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내 곁에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노인과 바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구절은 ‘소년이 있었더라면’이다. 노인은 84일간 매일 바다에 나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청새치를 잡고 상어들과 싸우며 생각했다. ‘소년이 있었더라면...’ 어릴 때부터 고기잡이를 배워온 손자 같은 소년은 노인을 걱정하고 따르는 유일한 상대였다.

  최근 80대 노인이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서 홀로 숨지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그의 이름을 아는 이웃들은 없었다. 그의 곁에 함께하는 소년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고독사’로 보도됐다. 고독이란 단어를 곱씹다보니 문득 한 의문에 머물렀다. ‘그의 죽음이 과연 고독했는가?’

  신학자 틸리히는 ‘고독’이 ‘혼자 있는 즐거움’이라면,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라고 정의했다. 고독이 자발적 홀로서기인 반면, 외로움은 강제적인 홀로서기다. 노인의 죽음은 결코 자발적이지 않았으며, 철저한 무관심 속에 맞이한 죽음이었다. 우리 모두의 삶은 고독하지만 죽음마저 고독한 건 가슴 아픈 일이다.

  얼마 전부터 사회봉사단이 주최하는 ‘손주가 돌아왔다’ 프로그램에 참여해 김부자 할머니 댁에 방문하고 있다. “나 같은 늙은이도 찾아와주고, 재밌게 해주고, 너무 고마워.” 할머니는 여러 번 이야기하셨다. 우리가 반가운 것일까, 사람이 반가운 것일까. 할머니는 지난 인생이야기를 하셨고, 대학생 청년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셨다. 서로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다 보면 두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발길을 떼는 시간이 찾아왔다. 우리가 떠난 뒤 남을 정적에 적적함이 더 커지진 않을까. 그 걱정에 멈추자 괜시리 마음이 먹먹했다.

  “지난 학기에 온 학생들이 전화 한 통을 안 해.” 할머니는 종종 이전 학생들과 교류가 끊긴 것에 서운함을 내비쳤다.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사전교육시간에 들은 사회봉사단원의 말이 떠올랐다. “다음에 또 오겠단 말을 무심코 하셔도 안 돼요. 그분들은 그 말에 우리를 기다리시고, 도리어 상처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 학기에 어쩌면 휴학을 하고 더욱 바빠질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서 그칠지도 모르겠다. 그냥 바라건대, 한 독거노인의 외로움과 고독 사이 어딘가에서 잠시라도 함께 있어줄 소년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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