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 나면 잎이 더 잘 보이듯. 누군가 곁을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때서야 비로소 ‘그리움’과 ‘죄책감’에 사무친다. 2017년 7월 23일 오전 8시 4분. 또 하나의 꽃이 졌다. 故 김군자 할머니는 91년의 험난하고도 길었던 여정을 끝마쳤다. 

  겨우 17살이었다. 김 할머니는 17살에 심부름을 나선 길에서 중국 지린성 위안소로 끌려갔다. 하루에 20명, 많게는 40명까지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다. 암흑 같던 삶에서 선택한 일곱 번의 자살 기도는 바람처럼 되지 못했다. 탈출을 향한 그의 발걸음 역시 시도에만 그쳤다. 저항하다 맞은 할머니의 왼쪽 귀는 고막이 터져 영영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살아있는 한 그리할 것”이라며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 그렇게 됐으면서. 집에서 10리 밖을 모르고 살다가 끌려가 그렇게 됐으면서. 처음 자신의 몸에 다녀간 일본 장교에게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기반으로 한 김숨의 소설 <한 명> 속 위안부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빌었다. 

  잘못 없는 용서가 무색하게끔 한·일 합의는 참으로 가벼웠다. 2014년 4월부터 12차례의 국장급 협의를 거쳐 2015년 12월 28일, 한·일의 위안부 합의가 이뤄졌다. 과연 진정한 ‘合意’ 인가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크다. 피해자의 동의도 전혀 없었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에 대한 명시도 없었고, 제대로 된 사과조차 병행되지 않았다.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 10억 엔은 우리 평생의 오점으로 남았다. 

  남은 생존자는 37명이다.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할머니들은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생존자의 평균연령이 90세이기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10년 남짓이다. 세월이 가면, 단 한 숨만 남게 되는 그 날은 온다. 한 숨마저 꺼져버리면 남은 우리의 한숨의 깊이는 얼마나 깊을 것인가. 

  눈을 뜨자마자 접한 김군자 할머니의 작고 소식에 침묵이 몰려왔다. 한참의 침묵 끝에 ‘넋은 별이 되고’ 라는 시의 한 구절이 귓전에 맴돌았다. ‘세월이 흘러가면 잊혀지는 일 많다 하지만 당신이 걸어가신 그 길은 우리들 가슴 속에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글 | 김해인 사회1부장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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