론사의 보도 이후 그 노력은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피대위와 사건과 관련 없는 학생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취재했던 한 기자는 피대위의 보도자제요청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보도돼 버렸다. 기사를 내려달라고 하는 피해자 대리인의 요구에도 그 언론사는 ‘피해자가 직접 요청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끝까지 기사를 내리지 않았다. 피해자와 취재원들의 인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대부분의 언론이 자극적인 보도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수백 번 곱씹었던 저 기사, 저 문장이 떠오른다. ‘그런 의문에서 이 기사는 출발했다.’ 

  막연하게 기자라는 직업을 꿈꾸고 있기에 저 한 문장은 방향을 제시해준다. 어떻게 하면 내 기사가 잘 팔릴까가 아닌, 어떤 의문을 가져야 세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질까를 고민하는 기자가 되자고. 훗날  스스로가 그 때의 나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길 바란다. ‘그렇지. 이게 기사고 이런 역할을 하는 게 기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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