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김태우 기자 god@

  미개척지에 발을 들이는 일은 두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개척자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제시한다. ‘땅의 옷’이란 뜻의 지의류(地衣類)도 마찬가지다. ‘생태계의 개척자’라 불리는 지의류는 생물이 살 수 없는 지역에 가장 먼저 들어가 토양환경을 형성해준다. 국내 지의류 연구 1세대인 허재선(순천대 환경교육과) 교수에게 연구자로서의 삶은 지의류와 닮았다. “국내 연구가 전혀 없던 지의류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전국 곳곳 지의류를 찾아다녔어요. 지금은 한국 지의류 도감을 발간하고 산업 활용 분야까지 연구하고 있죠.” 

- 지의류란 무엇인가요
 “전통적인 의미에서 지의류란 곰팡이 같은 균류(菌類)와 녹조류 같은 조류(藻類)가 공생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복합생명체입니다. 생물학적으로 곰팡이는 생존을 위한 에너지원을 스스로 만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에너지원을 공급할 발전소를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조류입니다. 조류가 광합성을 통해 만든 탄소화합물을 곰팡이와 공유하면서 곰팡이는 에너지원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거죠. 조류에게도 곰팡이는 이로운 존재입니다. 조류는 건조지역과 같은 극한환경에서 생존할 수 없는데, 곰팡이가 서식처와 수분을 제공하면서 조류가 어느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즉 균류와 조류가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생명체가 바로 지의류입니다.

  지의류는 겉보기에 완벽한 조합 같지만, 균류와 조류는 ‘부부’와 같습니다. 균류와 조류는 엄밀히 이종생물체이기 때문이죠. 부부가 원만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양보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균류나 조류 중 하나만 일방적으로 생장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생장 속도가 대게 6개월에 1㎜ 자랄 정도로 매우 느립니다. 하지만 생명력은 천 년을 살 정도로 강하죠.

  최근에는 지의류가 균류와 조류만의 공생체가 아니란 연구가 나왔습니다. 2016년 7월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오스트리아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유전정보학을 접목해 지의류의 염기서열을 분석해보니, 효모가 조류와 균류의 공생에 직접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균류가 ‘집’과 같은 보호막을 만들면 조류가 그 안에 살면서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제공합니다. 이때 효모가 균류 바깥쪽에서 지의류의 색깔과 모양 등 겉모습을 다양하게 바꿔 외부환경에 적응하게 합니다. 지의류가 남극이나 고산지대와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죠. 

  지의류의 강인한 극한환경 적응력은 우주생물학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08년 유럽우주국(ESA)이 약 1년 6개월 동안 진행한 우주환경실험에서 지의류의 한 종류인 바위딱지지의속(Acarospora)이 가장 높은 생존율을 보였어요. 우주환경에 노출되고 지구에 돌아와서도 생존한 것이죠. 앞으로 테라포밍(Terraforming, 지구 이외 다른 행성의 천체 환경을 생물체가 살 수 있게 지구화하는 것) 연구에 있어 지의류가 생물체들이 우주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환경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지의류는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생태계 물질순환에 관여해 활력을 불어 넣어줍니다. 지의류는 생태계에서 탄소동화작용과 질소고정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명체입니다. 조류가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유기화합물로 만들면 이를 이용해 탄소동화작용을 할 수 있어요. 또 지의류가 질소고정 미생물인 남조류와 공생관계에 있을 경우 생물에게 필요한 질소를 대기 중으로부터 고정해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식물의 경우 생장에 필요한 무기영양소를 얻기 위해 대기 중 질소를 이용하는데, 질소고정이란 질소를 질산염(N0₃-)이나 암모늄(NH₄+)과 같은 질소화합물로 바꿔 생장에 사용하는 현상입니다. 지의류는 탄소동화작용과 질소고정작용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생태계 순환을 보다 원활하게 해줍니다.

 또한 생태계의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도 합니다. 지의류가 생장하면서 배출하는 산(acid)이 바위를 파고들면서 바위풍화가 빠르게 진행되도록 촉진하죠. 암석이 토양으로 변하도록 도와주면서 다른 생명체들이 살 수 있는 토양환경조건을 마련해줍니다. 제주도와 울릉도 같은 화산섬들도 초기엔 해수면 위에 드러난 큰 바윗덩어리에 불과했지만, 지의류 덕분에 현재는 동식물이 어우러져 있는 거죠.”

