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수작] 아직도, 오늘
[소설 우수작] 아직도, 오늘
  • 고대신문
  • 승인 2017.11.0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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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 창간 70주년 문예공모전

1

 

엘리베이터는 십오 층에 멈춰있었다. 박은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렸다. 엘리베이터가 십오 층에 멈춰져 있는 것을 보면 박은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아주 지들이 전세를 냈지, 박이 생각했다. 하강 버튼을 누르고 커피를 홀짝거렸다. 얼른 공동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며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엘리베이터는 내려오지 않았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박이 생각했다. 위쪽에서 왁자한 소리가 들렸다. 벌써 반쯤 화가 난 박이 아무렇게나 고함을 질렀다. 가까스로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여자아이와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타고 있었는데, 둘 다 마뜩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젠장, 화를 내야 할 사람이 누군데, 박이 생각했다. 박은 같은 동에 사는 주민들과 친하지 않았다. 절대 먼저 인사하지 않았고 가끔 자신을 향해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는 가벼운 목례로 답했다. 박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비슷한 시간에 출근했고 퇴근했다. 박은 구청 근처에 위치한 작은 마트에서 직원으로 근무했다. 계산대 업무는 보지 않았고 남자 직원이 유독 적은 탓에 온갖 힘쓰는 일은 박이 홀로 도맡고 있었다. 매니저는 남자 직원을 새로 뽑는 중이라고 말했지만, 박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마트는 항상 바빴다. 규모에 비해 실적이 좋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계산대는 두 개밖에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때문에 계산원들은 항상 고된 업무에 시달렸다.

 

박은 구형 스포티지를 몰고 직장으로 향했다. 시간은 오전 여덟 시 반이었다. 출근 시간을 조금 비끼면 그래도 교통은 원활한 편이었다. 차들이 자주 밀집하는 시간대를 조금만 피하면 얼굴을 구기지 않고도 운전할 수 있었다. 박은 가끔씩 굳이 번잡한 시간대를 골라 출근하는 사람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박은 이십 분 남짓 걸리는 직장으로 향하는 동안 수시로 클랙슨을 눌렀다. 박은 자신이 운전대를 잡으면 평소보다 성격이 난폭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순전히 자신을 제외한 다른 운전자들의 경우 없는 운전솜씨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박의 표현에 따르자면 도로의 무법자인 택시와 버스를 싫어했다. 박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을 정말 증오하고 싫어할 만한 사람들로 각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박의 차량 앞으로 택시 한 대가 느닷없이 좌측 방향지시등을 넣고 우격다짐으로 들이밀었다. 박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차창을 내렸다. 택시기사는 오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흰색 와이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박은 택시기사를 노려보면서 한편으로 담배를 집어 입에 문 뒤 불을 붙였다. 택시가 주춤하며 급작스레 속도를 줄였다. 뒤에 있던 차량들이 참지 못하고 하나 둘 클랙슨을 울리기 시작했다. 야비하게 굴더니 쯧쯧, 박이 혀를 찼다.

 

박의 업무는 비교적 단순했지만 힘들었다. 박은 하루 종일 박스를 나르고 물건을 정리했다. 가끔 표독스러운 얼굴로 물건을 손에 쥔 채 따지는 고객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업무의 고단함은 어쨌든 상관없었다. 스스로 견디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달랐다. 박은 안면도 튼 적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유니폼을 벗고 큰 소리로 꾸짖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대부분의 컴플레인은 박이 보기에 부당했다. 박은 자신을 홀대하는 다른 직원들, 번지수를 제대로 찾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따지고 드는 고객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못마땅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늘 있던 일이었으니까.

 

“이봐요, 누가 찾아왔네요.”

 

박은 막 들어온 과일을 진열하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박은 일을 하는 도중에건, 쉬는 시간에건 누구랑 대화하지 않았다. 따라서 친한 사람도 없었고 어울리는 사람도 없었다. 이따금 매니저랑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급여나 수당, 휴가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박에게 말을 건 사람은 생선 코너를 담당하고 있는 윤이었다. 나름대로 칼솜씨가 있어 생선 손질에 제법 능숙한 까닭에 마트 내에서는 입지가 좋은 편이었다. 붙임성도 꽤 좋은 편이라 박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과는 가깝게 지냈다. 박과는 비슷한 또래였다. 박은 그를 싫어했다. 사내새끼가 편하게 앞치마나 두르고 생선 대가리나 따는 주제에, 박은 항상 그를 미워했고 늘 마음속으로 험구하고 있었다.

 

“누가요?”

