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옆 동네 한 남자는

늦잠 자면 전화로 깨워달란 부탁을 남기고

스틸녹스 서른 알을 삼켰다고 한다

 

삶은 어떤 각도로 비틀려야

눈 감는 것보다 눈 뜨는 일이 두려워지는가

잠은 죽어서도 잘 수 있어요 커피 광고 속 여자가

유쾌하게 웃고 있다

 

버티기 위해 카페인을 마시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수면제를 먹는

불안과 불면이 겹겹이 누적되는 일상

 

잠을 살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많은 것들엔 가격이 있었다 삶은 사는데 자꾸만 이자가 불었다

파산신청서를 앞에 둔 사람의 절박한 평안처럼

그는 깨워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손깍지를 단단하게 맞물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알약의 표면은

얼마나 견고한 잠의 밀도를 닮아있는가

예정된 죽음에 도달한 눈빛처럼

굴광성이 없다

 

잠든 손은 가지런했다

수면제 포장지에서 석회질 냄새가 난다

 

글 | 최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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