 - 지의류가 대기오염에는 약하다던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기오염은 18세기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인간에 의해 생태계에 영향을 줄 만큼 심각해졌습니다. 지의류를 포함해 생태계는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변수가 나타난 것이죠.

 특히 석탄연료를 태우며 발생한 아황산가스(SO₂)와 같은 산성 물질은 지의류에게 치명적이에요. 아황산가스가 물(H₂O)과 만나면 황산(H₂SO₄)이 되면서 수소이온(H+)이 만들어져요. 문제는 지의류가 생존에 필요한 무기질을 얻기 위해 공기 중의 수분을 이용하는 데 있습니다. 균류가 대기 중 수분을 섭취하면서 산성 오염물질로부터 발생한 산도 같이 흡수하는 셈이죠. 균류는 필요만큼 수분을 이용한 뒤 조류에게 건네주는데, 조류에게 산은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산에 취약한 조류가 결국 죽게 되고 공생관계에 있던 균류에게 영향을 줍니다. 이런 과정으로 결국 지의류가 사라지게 되는 거죠. 아황산가스에 약한 특성 때문에 지의류는 대기오염의 심각한 정도를 판별하는 지표종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최근 도시에서 사라진 지의류가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오염이 완화되면서 지의류가 복원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에요. 지의류는 엄밀히 말하면 아황산가스에서 유래된 산성강하물에 약합니다. 최근 대기오염을 측정해보면 아황산가스보단 질소산화물(NO₂)이 훨씬 문제가 됩니다. 기술발달로 디젤엔진 자동차가 보급되면서죠. 질소산화물(NOx)이 물과 만나면 질산(HNO₃)이 되는데, 질산도 수소이온을 만들어 지의류 생존에 치명적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질소를 지의류의 영양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거죠. 질소산화물에서 유래한 질소로 지의류가 더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 지의류가 황사방지 대책이 될 수 있다던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에 불어오는 황사는 중국 사막의 아주 가벼운 모래 입자들이 바람을 타고 건너와서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바람이 불 때 가벼운 모래 입자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게 만들면 황사를 방지할 수 있겠죠.

 ‘생물토양피막(Biological Soil Crusts)’이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생물토양피막은 주로 건조지역에서 발견되는 표면이 딱딱한 층으로 남조류(藍藻類)가 그 층을 만들죠. 예를 들면, 나선형 남조류가 자라면서 끈끈한 액을 분비하는데 그 분비물이 모래알갱이를 서로 잡아주며 딱딱한 표면을 만들어요. 그 끈끈한 액은 다른 곰팡이와 세균이 생장하도록 영양분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의류도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이때 지의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의류가 생물토양피막을 두껍게 만들어 줍니다. 생물토양피막이 약 5cm 정도면 웬만한 바람에도 모래먼지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막에서 식물이 살 수 있는 토양환경을 만듭니다. 비가 오면 빗물이 피막 안으로 투수되는데, 수분증발을 막아 일정 정도 수분을 유지해주죠. 결과적으로 지의류는 식물이 정착해 오래 생존할 수 있도록 토양환경을 변화시키면서, 황사의 근본 원인인 사막화를 방지해줍니다.”

 - 지의류의 산업 활용과 전망이 궁금합니다
 “지의류는 천연물 기반 신약개발에 원천소재로 활용될 가치가 큽니다. 현재 천연물 연구자들은 지의류가 생성한 2차대사산물(생명체가 생명유지 목적 이외로 만든 물질)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외부환경 위협에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지의류의 2차대사산물에는 항암, 항비만, 항당뇨, 항치매에 유효한 성분이 있음이 입증됐습니다. 이런 물질은 오직 지의류에서만 발견되는데 기존 항생제와 전혀 다른 화학구조로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병원성 세균 치료에 이용될 수 있는 이점이 있어요. 
문제는 지의류의 양이에요. 지의류는 생물학적으로 1년에 몇 밀리미터밖에 자라지 못하며 현재 기술론 인공배양이 힘듭니다. 또한 지의류에서 2차대사산물만 분리해내는 기술개발도 한참 부족합니다. 그동안 지의류에서 2차대사산물을 대량으로 얻기 위해 해당 물질을 생산하는 곰팡이를 분리·배양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연구를 진행했어요. 문제는 곰팡이를 분리하는 것 자체에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분리했다 하더라도 곰팡이가 공생관계에서 벗어나 더는 생장하지 않았죠. 설사 공들여 생장시켜도 6개월에 1㎜ 채 못 자랐습니다. 더 심각한 건 지의류에서 분리한 모든 곰팡이가 연구자가 원하는 특수한 2차대사산물을 만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죠.

