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일선에서 근무하는 서울시 사회복지전담 공무원 4인의 인터뷰와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3월 14일 70대 노인이 김치를 훔쳤다가 적발돼 불구속 입건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가족이 없는데다 청각 장애인이었던 그는 배가 고파 김치를 훔쳤다고 진술했다. 70대 노인은 국민기초생활수급, 장애수당, 긴급복지지원(갑자기 생계유지가 곤란해졌을 때 1개월간 정부의 도움을 받는 제도)의 대상이지만, 기초노령연금 20만원 가량만 받고 있었다.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왜 받지 못했나’는 의문은 비판이 돼 복지 사각지대를 놓친 공무원에게 향했다. ‘공무원 xx들 지들만 알고 지들만 챙겨 먹었지.’ ‘공무원이 회식비로 썼나 보지.’ 공무원을 향한 무수한 댓글이 달렸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복지 사각지대를 놓친 우리의 잘못이 분명하다. 일부 공무원은 자신의 업무를 소홀히 했을 수 있다. 하지만, 매일 전국 각지에서 누군가는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 날마다 쌓이는 업무와 복지 대상자를 상대할 때의 스트레스를 견디며.

  나는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이다.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은 복지 대상자에게 복지 서비스를 안내하는 일을 한다. 항상 바쁘지만, 가정 방문을 하는 날이면 특히 더 바쁘다. 복지 대상자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 최대한의 정보를 숙지해야 해서다. 대상자에 대해 많이 공부해왔다는 인상을 줘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다.

  먼저 대상자 상담 기록, 소득재산 조사표 등을 숙지한다. 다음엔 대상자에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 관련 지침을 정확하게 공부한다. 혜택과 관련된 말을 번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복지 대상자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든 비경제적으로든 절박한 상황에 부닥쳐있다. 쉽게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거라 혹은, 못 받을 거라 단언해선 안 된다. 내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희망을 품었던 대상자가 더욱 깊은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가정 방문을 하는 날엔 항상 긴장돼있다.

  하루에 한 가정만 방문해도 기가 쏙 빠지지만, 사실 가정 방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내가 직접 복지 사각지대를 줄여나간다는 뿌듯함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한다. 정말 많은 복지 대상자가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가 있음에도 몰라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정 방문은 의미 있다. 가정 방문과 같은 일은 복지 대상자와의 애착 형성이 중요하다. 대상자의 마음을 열어 깊은 이야기를 나눠야 복지 서비스 연계가 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방문 ‘숫자’에 마음 졸이고 있다. 한 복지 대상자를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많은 대상자를 만나는 데 급급해졌다. 정부가 공무원의 방문 가정 수를 성과로 평가한 이후부터다. 가정 방문을 한 후에는 ‘행복e음’이란 사이트에 상담 내용을 기록해야 한다. 정부는 각 동의 행복e음 모니터링 횟수를 수치화해 구, 동별로 순위를 매긴다. 그리고 수치화한 자료를 공문으로 내려 실적을 비교한다. 업무 처리 기한을 둬 구, 동별로 경쟁을 유도하기도 한다. 기한이 다가올수록 정보망 입력 작업에 쫓기듯이 민원인을 만나기도 했다. 가끔 대상자를 만나는 것보다 실적을 우선시 하는 나를 자각할 때면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중앙정부와 서울시는 ‘몇 건’이라는 수치를 기준으로 업무 이행도를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소외계층에 도움이 되고 싶어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하는 일에 혼란을 느꼈다. 정부는 나에게 복지 서비스 외에 많은 행정 업무를 요구한다.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 보면 처리해야 할 공문이 쌓여있다. 주민센터에 방문하는 대상자를 상대하고, 가정 방문을 나가는 데에 지장 받을 정도로 공문이 많다. 어떻게든 공문을 처리해야 하기에, 야근도 많이 했다. 처음 1년 반 동안에는 항상 저녁 9시쯤, 간혹 업무가 많이 몰리면 자정 가까이에 퇴근했다. 퇴근한 후엔 집에서 쓰러져 잠만 잤다. 그런데도 주말 중 적어도 하루는 출근해 업무를 봐야만 했다. 주말에 출근하려고 지하철역까지 갔다가 너무 힘들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주중에 야근해야지 뭐...’ 이런 생각으로 주말에 쉬는 쪽을 택했다.

