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도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부모님이 저흴 병원에 데려갔는데, 이제는 저희가 부모님을 모셔 가잖아요.” 어버이날을 기념해 가족끼리 모인 식사 자리에서, 문득 한 TV 프로그램 출연진의 말이 떠올랐다. 장남인 나의 아빠는, 이젠 지팡이가 없으면 혼자서 잘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식당으로 모셨다. 삼촌네를 선뜻 부르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아빠가 삼촌들에게 여러 번 전화해 마련한 식사 자리였다. 삼촌네 식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야, 아빠는 할아버지를 향해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빠는 어버이날을 맞았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외할아버지 얼굴 기억나? 외할머니는?” 내가 아주 어릴 때 엄마는 당신의 부모를 떠나보냈다. “당연히 기억나지.” “언제 가장 기억나? 후회되는 거 있어?” “오늘 같은 날 가장 생각나지. 음, ‘더 많이 표현할 걸 그랬다’ 이 정도? 나도 너희 아빠처럼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싶고,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평소 낯간지럽다며 진지한 상황을 조금도 견디지 못했던 엄마는, 그 저녁만큼은 당신의 부모를 향한 그리움을 숨기지 못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렇게 엄마는 마음으로 어버이날을 맞았다.

  어릴 적부터 우리 가족은 어린이날이고, 어버이날이고 특별한 것 없이 보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문자 한 통 보내거나, 평소처럼 통화하는 게 다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밤, 나는 한참 동안 잠들지 못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마냥 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욱이 ‘다음에’ 표현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향에 내려와 문득 자세히 살펴본 부모님에겐 꽤 많은 세월이 녹아 있었다. 분명 힘 있어 보였던 아빠의 발은 뼈대가 보일 정도로 말랐으며, 아빠의 흰 머리를 걱정하던 엄마에게도 흰 머리가 자라고 있었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지만, 그날 밤 나는 소원을 빌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이제껏 부모님과 지낸 날보다 더 많이, 아니, 더, 더 많이 함께 어버이날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더 많이 표현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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