 최근엔 유전공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지만 결과물은 신통치 않아요. 지의류에서 2차대사산물을 생성하는 특정 유전자를 찾아 다른 곰팡이에게 심어 해당 물질을 만들겠다는 전략이죠. 실제 성공률은 굉장히 낮습니다. 해당 물질을 만드는 유전자 클러스터를 통째로 이식하기엔 너무 커서 이를 운반해줄 벡터(vector)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 번 쪼개서 이식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오류가 너무 자주 발생하죠.
결론적으로 지의류의 2차대사산물을 저비용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 되지 않은 이상 산업 활용 ‘전망’은 우울합니다. 하지만 산업 ‘활용도’는 최고이기에 연구를 멈출 수 없습니다.”

 - 지의류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국내에서 대기오염 연구를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영국에서 ‘대기오염 지표생물개발’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따고 귀국해, 지의류를 활용한 국내 대기오염 모니터링 연구를 진행했죠. 그때 국내 지의류 학명을 확인하기 위해 전문가를 찾는 과정에서 한국 지의류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지의류를 독학하기 시작했죠.

  흥미수준에서 시작된 지의류 연구는 국가연구비를 지원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죠. 2003년 순천대에 한국지의류연구센터를 설립했고 2014년엔 산호잔꽃지의(Cladonia metacorallifera) 등 3종의 지의류로부터 순수분리한 지의류 형성 곰팡이 게놈을 완전해독한 성과를 이뤄 산업 활용의 기반을 마련했어요.
물론 지의류 연구를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지의류가 학문적으로 워낙 생소하고 연구 성과물 내는 일도 무척 고되죠. 하지만 만약 그들의 말에 따라갔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 지의류 연구가로서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의사결정을 할 때 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택했어요. 함께 식물병리학을 공부한 친구 대부분은 세균, 바이러스 등을 전공으로 택했습니다. 대기오염 등 무생물이 식물에 피해를 주는 학문에 관심 두지 않았죠. 물론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분야에 뛰어드는 일이 두렵고 힘들었지만 결코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어요. 끈질기게 제 갈 길을 가다 보니 오히려 성공의 기회가 찾아왔죠. 장래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달리 생각하는 노력을 시도하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허재선(순천대·환경교육과) 교수는 국내 지의류 분야 권위자다. 1983년 서울대 농생물학과에 입학해 석사를 거쳐 1993년 영국 랭카스터대학에서 대기오염학 전공으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순천대 교수로 재직하며 2003년 순천대 한국지의류연구센터 설립과 국가연구소재은행 사업에 선정돼 ‘지의류생물소재은행’을 운영해오고 있다. 2006년부터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과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며 2015년 국내 지의류를 집대성한 <지의류 생태도감> 발간의 대표집필자로 참여했다. 2016년 12월 19일 허재선 교수는 지난 10여 년간 수집·소장해온 지의류 표본 1만 7892점을 국립수목원에 기증했다.

▲ 사진제공 | 허재선 교수

  2014년 우주생물학 잡지 는 'Lichen in Orbit'란 기사에 주홍붉은녹꽃잎지의(Xanthoria elegans)를 실었다. 우주환경실험을 위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1년 반 동안 우주에 노출했다가 지구로 귀환해서도 생존을 이어간 지의류다.

▲ 사진제공 | 허재선 교수

  허재선 교수가 보길도에서 처음 발견한 '보길도단추지의(Caloplaca bogilana Y. Joshi & Hur)'로 남해안 일대 바닷가 및 도서 지역에 분포한다. 저지대 바닷가 바위에 패치형태로 생장하는 가상지의류(특정모양 없이 생장하는 지의류)로 육안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회색계열의 색깔을 띤다.(윗사진) 하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지의체 표면 모양이 전체적으로 조각난 타일들이 붙어 있는 아레올레(areole)형태로 중앙부에 유성번식체인 자실체가 주황색계열의 색상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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