  요즘에도 일은 많지만 그저 야근을 안 하려 할 뿐이다. 최근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서울시에서 생활복지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입력해야 하는 내용이 행복e음에 입력하는 것과 똑같다. 안 그래도 바쁜데 똑같은 내용을 한 번 더 입력해야 한다.

  많은 업무가 있지만 각계부처에서 진행하는 복지 사업을 파악하는 일에도 게을러선 안 된다. 요즘엔 보건복지부, 서울시, 자치구마다 시행하는 개별적인 복지 사업만 해도 몇백 개에 이른다. 민원인이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에도, 내가 몰라서 지원 못 받는 상황이 올까봐 두려울 정도다. 새로 생기는 복지 제도에 대해 중앙정부와 서울시에서 총괄 교육을 해주긴 하지만, 결국 개인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더 세부적인 내용을 안내해야 해서다. 근무 시간에 짬이 안 나면 일과가 끝나야 공부할 수 있다. 가끔은 보건복지부나 서울시에서 만든 복지사업 소개 책으로 동료들과 스터디를 하고 있다.

  업무에 치이는 것도 힘들지만, 사실 일부 복지 대상자를 상대하면서 생기는 감정 소모도 엄청나다. 거의 매일 욕설을 듣는다. 협박을 받는 경우도 많다.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서비스를 받지 못했던 한 대상자는 유서에 내 이름을 쓰고 죽겠다고 협박했었다. 술에 취해 무작정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주위에 있는 물건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해결책이 있어 잘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상황이 심각해지면 경찰을 부르기도 했다. 점점 복지 대상자를 상대해야 하는 내 일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오늘은 어떤 대상자가 올까’하는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일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는 내가 과연 대상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하는 고민으로 우울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할 땐 사람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싫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피한 적도 있다. 연차가 늘수록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만, 겪을 때마다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고맙다’는 한마디가 나를 지탱해준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상담을 하러 오신 어르신이 있었다. 원래는 본인 명의의 집에서 살았지만, 사위가 어르신 집으로 보증을 잘못 서 집이 경매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딸과 사위가 연락을 피해 오갈 데 없던 그는 건물 옥탑에 천막을 치고 지냈다. 어르신과 상담을 끝낸 후 수급자 신청부터 했다. 그 다음에 머물 수 있는 집을 찾았다. 가장 큰 문제는 보증금 마련이었다. 보증금 지원 방법을 찾던 중, 동 복지위원회(주민들이 동의 복지구현을 위해 만든 위원회)가 다행히도 도와줬다. 민간 자원을 연계해 도배, 장판 하는 일도 도와드렸다. 그렇게 어르신이 머물 집이 생겼다. 어르신께선 점점 활기를 되찾으셨다. 처음 상담 때의 우울했던 모습과는 달리, 말수도 많아지시고 웃기도 하셨다. 입주를 하던 날, 그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덕분에 다가오는 겨울을 잘 보낼 수 있게 됐어요. 정말, 정말 고마워요.” 이 일을 하면서 갖게 된 아리다 못해 곪은 상처가 아무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어 했는지 다시금 떠올랐다. 나는 그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하는 마음에 이 일을 선택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나는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 많은 민원인들이 벼랑 끝에서 삶을 포기하려는 모습을 봤다. 그런데 복지 서비스를 받은 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봤다. 내가 단단해야 민원인에게 진심어린 상담과 서비스 연계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간혹 어려운 민원인을 만나도 순간일 뿐이라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나는,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이다.

 

글 | 서주희 기자 standup@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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