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신문이 창간 70주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고희다. 그러나 고대신문은 내가 1986년 정외과에 입학했을 때나 지금이나 푸르고 젊다. 70년 동안 스스로를 태운 수많은 불꽃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프랑스 사상가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촛불의 미학’을 통해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안하고 나약한 촛불이 스스로를 태우며 불꽃이 됨으로써 무한한 존재가 됨을 말한 바 있다. 지난 겨울 우리는 권력, 재벌, 구태, 헬조선을 리셋하라는 촛불의 함성을 들었다. 1700만이 넘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나 작은 폭력도 없이 평화적이며 민주적으로 진행된 집회는 세계를 놀라게 했고 마침내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멀리 여의도에 있는 그들이 아니라 때론 나약하고 언제 꺼질지 몰랐던 평범한 이웃, 시민, 촛불이 불러온 변화다. 

 

 돌아보면 촛불은 항상 우리 주위에 있었다. 성북구에도 근사한 촛불이 있다. 석관두산아파트 주민은 지하주차장 등의 조명을 LED로 교체해 공동전기료를 획기적으로 절약해 경비원 임금인상과 고용안정을 이루었다. 상월곡 동아에코빌 주민은 입주민과 경비원이 갑·을(甲·乙) 대신 동·행(同·幸) 계약서를 썼다.

 

 현재 성북구 관내 161개 공동주택 중 57개가 동행(同幸)계약서를 쓰고 있으며 동참하는 아파트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구도 모든 계약을 동행(同幸)계약서로 작성하고 있다. 또한 동행(同幸) 확산을 위해 구의 브랜드로 정하고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한편, 민·관·학이 협력해‘동행 지수’를 마련하고 있다. 소위 ‘갑질 문화’로 대변되던 우리사회에 사람의 가치, 공동운명체의 가치를 돌아보게 만든 변화로 촛불 하나하나가 모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 의미 있는 사례다.

 

 우리 곁에는 여전히 부당하고 어두운 구석이 존재한다. 산적한 문제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나약하지만 작은 불씨가 모인다면 한계를 넘어 거대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경험했고 자신감도 생겼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지성의 요람이라는 자긍심이 자칫 자만으로 변질되어 눈과 귀를 닫으면 구태가 되고 부패한다. 끈질기고 집요한 유혹이다. 그럼에도 고려대학교가 대한민국 지성의 요람으로, 청년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 고비마다 고대신문이 스스로를 태우며 불꽃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대신문 창간 7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지난 66주년에는 ‘분노하라! 고대신문’을 주문한 바 있다. 오늘 한 가지를 더 주문한다. ‘촛불이 되어라! 고대신문’

 

 

 

 

글 ㅣ 김영배 (성북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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