 

“모르죠, 그건.”

 

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고무장갑 낀 손을 앞치마에 박박 문질렀다. 그리고는 박의 대꾸를 기다리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박은 그의 차가운 언행에 불쑥 짜증이 솟구쳤지만 입술을 질끈 깨물며 참아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람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장을 보는 고객들이었고 고객들을 제외하면 각자 파트에서 열심히 물건을 팔고 있는 직원들뿐이었다. 박은 조롱이라도 당한 기분으로 생선 코너를 노려보았다. 한 무리의 아줌마들이 비닐로 포장한 생굴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윤은 그 옆에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거친 손길로 박의 어깨를 잡았다. 박은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모르는 남자가 꼿꼿이 서 있었다. 그는 박에 비해 키가 몹시 작았고 얼굴은 거무튀튀했다. 싸구려 티셔츠를 걸치고 있었고 아무데서나 구할 수 있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얇은 손목에는 메탈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별할 수 없었지만 박은 그것이 가짜라고 생각했다. 박은 그를 위 아래로 천천히 훑어보았다.

 

“왜요? 반품이나 교환에 관련 된 거라면 저기, 저쪽으로 가세요.”

 

박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계산대를 향해 목을 까딱거렸다. 다섯 명의 넘는 고객들이 카트에 물건을 잔뜩 쌓아놓고 불만 가득한 얼굴로 앞선 사람들과 계산대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쉰이 넘은 중년 계산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분주하게 물건을 집어냈다. 그때였다, 남자가 박을 살짝 노려본 뒤, 느닷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크게 고함을 질렀다. 마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물론 동일한 음량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전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근처를 서성거리던 고객들과 직원 몇이 박을 곁눈질했다. 박은 순간적으로 크게 놀랐지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눈을 크게 뜨고 남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소리를 지른 남자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뒤돌아 성큼성큼 걸었다. 순간적으로 주변이 조용해졌다. 박은 여전히 눈만 멀뚱멀뚱 뜬 채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소리가 들린 쪽을 의아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른 직원들은 박과, 벌써 마트 출입문 가까이 이동한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박은 조금 전 자신이 겪은 상황이 당황스럽고 어이없었지만 대처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남자가 내뱉은 말은, 우선 한국어가 아니었고 영어도 아니었다. 박은 영어를 잘 몰랐지만 그것이 영어인지, 아닌지는 분간해낼 수 있었다. 중국어도 아니었고 일본어도 아니었다. 처음 듣는 언어였고 발음 또한 독특했다. 박은 약간 소름이 끼쳤다. 박이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자신에게 알 수 없는 언어로 고함을 지르고 사라진 남자가 남자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그 사이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고객 응대 매뉴얼’ 방송이 흘러나왔다.

 

“저 사람 누구에요?”

 

박은 억지로 가슴을 진정시킨 뒤 가장 가까이 있었던 직원에게 물었다.

 

“누구요?”

 

박은 그가 누구인지, 그저 평범한 고객인지, 아니면 자신을 알고 찾아 온 사람인지 구분하기 위해 잠깐 머리를 굴렸으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기억 속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고객이라기엔 행동이 너무나 특이했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리고 무슨 말을 내뱉었던 것이었을까? 박은 그가 고함을 내질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휴게실로 들어간 박은 여느 때와는 달리 열심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이 느낀 당황스러운 심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윤이 돈가스를 먹다 말고 이죽거렸다.

 

“언제부터 수다가 그렇게 늘었어요?”

 

다른 직원들의 그를 따라 웃었다. 윤은 다른 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윤의 조롱을 쉽게 넘기지 못했을 것이었지만, 박의 신경은 온통 낯선 남자에게 쏠려 있었다. 박은 식사 내내 그를 떠올렸다. 우선 첫인상부터. 분명 이국적이었지만 한국인이 아니라고 속단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또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가 쓰는 언어, 그리고 다소 이국적이었던 생김새가 몹시 신경 쓰였다. 매니저가 들어왔다.

 

“신경 쓰지 마, 박씨. 그딴 사람들 첨 봐? 그래도 자기는 딴 직원들보단 낫지 뭐.”

