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고리4호기에서 냉각재가 누출되었다는 속보를 듣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언제까지 이 불안과 공포 가운데 살아야 합니까!”

  지난 3월 30일, 고리4호기 냉각재 누출 관련 기자회견에 참여한 한 어머니의 발언입니다.

반복되는 늑장 대응과 면피용 대처
  부산에는 현재 7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고,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하여 3기의 핵발전소가 건설 중입니다. 신고리 5・6호기는 부산뿐만 아니라 대선 예비후보들도 당선 즉시 건설 중단과 백지화를 약속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부산에는 신고리 5・6호기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가동으로 인한 많은 심각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2015년에 영구정지하기로 한 고리1호기의 폐로문제, 20km밖에 되지 않는 방사선비상계획구역 확대 문제, 시설 포화가 눈앞에 있는 고준위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 핵발전소와 관련한 모든 정책이 부산에는 주요한 현안이 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작년 추석에는 그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 발생 직후 국정감사가 진행되었는데, 지역 국회의원들은 고리1호기를 제외한 부산의 모든 발전소에 후쿠시마 후속조치로 취해진 내진성능보강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간 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나라 전체 발전소의 내진성능을 보강하였다고 홍보하였지만, 실상은 고리2호기 35%, 고리3・4호기는 0%로 내진성능보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여진이 계속 되고 있지만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 정도의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부산과 울산, 경남권의 학부모들은 “지진으로 인한 핵발전소 사고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학부모 행동”을 만들 정도로 자력구제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고리4호기 냉각재 누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3월 22일 고리핵발전소 앞에서는 고리3호기 격납건물 철판(라이너 플레이트) 부식에 대한 부산과 울산 시민사회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영광의 한빛 2호기 격납건물 철판 부식으로 시작된 점검에서 고리3호기의 철판 부식이 확인된 것입니다. 고리3호기의 철판 부식은 다른 발전소의 부식 양상과 양태가 조금 달랐습니다. 원안위의 중간보고서가 나오기까지 8기의 핵발전소를 점검하였는데, 이 중 4기에서 기준치 이상의 부식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리3호기 부식은 다른 발전소와는 달리 원인을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부식이 발생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고리3호기와 같은 시기 같은 공법으로 시공된 고리4호기의 안전이 걱정되었습니다. 한수원은 계획예방정비 순서에 따라 19개의 핵발전소를 점검할 것이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고리4호기의 점검 순서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고리4호기의 가동을 즉각 멈추고 조사에 착수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3월 28일 새벽, 고리4호기가 가동을 멈추었습니다. 원자로의 냉각제가 누출됐기 때문입니다. 냉각재는 핵연료의 반응속도를 조절하고 뜨거워진 원자로를 식히는 역할을 하는 물질로 이것이 소실 될 경우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냉각재 누출 사고는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고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수원은 냉각재 누출이 처음 의심된 26일에 발전소를 즉시 멈추지 않고 이틀이 지난 28일에야 가동을 멈췄습니다. 그사이 306리터의 냉각제가 누출됐습니다. 한수원은 고리4호기를 가동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고리4호기에 대한 격납건물 철판 부식을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핵발전소 안전에 대한 선제적 조치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비용을 동반합니다. 핵이 값싼 에너지라 홍보하고 있는 한수원 입장에서는 선제적 조치로 인한 비용 발생이 달갑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수원이 핵발전소 가동 정지로 인한 손해를 저울질 하고 있는 동안 시민의 안전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언제까지 생명과 이윤을 저울질하는 이 상황을 견뎌야 할까요?

근본적인 방안은 탈핵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전국에서 핵발전소 문제에 대해 대응하기 위한 조직과 모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탈핵운동진영이라 불리는 이들 조직들은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일상적인 대응활동뿐만 아니라 탈핵 교육과 조직 의견수렴, 나아가 에너지 정책 수립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 10월에는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중심으로 “잘가라 핵발전소 100만 서명 운동본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오는 대선에서 탈핵을 반드시 대선 공약으로 채택토록 하고, 탈핵사회를 위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3월 27일 공동행동’과 ‘탈핵에너지전환 시민사회 로드맵 연구팀’은 대선 예비후보들에게 핵발전소와 관련한 정책질의 답변을 공개하였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예비 후보들은 건설 중인 핵발전소를 건설 중단하고 재검토 혹은 백지화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신규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백지화 하고,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은 하지 않으며, 고준위핵폐기물 관리계획을 재공론하고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연구를 전면 중단하거나 재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전력정책의 방향성을 탈핵에 두고, 빠른 시일 내에 핵발전 비중을 줄이도록 정책 수립을 해 나갈 것 역시 약속하였습니다.

  부산과 같은 핵발전소 현안 지역들은 대선 후보들의 위와 같은 입장이 아주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핵발전소 현안 지역들이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위의 약속들이 여전히 선언적이고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대선 후보들이 ‘탈핵’을 해야 한다는 국민적 의견에 힘입어 탈핵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3월 31일 오후 경주에서 3.3 규모의 지진이 다시 발생했습니다. 작년 9월 12일 강진 이후 601번째 여진입니다. 더 늦기 전에 탈핵을 통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글 | 정수희(에너지저의행동 부산지역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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