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정무비서의 폭로 이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추가 증언이 이어졌다. 비판의 여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듯하다. 대선 경선 중 안희정 캠프에서 성폭력이 빈번했다는 내부고발이 있었으며 억압적인 분위기로 민주적 의사결정이 어려웠다는 얘기도 나온다. 안 전 지사 본인과 주변 조직의 비민주적 행태가 낱낱이 고발되는 모양새다.

  정치가 안희정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시민들이 받은 충격은 매우 크다. 그간 주창해오던 민주주의와 자유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 안희정 개인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그를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인식해왔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뒤섞여 있다. 특히 안 전 지사가 그간 약자의 인권을 강조해왔던 터라 이에 공감했던 다수의 청년 유권자들 또한 분개하고 있다. 피해자 개인의 인격과 더불어 공정한 법적용과 올바른 정치문화를 위해서라도 정치권의 자정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구태를 밝히는 과정이 정치 불신으로 이어지진 않을까하는 것이다. 이미 여러 공론장에서 정치 불신의 표현이 포착된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으로 여당에겐 ‘더듬어민주당’이라는 오명이 씌워졌으며 인터넷 기사엔 ‘정치에 마음을 닫는다’는 투의 댓글이 등장하고 있다. 안 전 지사를 지지하던 A 씨는 “앞으로 무엇을 믿고 비판해야할 지 모르겠다”며 정치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냈다.

  물론 존재하던 문제가 밝혀지는 건 괴로운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것들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배신감에 좌절하거나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도 햇볕을 쫴야 곰팡이가 가라앉듯 병폐를 청산하기 위해선 결국 어떻게든지 문제를 양성화해야 한다.

  정말 무서운 건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현실을 외면해버리는 것이다. 시민들이 무관심해진다면 비판의 위력은 약해지고 문제는 그대로 답습된다. 정치권 내 성폭력 문제가 개선되기 위해선 사건을 따라가며 지속적으로 비판하는 시민들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 개인의 잘못이 한 정당이나 정부의 정치 실패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렇기에 정치에 대한 불신이나 무관심보단 참여를 통한 심판이 우선되길 바란다. 당장 석 달 뒤 6.13 지방선거가 있다. 바로 그 날 유권자로서 분노를 ‘표’하자.

 

글ㅣ김민준 사회부장 i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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