 

처음 본다, 박이 생각했다. 매니저가 말한 ‘저런 사람들’은 모두 자신과 같은 말을 쓰고, 비슷한 생김새를 지닌 한국인이었다. 간혹 고객들이 직원들을 상대로 저렇듯 큰 소리로 고함을 내지르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이 주장이나 항의, 적어도 억지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를 뜨는 일도 없었다. 박은 꺼림칙한 기분으로 물을 들이켜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남자가 사라진 쪽을 박은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지나다녔고 붕어빵과 어묵을 파는 노점이 멀찍이 인도 한 쪽을 점용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익숙하고 낯익은 풍경들이었다. 박은 고개를 살짝 내밀고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가까운 곳에 깔려 있었던 좌판이 보이지 않을 뿐,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2

 

퇴근 후에도 박은 꺼림칙한 기분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약간 울적하기까지 했다. 엘리베이터를 탄 뒤에도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천장과 거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박은 침대에 길게 누워 양 손에 깍지를 낀 뒤 뒤통수를 받치고 남자가 누구인지 기억해내려 노력했다. 카트를 쥐고 있지 않았고 장바구니를 들고 있지도 않았다. 물건을 사러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어렴풋하게나마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기 위해 굳이 마트까지 찾아왔다는 것인데, 정말 해괴망측한 짓거리 아닌가, 박이 생각했다. 그가 도통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 만난 사람이었는지도 몰랐다. 분명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박은 스스로의 생각에 너무 심취하지 않도록 머릿속을 정리했고 복잡한 심정을 컨트롤하기 위해 깊게 호흡했다. 어쩌면 생선대가리 미스터 윤 그 새끼가 짜고 친 일일지도 몰라, 박이 문득 생각했다. 남자가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알린 사람은 윤이었다. 그렇다면 윤은 그 남자가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말도 통하지 않는데. 박은 조금씩 퀴즈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윤이 장난을 친 거야, 맞아. 박이 생각했다. 하지만 박은 윤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쾌감에 심취해 기분이 약간 좋아지기까지 했다.

 

다음 날, 박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십오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져 있는 것을 보았다. 박은 느긋하게 하강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엘리베이터에는 전날 보았던 여자아이와 젊은 여자가 타고 있었는데, 박은 살짝 고개를 까딱 숙이며 인사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모녀는 동시에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이내 인상을 폈다. 박은 그들의 모양새가 어색하게 느껴져 거울에 시선을 박고 한참 턱을 만지작거렸다. 약간 꺼림칙한 기분으로 남은 커피를 홀짝거렸다. 차에 시동을 켜고 가속페달을 밟아 도로로 나갔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급작스럽게 콜을 받은 개인택시 한 대가 얌체같이 끼어들었다. 박은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다. 박의 차량을 앞지른 택시가 비상등을 두 번 정도 깜빡였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마트는 오전부터 분주했다. 고객들이 줄을 이루었고 정리, 진열해야 할 물건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들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계산원들은 쉴 새 없이 팔을 움직였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가 다가와 고함을 지르기 전 까지, 박은 가벼운 심정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박은 크게 놀라 고함을 지르는 쪽을 바라보았다. 어제 보았던 남자였고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쓰고 있었고 고함을 지르자마자 출입문 쪽으로 내달았다. 박은 이번에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를 쫓아가 어깨를 잡았다. 남자는 순간적으로 박의 손을 뿌리치고 속도를 높여 바깥으로 사라졌다. 박이 미친 사람처럼 쫓아 나갔지만 그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박은 씩씩거리면서 마트 안으로 들어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직원들이 전날과 마찬가지로 박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생선 코너 윤이 막 우럭 한 마리를 뜰채로 낚아 도마에 올린 뒤 회를 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은 씨근거리면서 생선 코너 쪽으로 내달았다.

 

“야, 저 새끼 누구야?”

 

박이 윤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순간적으로 윤의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손에 쥐고 있었던 회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직원들이 순식간에 웅성거리며 그쪽을 바라보았고, 물건을 고르던 고객들은 좋은 구경거리라도 발견한 듯 흥미롭게 싸움이 난 쪽을 쳐다보았다.

 

“뭐 하는 짓이야?”

 

“똑바로 말해. 저 새끼 누구냐고?”

 

박은 금방이라도 윤의 얼굴에 펀치를 날릴 듯 위협하면서 재차 물었다. 근처에 있던 직원 몇 명이 초조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이게 미쳤나, 뭔 개소리야. 누굴 말하는 건데 이 자식아!”

