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라는 SF의 한 장르가 원래 주목했던 주안점은 ‘펑크’, 즉 사회에 거칠게 반항하는 미래형 하위문화였다. 인체와 기계의 결합, 인간 의식과 정보의 바다가 연결되는 상상력은 그저 관념적 정체성 고찰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고도의 기술 발전 속에서 겉보기와 달리 억압과 불평등이 가득한 사회, 인간됨의 가치가 하한선으로 떨어진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소재에 가까웠다. 

  최근 재출간된 1991년작 만화 <공각기동대>(시로우 마사무네 / 대원CI)는 이런 사이버펑크의 원초적 매력을 강하게 충족시켜주는 작품이다. 최신 헐리웃 실사판이나 오시이 마모루의 유명한 극장애니와 달리, 원래의 만화 <공각기동대>는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런 확장이 당연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욕심을 실현하는가를 이야기한다. 

  작품의 배경은 전지구가 통신망으로 긴밀하게 연결되고, 기계를 통한 신체 강화와 감각 확장이 보편화된 근미래다.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한 국내 범죄행위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안9과의 리더로, 전신을 사이보그화하여 탁월한 전투력과 해킹실력을 자랑한다. 공안9과는 다양한 경력과 개성을 지닌 인간요원과 인공지능 로봇들로 이뤄진 엘리트 팀이지만, 그만큼 그들이 조우하는 사건 또한 묵직하다. 기억을 해킹하여 범죄에 활용하기, 인간 인격을 이식한 고품질 로봇을 제조하기 위한 아동 인신매매, 현실과 가상을 엮는 비인도적 국가 세뇌 훈련, 암살과 테러 행위 등은 여지없이 정치 부패, 경제적 이권, 수동적 시민과 만성적 인권침해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 

  <공각기동대>에서 주인공들의 활동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역할에 머물지만, 그 과정에서 확장된 인간 경계의 허망함을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자조적 블랙유머로 되짚는다. 어차피 인간이 전뇌로 신체를 확장하는 세상인데, 인격 구조를 이식한 전기 회로 기계가 그냥 인간이 아닐 이유는 무엇인가. 편안한 세뇌를 받아들이고 자체적 의지 없이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일부로 복종하는 것에 만족하면, 인간이 기계와 딱히 다를 것은 또 무엇인가. 그런 세태를 이용해서 엇나간 사회관이나 사리사욕을 충족하는 이들은 어느 정도까지의 죄를 지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모토코는 경계가 흐릿한 판단 영역에서, 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쪽을 선택한다. 인간에게 스스로 행동할 것을 말하고, 인간도 전뇌도 딱히 차별의 거부감 없이 인식하고, 낯선 존재양식과 조우하게 되었을 때조차 철학적 고뇌보다는 상호이득의 협력을 고른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심오한 해답을 내려줄 수는 없겠지만, 이것이야말로 경계 흐릿하고 복잡한 틈에 욕심 넘치는 세상에서 개별적 문제를 하나씩 대처하기 위한 기계적으로 합리적이며 동시에 인간적인 방식이다. 1991년의 미래적 상상력이, 2017년의 현실 교훈이 되어 있다. 

글 | 김낙호 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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