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하는 친구 같은 존재다. 전국에서 가장 주량이 많기로 명성이 자자한 본교엔 술과 관련된 조금 특별한 동아리가 있다. 바로 중앙와인동아리 ‘소믈리에(회장=이지원)’다. 보통 와인이라 하면 고급스럽고 우아한 술이라고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소하게 와인을 배우고 마시며 즐기는 동아리, 소믈리에는 그 선입견을 깨기 충분했다. 국내 최초 대학생 와인동아리이자 본교 유일의 와인동아리 소믈리에는 올해로 중앙동아리 등록 11주년을 맞아 와인처럼 숙성돼가고 있었다.

 

은은한 와인향이 가득한 동아리방

학생회관 5층 구석 끝에 자리한 504호에 들어서자 은은한 와인향이 코를 간질인다. 창가에 나란히 놓인 와인병들이 새콤한 포도 내음을 풍겼다. 줄지어 걸린 전구의 빛이 와인향과 함께 편안한 느낌을 자아냈다. 작지만 아늑한 이곳은 소믈리에의 동아리방(동방)이다.

소믈리에의 동방에선 다른 동방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물건들이 있다. ‘와인셀러’가 그 중 하나다. 와인셀러는 와인을 저장하고 보관하는 가전제품으로, 와인이 적절한 온도로 유지될 수 있게 도와준다. 그 안에는 여러 병의 와인이 구비돼있었다. 이지원 소믈리에 회장은 동방 내 와인셀러를 설명하며 ‘동방 내에서 금기시되는 행동’이 있다고 소개했다. “거기 있는 와인들은 전부 동아리 부원들 각자가 넣어둔 개인 와인들이에요. 와인 주인 허락 없이 마시는 게 금지된 것도 저희 동아리의 암묵적인 규칙 중 하나죠.” 소믈리에 동방은 동아리 부원들에게 휴식의 장소이자 각자의 와인을 보관하는 장소, 그리고 때로는 와인을 즐기기도 하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화기애애한 정기 세미나

소믈리에는 와인 페스티벌 개최, 와인 페어 참가, 봄가을 소풍을 포함해 다양한 활동들로 매 학기를 보낸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활동은 정기 세미나다. 시험기간을 제외하고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 서관 401호에서 진행되는 정기 세미나는 부원들이 국가별, 품종별 주제를 선정해 와인에 대해 배우고 직접 시음하는 시간이다. 시험기간이 끝난 후 재개된 4월 27일 정기 세미나에는 약 20여 명의 ‘소믈리에 꿈나무’들이 참여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이날 세미나 주제는 ‘Heavy’한 레드와인이었다. 이번 학기 신입부원인 신호범(공과대 건축사회환경15) 씨가 주제 발표를 하고 이후 부원들이 해당 와인을 시음하는 방식으로 세미나가 진행됐다. 신호범 씨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을 ‘Heavy’하다고 표현한다”며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멜롯(Merlot), 시라/쉬라즈(Syrah/Shiraz), 말벡(Malbec)을 소개했다. “소개한 와인들은 가장 대표적인 레드와인들이고 이들은 산도와 탄닌감(와인의 떫은 맛 정도)이 높은 것이 특징이에요.” 부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신 씨는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나갔다. “보통 Heavy한 레드와인의 경우 산도와 탄닌감이 높은데, 웬만한 소믈리에들도 이 두 가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요.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와인을 머금었을 때 침이 많이 분비되면 산도가 높은 경우이고, 입이 텁텁해져서 떫은 느낌이 들면 탄닌감이 높은 경우예요.”

박유현 소믈리에 부회장이 와인을 능숙하게 따 테이블에 한 잔씩 따른 뒤에 시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Heavy’한 레드와인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치킨이 안주로 테이블에 올라왔다. “자, 다들 건배!” “여기 와인 한 잔 더 주세요!” 부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와인을 홀짝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부원들 중 몇몇은 와인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왔다고 소개했다. 물론 평소에도 와인을 즐겨 마시는 학생들도 있다. “소믈리에는 많은 활동을 해요. ‘김준철 와인스쿨’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분이 학교 선배라 1년에 한 번씩 무료로 가요. 이런 점들도 우리 동아리의 메리트가 아닐까 싶어요.” 현재 소믈리에의 최고참이라는 김현웅(자전 정외15) 씨는 동아리의 장점을 소개하며 다양한 활동들을 설명했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각자 지인 한 명씩을 초대해 와인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세미나 발표를 마치고 시음 순서를 기다리는 동아리 부원들은 한껏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소믈리에 부원들은 대체적으로 술을 좋아하고 센 ‘주당’들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쉽게 부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입부원을 뽑는 기준은 엄격하다. 박유현 소믈리에 부회장이 선발 기준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술에 대해서 공부하고 즐기는 동아리여서 부원을 모집할 때, 주량이나 주사 등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하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참여율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평균 연령대가 타 중앙동아리에 비해서 되게 높은 편이죠.”

정기 세미나가 오후 10시쯤 끝나고 안암동 근방 술집에서 즐거운 뒤풀이가 이어졌다. 뒤풀이 참여부터는 자율이지만 빠지는 인원은 거의 없다. 김유진(문과대 영문16) 씨는 뒤풀이 참석률 100%를 자랑하는 ‘개근 부원’이다. “사람들이 진짜 좋은 동아리에요. 저희는 오히려 술 없이 만나면 어색하죠.” 진정으로 술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학생들이 모인 소믈리에, 와인과 함께 그들의 정(情)은 더욱 깊어가고 있었다.

 

글·사진│박성수 기자 holywater@

사진제공│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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