 

윤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띤 채 말했다. 박은 웃음까지 지어 보이며 자신을 조롱하는 윤이 몹시 괘씸했다. 멱살을 쥔 손에 힘을 보탰다.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하,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야, 어제도 네가 저 새끼 시켜서 나 엿 먹인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

 

이번에는 윤이 힘껏 박의 팔을 뿌리쳤다. 박은 윤이 분명 자신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확신했고 자신은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박이 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윤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팔짱을 낀 채 박을 노려보았다. 얼굴엔 약간의 여유까지 감돌고 있었다. 직원들이 더 모여들었다.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없었지만 딱히 상황을 정리하고자 하는 사람도 없었다. 고객들은 대놓고 구경을 하고 있었고 모두 약간 들뜬 듯 보였다. 박은 이번에는 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대신 비참한 기분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기편은 한 명도 없다고 느꼈고 마치 자신이 가해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박은 어떻게든 윤의 고백을 받아내고 싶었다. 정말 윤이 그 낯선 남자를 꼬드겨 자신에게 난처한 상황을 던진 범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설령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박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주어진 황당하고 지독한 괴리감과 이질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신을 놀려먹는 윤이 괘씸해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고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고 도망간 남자 또한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틀 연속 느닷없이 당한, 당했다는 표현이 정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했던 일상에 작은 생채기를 내고 달아난 낯선 남자를 혼자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동료잖아, 동료, 박이 생각했다. 박은 윤이 자신을 위로하든, 자기 자신을 변호하든, 어떻게든 상황을 공유하길 바랐다. 박은 윤에게 구차하게 도움이라도 구하고 싶은 마음까지 일었다.

 

“무슨 일이야?”

 

매니저가 옹기종기 모여든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윤이 말했다.

 

“아니에요, 박씨가 오늘 좀 예민한 모양입니다.”

 

서성거리던 직원들이 고개를 돌려 윤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고 대부분 윤에게 소리 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도끼눈을 뜨고 있는 박을 슬쩍 곁눈질했다. 모두들 어떤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박은 모두가 자신을 한심하게 보고 있다고 느꼈다. 매니저가 윤에게 코너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윤이 돌아갔다. 박은 아까 전 보았던 낯선 남자처럼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윤의 뒤통수에 펀치를 날리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매니저는 박에게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말했고 주위로 모여든 고객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이 모든 상황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니, 박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3

 

박은 비참한 기분으로 저녁까지 일했고, 직원들을 따라 퇴근했다. 야간 근무를 담당하는 청년이 도착하자마자 박은 도망치듯 마트를 빠져나왔다. 박은 자신에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고 있는지 자문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은 것도 아니었고 욕을 먹은 것도 아니었다. 설령 그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욕이었다 한들,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었으니 그것은 욕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고객들이나 직원들 중에 그의 말을 알아들은 사람이 있었다면? 눈만 말똥말똥 뜨고 병신같이 욕을 먹고도 아무 대꾸도 못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웃는 사람이 있었다면? 박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박은 누구라도 좋으니 자기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괴롭게 느껴졌다. 자신을 향해 내뱉었던 말의 뜻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어떤 의도로 그 말을 한 것인지에 관한 궁금증보다도 궁금증을 해소할 가망이 거의 없다는 막연함이 박을 외롭게 만들었다.

 

박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고 주차된 차량들을 점검하고 있는 경비원에게 일부러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박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자신이 마땅히 벌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있는지 스스로 찾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박은 자신의 인사를 받는 경비원을 바라보았다. 경비원은 약간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박에게 가볍게 답례했다. 박은 경비원이 무슨 말이라도 해 주길 바랐지만 경비원은 주차된 차량을 체크하고는 곧바로 초소로 들어갔다. 박은 담배를 꺼내 피우려다가 주변에 재떨이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로 넣었다. 그동안 어디에다 재를 털었던 것일까? 꽁초는 어디에 버렸던 것일까? 박이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박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는 6층에 멈춰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잡고 있는지, 내려오지 않았다. 위로부터 아이들, 젊은 여자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박은 그 소리들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답답하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 소리들은 한국말이었다. 동질감을 느꼈고 약간의 위안을 느꼈다. 박은 내용물이 빈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꽤 오래 기다렸다. 떠들썩한 말소리가 잦아들고, 엘리베이터가 조금씩 움직였다. 박은 가까스로 1층에 정지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아이들과 유치원 선생들로 보이는 젊은 여자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화를 내거나, 작정하고 시비를 걸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심 분을 삭이는 사이, 젊은 여자 둘이 박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고 빠른 속도로 아이들을 밖으로 인솔했다. 박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층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잠깐 기다렸다. 다른 사람이 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한 아줌마가 우편함에서 종이 한 뭉치를 빼내어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박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않도록 버튼을 꾹 누르고는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박에게 고맙다고 말했고, 박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닙니다. 이웃이잖아요…….”

 

“옆집 개 때문에 시끄러워 못 살겠어요.”

