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형서 본교 교수·미디어문예창작 전공

고대신문 창립 70주년을 맞아 응모작이 예년보다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물론 허수도 적지 않았다. 대략 20여 편의 작품들이 그나마 간이 맞았지만, 어떤 글에선 비린내가 났고 어떤 글은 느끼했으며 또 어떤 글은 재료가 신선하지 않았다.

 소설쓰기란 대체로 요리하기와 비슷하다. 무엇을 만들지 먼저 확실하게 정해두어야 한다. 칼국수를 만들까 수제비를 만들까 망설이면서 요리했다면 그 밀가루 죽은 그냥 당신 혼자 드세요. 다음으로는 필요한 모든 재료를 확보해두어야 한다. 요리하다 말고 양파를 사러 갔다가는 부엌에 불이 난다. 이어 집중력이 필요하다. 요리하는 도중에 은행잔고를 확인하거나 숙제에 정신이 팔려서는 안 된다. 닭갈비를 요리할 때는 오롯이 닭갈비처럼 호흡하고 닭갈비처럼 사유하며 닭갈비 나라에만 충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차려내는 모양새가 중요하다. 그릇의 형태와 디자인부터 시작해 고기라면 곁들이는 채소와의 배치, 나물이라면 색과 종류를 고려해 쌓아올리는 방식, 국이나 탕이라면 건더기와 육수의 비율 따위를 고려해야 한다. 풍미를 더해줄 참기름 한 방울이나 후추 약간 따위가 요령껏 뿌려지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춘 먹음직스러운 작품이 열 편 안팎이었다. 사람의 위장에는 한계가 있으니 숙고 끝에 두 편을 추렸다.

 가작인 「벙어리 허생전」은 취업률 중심의 대학 구조조정과 대통령 탄핵 및 검열이라는 시의성 있는 소재를 가져왔다. 이야기가 굵직하고 전개가 시원하여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다. 다만 주인공의 캐릭터가 애매한 게 흠이다. 좌절을 보여주어 독자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려면 예술을 핑계로 애인 등쳐먹는 것보다는 나은 과거를 부여했어야 한다. 한량이 전락하는 이야기보다 독하고 근면성실한 사람이 노숙자가 되는 이야기가 우리를 아프게 만드니 말이다. 본디 제국의 몰락은 촌락의 와해보다 슬픈 법이다.

 한편으로 현대식 알레고리 작품인 「아직도, 오늘」은 쉽게 요약되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주인공 ‘박’은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직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나타나 해석할 수 없는 언어로 고함을 지른 후 사라진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똑같은 사건이 반복된다. 이 뜻밖의 봉변은 ‘박’의 규칙적인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고, 이제 ‘박’은 서서히 삶의 ‘낯섦’과 ‘불가해성’을 인식하며 뒤늦은 사회화 과정을 겪는다.

 좋은 요리의 기준은 다양하다. 재료들 사이의 궁합이 좋은 요리, MSG 안 쓴 요리, 제철 요리, 재료 고유의 맛을 고조시키는 요리,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요리, 몸에 좋은 요리 등등. 이번 공모전의 우수작 「아직도, 오늘」은 고깃덩어리 하나 투박하게 구워 냈구나 싶었는데 씹다보니 복잡다단한 맛이 우러나는 독특한 요리였다. 특히 구상 단계,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공을 많이 들인 듯하다. 그 덕에 드러낼 정보와 감출 정보를 적절히 배분해가며 독자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마 작가 자신도 다 쓰고 나서 매우 신이 났을 것 같다.

 이번 공모전에 멋진 상차림을 보여준 작가들, 그리고 밥상을 보기 좋게 뒤엎은 작가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가 꼭 허기 때문에 요리를 찾는 건 아니다. 멋진 요리는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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