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 19대 대선과정 중 대선후보 4차 TV 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동성애 반대하십니까?”라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질문에 “반대하죠”라고 답했다. 곧이어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도 덧붙였다. 우문우답(愚問愚答)이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군대 내 동성애 반대의 의미였다고 해명했지만 몇 마디 말에 대한 후폭풍은 거셌다. 사회에서 논란은 물론이고, 학내에서도 인권단체에서 작성한 10여 개의 대자보가 정대후문에 게재됐다. 그리고 2주가 지났다.

  대학에 들어와 우연한 기회로 성소수자를 만난 적이 있다. 2014년 총학이 주관한 인권축제에 참여했을 때다. 저녁에 인권단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방청석에 앉아 추위에 떨며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지금 세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성소수자 패널로 나온 두 사람이 참 멋있었고, 그래서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시의 나에게 ‘성소수자인데도’라는 의식이 있지는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아니’라고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봄이 시작된 올해 3월, 취재차 한 인권단체를 찾았다. 거기서 만난 한 활동가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소수자는 양적(量的) 소수자를 의미하지 않아요. 성, 장애, 종교 등 사회에서 다양한 이유로 차별을 받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죠. 소수성이 더는 소수성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활동할 거에요.” 소수자를 만드는 것이 수(數)가 아니라 사회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사회 안엔 나도 있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있다.

  본교 ‘장애인권위원회(KUDA)’에서 2년 정도 활동을 했다. 활동할 당시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와 같은 인권단체가 없고, 인권운동도 없는 사회. 그런 사회야말로 소수자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겠지.” 이상적인 사회에 관해 토론을 하면서 그 친구가 했던 말. 우리는 씁쓸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지난 10일, 41.1%의 득표율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성소수자 논란을 뒤로하고,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새 정권에 기대해본다. 토론회에서 소수자 질문이 나오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을 사회. 소수자를 위해 활동하는 소수자가 없어도 괜찮을 사회. 언젠가 그런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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