 

그녀는 말을 맺음과 동시에 옆집 개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복도에 털은 얼마나 많이 날리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엔 개가 복도에 똥을 싸 놨는데 글쎄 냄새가 아주 지독했다고, 그런데도 치우지 않았더라고, 생전 그런 경우 없는 인간들은 처음 봤다고 험구했다. 박이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사이, 그녀의 얼굴이 불콰해졌다. 박은 그녀가 자신에 대해 무엇인가 말해주기를 기대했다. 이를테면 평소에 엘리베이터에서 너무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지 말라든가, 사람들이 많이 탈 땐 자리를 조금 비키라던가. 복도에서 소리를 지르는 걸 자제하라든가. 하지만 그녀는 박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박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직전, 십사 층 아줌마는 박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예. 박이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고 느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집으로 들어가 대강 씻고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전화번호부를 열었고 전화번호를 뒤적거렸다. 부모님, 친구, 지인들, 직장 동료들까지. 모조리 찾았다.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전화번호가 개썅년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박은 그것을 지웠다. 번호까지 삭제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이윽고 박은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인이 된 이후 자주 연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따금 안부를 묻곤 했던 친구였다. 박은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때 까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초조하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받지 않으면 어쩌지, 박이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받았고 아주 다정스럽고 호들갑스럽게 박에게 인사했다.

 

“어, 어, 박!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그럼. 요즘 뭐하냐? 부모님은 잘 계시지?”

 

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상대방의 표정을 끊임없이 상상했다. 통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박은 평소에 그 누구와도 오래 통화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든, 직장에서든 전화기를 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들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꼭 필요한 이야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박은 이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와 전화를 해 보고 싶었다. 아니, 대화가 간절했다. 하지만 통화는 박의 친구가 먼저 끊자고 제안했다. 약속이 잡혀 있으니 다음에 다시 연락하자는 이야기를 남기고 박의 친구가 전화를 끊었다. 박은 약간 아쉬웠으나 무엇이 아쉬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전화번호부를 들여다보았다. 부모님께 전화를 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자신이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닌지, 지나치게 과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재차 질문했다.

 

4

 

다음 날, 박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 준비를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십오 층에 사는 모녀를 만나지 않았다. 이제 막 야간 보초를 담당하던 경비와 교대한 듯 보이는 초로의 경비원이 피로한 얼굴로 이중 주차된 차량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출근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로는 지나치게 한적했다. 박은 좌우 차창을 통해 쭉 늘어진 상점들, 교회, 학교, 우체국 등을 보았다. 박은 백미러로 뒤를 살폈다. 뒤따라오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앞에도, 옆에도, 도로를 달리는 차는 오로지 박이 몰고 있는 차량뿐이었다. 박은 약간의 외로움을 느꼈다. 병목현상이 사라진 도로는 시원하기보다는 어쩐지 으스스했다. 규정 속도를 지키지 않아도 사고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신호를 어겨도 자신의 차량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차량이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든든한 울타리를 잃어버린 한 마리 가축이 된 것 같았다. 박이 클랙슨을 한 번 눌렀다. 반응하는 차량은 없었다. 녹색등이 켜진 신호등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역시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핸들에서 손을 떼고, 가속페달에서 발을 뗐다. 그래도 차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박은 문득, 가속페달을 밟지 않고 마트까지 가면 어떨까 상상했다. 방향을 바꿀 때에만 간간히 핸들에 손을 올리면 몹시 편할 것 같았다. 만약 모든 차량의 가속페달을 없애버린다면 어떨까. 그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모든 차에 가속페달이 달려 있지 않다면, 오히려 사고율이 현격이 줄어들 게 분명했다. 박은 가속페달을 밟지 않고 백 미터 가량을 운전했다. 그러다 차량 몇 대가 눈에 띄었고, 다시 가속페달을 밟았다.

 

