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이 일을 하고 싶나요?” 난생 처음 면접관이 되어봤던 날, 같 은 생각을 지닌 지원자를 만났다. 그는 ‘정의’를 구현하는 일을 하고싶어 지원 했다고 답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와 중,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이 떠올랐 다. ‘정의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정의’란 반드시 추구하 고 싶은 가치다. 단순하게도 많은 사람 이 올바르고 공평하게 행복해지는 방 법을 찾는 일이 ‘정의’라고 결론지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마이크 센델의 <정 의란 무엇인가>에 의하면, 정의는 행복, 자유, 미덕의 극대화와 같은 다양한 관 점으로 나뉜다. ‘올바름’이란 무엇인지 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딜레마를 안겨 주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논하기 엔 소수가 될 개인의 권리가 포기될 상 황 역시 고려해야만 한다.

  분명한 건,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선 ‘희생’이 뒤따른다. 이는 지난 역사 를 보면 알 수 있다. ‘정의’란 잣대에 서 멀리 떨어진 ‘차별’을 바로잡는 일 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 일제강점기에 이뤄진 한국 의 독립운동, 수많은 희생들로 인한 자각 속에 이뤄졌던 촛불혁명. 현재 도 성 소수자의 운동을 비롯한 수많 은 운동들 속에서 정의를 위한 희생 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희생을 찬찬 히 관조하고 있다보니, 살아가면서 수 없이 부딪힐 문제 속에서 항상 ‘정의’ 로울 수만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 다. 이럴때면 정의롭기엔 힘겨운 현실 속에서 괴로워한 이가 떠오른다.

  윤동주 시인의 시 속에는 ‘정의’에 대 한 고뇌가 담겨있다. 종로구 자하문 고 개 중턱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에 가 면 그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문학 관 제3전시실에 있는 ‘닫힌 우물’은 시인 이 후쿠오카 감옥시절에 느꼈을 억울함 과 답답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정의롭지 못한 시대를 살아간 청춘으로 끝없이 부끄러워했고 성찰했다. 정의에 대한 고민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은 ‘정의’에 대한 첫 걸음이다. 앞 으로도 매순간 고민과 성찰을 멈추지 않는다면 정의로울 수 있을 거라 믿는 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한다면 더 나은 사회가 되겠지.

 

글 | 김해인 사회1부장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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