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원(계명대 문창과14)

 휴학 신청을 하고 베를린으로 떠나온 지 세 달이 다 되어갑니다. 졸업을 앞두고, 오랜 바람을 안고선 독일 행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말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타국에서 필사적으로 집을 구하고 일자리를 구하면서. 저는 스스로에게조차도 낯선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건 침묵을 곁에 두는 일이었습니다. 외로움을 마주할 때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대신, 일기를 썼습니다. 그 속의 문장이 모두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어서, 글을 다 쓴 뒤에는 오래도록 다이어리를 바라보고는 했습니다.

 가끔 ‘식구’라는 말이 사무치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 오이도 근처에 방을 얻어 홀로서기를 시작한 게, 벌써 햇수로 8년이 다 되어갑니다. 혼자가 되어 산다는 건 끼니나 빨래, 청소 같은 것을 걱정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롯이 혼자 외로움을 견뎌내는 것. 그게 어렸던 제가 주어진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아직도 무언가가 그리울 땐 저녁의 아파트 단지를 산책합니다. 불이 켜진 창문을 바라보면서 창문 너머에서 함께 밥을 먹고 티비를 보며 대화를 나눌, 어느 ‘식구’들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일련의 의식과도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잠시나마 그리운 것들로부터 무사히 도피 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아버지의 공장에서 유년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 자취를 시작한 곳도 시화공단 근처의 원룸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외국인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표정을 관찰 할 수 있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그들의 ‘식구’는 누구인지. 수첩 속 빼곡한 메모와, 모국어로 적힌 주소. 그 모든 게 그들이 곁에 둔 침묵의 흔적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은 나의 표정 속에서 그때 그들의 표정을 발견합니다. 대체 우리는 어디로 떠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과연 우리에게도 운명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지. 누군가의 표정과 뒷모습을 가득 짊어지고 산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이제야 배웁니다. 우리 모두가 이방인이라는 걸.

 더 열심히 침묵을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장옥관 선생님, 감사합니다. 前시인이 되지 않도록, 늘 언제나 겸손하게 읽고 쓰는 사람이 될게요.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나의 오랜 친구들 루오와 새롬, 진나친모에게. 사랑하는 나의 식구. 엄마 아빠, 그리고 인태. 언제나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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