박은 평소보다 훨씬 빨리 마트에 도착했다. 직원 전용 주차장에서 윤을 만났다. 윤은 뒷좌석에서 상자 하나를 들고 박을 못 본 체 하며 서둘러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많은 직원들이 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기 위해 직원용 휴게실로 향하는 박의 모습을 직원들이 곁눈질했다. 박은 그들 가운데 누구라도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랐지만 아무도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박은 자신이 걸치고 있던 외투를 곱게 펴 옷걸이에 건 뒤 직원용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밖으로 나가니 직원들이 한데 모여 빵을 먹고 있었다. 윤이 상자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중년 여자 직원 한 명이 박에게 빵 하나를 건넸고 박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박은 둥글게 무리지어 빵을 먹고 있는 사이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멀찍이서 그들의 표정을 살폈고 곧 그들이 자신을 불편한 시선으로 곁눈질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박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직원들이 하나 둘 흩어졌다. 박은 아직 빵을 먹고 있는 네댓 사람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겸연쩍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을 애써 외면했다. 박은 그들이 빵을 다 먹기를 기다렸고, 빈 비닐봉지가 가득 담긴 박스를 들어 바깥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박은 직원들을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소심한 선행을 알아주길 바랐다. 개장 시간이 임박했다. 매니저는 검은색 양복 외투에 보라색 와이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매니저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며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했다. 박에게는 다가오지 않았다. 박은 매니저가 자신에게 어떤 지시라도 내려주기를 바랐지만 매니저는 박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은 과자박스를 옮기면서 다른 파트 직원들을 곁눈질했다. 모두가 바빠 보였고 계산대 직원들은 손에 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윤은 얼음 위에 쭉 뻗은 생선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있었다. 모두들 일상적이었고 무난했다. 박은 오늘도 낯선 남자가 자신을 찾아와 고함을 지르고 달아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시 그가 나타나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고 모두의 이목이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집중되기를 바랐다. 만약 그 남자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를 떠안게 될 것 같았다.

 

“박씨, 잠깐 이것 좀 봐줘.”

 

박은 살짝 놀라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을 바라보았다. 마흔이 넘은 여직원이 초조한 듯 양 손을 모으고 있었다. 튀김 코너 담당하고 있는 직원이었다.

 

“다 잘라 놨으니까 손님들 오시면 맛보고 가라고 한 마디 해주면 돼.”

 

박은 은근히 반가운 기분으로 흔쾌히 수락했다. 곧 앞치마를 건네받았고 그것을 입었다. 프라이팬에서 간헐적으로 기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박은 가위와 집게를 들고 우두커니 서서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한편으로 출입문도 눈여겨보았다.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들었고 자동식 출입문이 자주 열리고 닫혔다. 낯선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모두들 같은 피부색, 비슷한 체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박은 혹시라도 낯선 남자가 들어오면 어쩌나 생각하면서도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시간을 헤아려 보니 어느덧 튀김 판매대 앞에 이십 분 가량 서 있었다. 담당 직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식용 접시에 담긴 튀김은 모조리 식어 있었다. 사람들이 가끔 맛을 보고 지나갔지만 물건을 집어 카트와 바구니에 담지는 않았다. 박은 소외감을 느끼며 튀김 몇 개를 프라이팬에 올리고 불을 켰다. 곧 싸, 하는 소리와 함께 꽁꽁 얼었던 튀김이 녹기 시작했다. 매니저가 박의 모습을 보고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사라졌다. 담당 직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박은 자신이 옮겨야할 박스들을 실은 트럭이 주차장에 도착한 모습을 보았다. 출입문 앞에 박스를 잔뜩 쌓아놓고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오래잖아 사라지는 트럭 운전사를 보며 박은 안절부절 못했다. 박스들을 안으로 옮겨야 했다. 하지만 섣불리 이동했다간 판매대가 비어 버릴 것이었다. 그때, 다른 직원들이 서너 개의 밀대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대신 박스들을 옮겼다. 고객 몇 명이 박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냉동 포장된 튀김들을 카트에 던졌다. 박은 꼼꼼하게 포장되어 있는 회를 고르는 고객들에게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는 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식대를 담당하던 여직원이 한 시간 째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여태껏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박은 여태껏 이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약간 불안했다. 자기 코너를 한 시간 씩이나 비워놓는 직원이 어디 있을까, 박이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가족들에게 일이 생긴 것일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심각한 복통 증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

 

박은 자신이 여태껏 단 한 번도 결근이나 지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어디가 아픈 적도 없었고, 늦잠을 잔적도 없었다. 시간에 맞게 출근하고, 해야 할 일을 누군가에게 미룬 적도 없었다. 마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소모되는 배터리처럼 촘촘하고 확실한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은 제각기 가지고 있는 목적을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움직였다. 마트를 찾는 고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남들에게 말을 걸었고 대답을 얻었다. 시식코너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은 자신이 튀기고, 굽고, 먹기 좋게 자른 시식용 음식들을 생판 모르는 남들에게 한 점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끊임없이 입을 열었다. 매니저는 가끔씩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와 고객들에게 사과를 했고 좋은 말로 타일렀으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윤을 바라보았다. 윤은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육지고기를 즐겼다. 윤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생선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빼냈으며 살점을 조심스럽게 썰어 일회용 접시에 담은 뒤 비닐로 포장했다. 매운탕거리를 찾는 손님들을 위해 뼈를 손질하여 검은 비닐봉지에 차곡차곡 담아 두었으며 양념장을 동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박은 여태까지 마트 안에서 남들에게 보였을 자신의 모습들을 차근차근 떠올렸다. 박스를 나르고 물건을 진열했다. 쓰레기를 치웠고 간혹 진열대에 손이 닿지 않는 키 작은 고객들을 위해 대신 물건을 꺼내주기도 했다. 고객들이 쇼핑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면서 버리듯 방치한 카트를 모조리 모아 힘겹게 밀어 마트 안에 들여놓기도 했다. 박은 오늘 당장 일을 그만둔다 해도, 앞으로 직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내다볼 수 있었다. 어떤 과정을 통해 마트가 개장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또한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든 직원들은 자신들이 어떤 마음가짐, 행동거지를 취해야만 개장된 마트에서 자신의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고, 그건 박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아마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날도 역시 같을 것이었다. 어쩌면 꾸준한 반복을 위해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반복하지 않으면 반복될 수 없었다.

 

“미안해, 너무 늦었지 내가.”

 

박이 열심히 튀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원래 그 자리를 담당했던 직원이 도착했다. 몹시 지쳐 보였다. 허리를 반쯤 숙인 채 숨을 몰아쉬었다.

 

5

 

점심시간이 되었다. 박은 서너 시간 남짓한 오전 근무 시간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많이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피곤이 몰려왔다. 몸의 일부분이 경직된 듯 뻐근했다. 일부 직원들이 선발대로 식사를 하기 위해 휴게실로 들어갔다. 박은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 정리하다 만 박스들을 서둘러 치웠다. 아마 이 시간대였을 텐데, 박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생각했다. 낯선 남자가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고 도망간 시간. 두 차례 모두 점심식사를 하기 전에 들이닥쳤다가 사라졌다. 어떻게 보면 도망도 아니지, 박이 생각했다. 어제 점심식사는 어떻게 해결했지, 박이 생각했다. 박은 어제 먹은 점심이 기억나지 않았다. 낯선 남자의 두 번째 방문, 윤과의 싸움을 제외한 일상적인 사건들이 모조리 삭제되어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마트에서 보낸 시간을 어떻게 겪어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불과 하루 전 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날이 지난 것 같았다. 박이 가만히 생각했다. 어제, 그저께에 낯선 남자가 자신에게 소리를 질렀을 때에는 마트의 모든 직원이 한꺼번에 매장 안에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교대로 중식을 먹는 시간을 온전히 벗어나 있었다는 것인데. 박은 살짝 고개를 들고 좌우로 흔들었다.

 

오늘은 오지 않는 것일까, 박이 생각했다.

 

그때, 자동식 출입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마트 안으로 들어왔다. 낯선, 아니 이제는 낯설지 않은 남자였다. 박은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가 들어오는 모습을 먼저 바라보았다. 두 차례 모두 그가 고함을 지르고 나서야 박은 뒤돌아보았고, 그가 고함을 지르고 나서야 그가 고함을 질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박은 꼿꼿이 서서 점점 가까워지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다른 몇몇 직원들이 박을 곁눈질하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일부러 나를 무시하는 것일까, 박이 생각했다. 남자가 박 앞에 섰다.

 

그리고 어제, 그저께처럼 고함을 버럭 지르고 뒤돌아 다시 나가버렸다.

 

박은 그를 쫓아 나가지도 않았고 그가 한 말을 되새기지도 않았다. 어차피 언어가 다르니 해석할 방법도 없었고 굳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박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윤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휴게실로 들어가고 있었고 고객들은 물건을 집어 카트에 넣느라 정신없었다. 박은 먼젓번과 달리 낯선 남자에게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친숙하게 느껴졌고 반대로 자신과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왜 아무도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을까, 기분이 울적해졌다.

 

박은 매니저를 찾아갔다.

 

“저, 해고되는 겁니까?”

 

매니저는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박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당신이 왜 해고돼?”

 

“그렇다면 저럴 수 없으니까요.”

 

박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온 몸의 피부로 뜨겁고 밀도 높은 감정들이 조금씩 몰려들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뭘 저럴 수가 없어, 그래, 이해해. 근데 당신이 나설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지금 구조조정 할 때도 아니고, 당신은 정규직이야, 저 밖에 비정규직들이랑은 엄연히 신분이 다르다고. 게다가 당신은 여기서 몇 안 되는 훌륭한 직원 중 하나야. 박씨가 해고된다면 남은 직원들 중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당신 같은 사람을 지키지 못하면, 그게 바로 망하는 지름길로 가는 거지.”

 

매니저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조금 감동한 듯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양복을 걸쳤고 쓰고 있던 뿔테 안경을 닦았다. 박은 매니저의 말에 잠시 안도했지만, 자신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직원들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고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남자의 행동은 분명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것이었다. 마트는 식재료와 생필품을 구입하는 장소다. 소리를 지르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 아니고, 그 대상이 나일 수는 없다, 이게 어디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냔 말이다, 박이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사흘간 내질렀던 그 고함, 그 내용, 정말 똑같은 말이었을까, 박은 약간 궁금해졌다.

 

6

 

박은 매니저의 사무실에서 나온 뒤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선발대로 식사를 하러 휴게실에 들어간 직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교대해 줄 때 까지 두 사람 분의 일을 소화해야 하는 다른 직원들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박은 그들이 마치 선두경쟁에서 밀린 낙오자들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낙오자가 아니었다. 식사 순서는 무작위로 결정되었고 식사시간 또한 균등했다. 지금 휴게실에서 밥을 먹고 있을 사람들은 잠시 후면 지금 남은 사람들과 똑같이 두 사람 분의 일을 해야 할 것이었다.

 

그때, 마트 안으로 들어오는 한 남자를 보았다. 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멀리서 보아 다소 희미했지만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박은 속도를 높여 걸었다. 점심을 마친 직원 몇몇이 커피를 홀짝거리며 휴게실 밖으로 나왔다. 박은 마치 미로 속에 갇히기라도 한 듯 곳곳을 살폈다. 하지만 박이 찾는 남자는 없었다. 남자 고객들은 있었지만, 자신이 찾는 사람을 구분해낼 수 없었다. 직원들이 박을 이상한 눈초리로 훔쳐보았다.

 

씨씨티비, 바로 그거다. 박은 매니저 사무실로 들어갔다. 한쪽에 구비된 모니터에 마트 곳곳이 촬영되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매니저가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며 느닷없이 들이닥친 박을 약간 노여운 듯 바라보았다. 뒤늦게 매니저를 확인한 박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촬영되고 있는 장면을 돌려보면 안되겠느냐고 부탁했다. 매니저는 약간 어이없어하는 듯했지만, 별 말 없이 승낙했다. 박이 헐레벌떡 마우스를 깔딱거리며 방금 전 마트 안으로 들어선 남자의 모습이 찍힌 영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남자는 없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마련되어 있는 코너들과 시식대, 그곳에서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직원들이 마치 기계처럼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7

 

박은 오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풍경, 반복적인 일상의 마무리를 늘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자신의 집으로.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똑같은 속도로 올라가거나 내려갔고 경비원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주차된 차량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박은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었다. 알아낼 수도 없었고,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그가 자신에게 한 행위라고는 느닷없이 다가와 고함을 지르고 사라진 것밖에는 없어, 박이 생각했다. 욕을 한 것도 아니었고, 말도 안 돼는 이유를 들어 제품을 교환하거나 따지려 드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어떠한 피해를 준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누굴까, 과연 누굴까, 여전히 궁금하기는 했다.

 

박은 큰 소리로 낯선 남자가 한 행동을 따라했다. 거울에 서서 자신에게 고함을 질렀고 급기야는 그 행동이 우스꽝스러워 혼자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내일도 남자가 다시 찾아올까. 하지만 어쩐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분명 올 것 같기도 했다. 아무런 원인도, 결과도 없이 딱 중간만 잘라 느닷없이 들이닥친 그가 마치 오늘 같다고 생각했다. 어제, 그리고 내일도 생략되어 버린. 오늘.

 

다음 날, 박은 아침 일찍 아파트 주차장으로 나왔다. 역시 경비원이 약속이라도 한 듯 게슴츠레한 몰골로 주차된 차량들을 점검하고 있었고, 이따금 승용차 앞에 멈춰 짙게 썬팅된 앞유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입으로는 뭔가 중얼거리는 것 같았지만, 박에겐 들리지 않았다. 겨우 검은 차창 안을 들여다본 경비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늘 이사 있으니까, 차 좀 다른 데 세워주쇼, 아,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구요. 부탁좀 드리겠습니다. 오늘 꼭대기 14층에 일찍 이사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승질 내지 마시고, 알았어요. 예.”

 

박이 차에 탄 시간은 오전 여덟 시 삼십 분이었다.

 

 

글 | 도현규 수상자
일러스트 | 김예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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