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이 14시간 50분이에요. 14시간도, 15시간도 아닌 14시간 50분.”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돌봄전담사 이 모 씨의 하소연 섞인 말이다. 이 씨는 계약직 ‘초단시간노동자’다. 초단시간노동자란 주 15시간 미만이나 월 60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일반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기간제법을 포함한 노동법과 각종 사회보험의 적용을 받아 권리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초단시간노동자들은 근무시간이 적다는 이유로 이러한 법과 제도의 적용대상에서 배제돼 있어 다른 노동자들과 같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 경력단절‧은퇴자 급증으로 초단시간노동자 공급 증가

  초단시간노동자는 계약서에 명시된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분류된다. 주로 보건서비스나 교육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초단시간노동자 범주에 속한다. 각종 아르바이트 업종도 해당된다.

  초단시간노동자 수는 2008년을 기점으로 급격한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발간한 ‘초단시간 근로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8년 27만 2079명이었던 초단시간노동자 수는 이듬해 31만 2766명으로 15% 증가했다. 5년이 지난 2013년에는 49만 7536명으로 2008년 대비 83%나 늘었다.

  초단시간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간제 근로가 기혼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가능케 하는 방법으로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2월 열린 고용전략회의에서 공공부문부터 단시간 근로비중을 높이겠다고 밝히며 노동시간 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노동 정책으로 내세웠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노동연구센터 문지선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 30대 기혼여성은 경제활동참가율이 50% 초반으로 매우 낮다”며 “이명박 정부가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기 위해 시간제 근로를 장려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노후 보장 계획을 마련하기 못한 고령층이 초단시간 노동시장에 뛰어들고 있어 초단시간노동자 수가 더욱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2015년 기준 46%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노인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초단시간노동시장으로 뛰어들며 초단시간 일자리도 급증한 것이다. ‘초단시간 근로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실제 초단시간노동자의 52.1%는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근활동가 김세진 씨는 “2009년 이후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를 맞이해 은퇴자들이 늘었다”이라며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은퇴자들이 초단시간노동시장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각종 법 적용 대상서 제외…업무수행 차질

  2015년 기준 초단시간노동자 수는 58만 5453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6%, 전체 비정규직의 19%에 달하는 수치다. 하지만 초단시간노동자들은 일반 노동자들과 달리 노동자를 위한 여러 법적 보호로부터 배제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초단시간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1주일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과 연차 유급휴가를 받을 권리가 없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4조 1항에 따른 퇴직급여제도도 적용받지 못해 근속기간이 길더라도 퇴직금을 수령하지 못한다. 4대 보험도 국민연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생업을 목적으로 3개월 이상 근로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고용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더불어 다른 비정규직과 달리 2년 이상 고용되더라도 무기계약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여겨지지 않아 무기계약 전환 의무 대상이 될 수 없다.

  사용자들은 현행법상 초단시간노동자들이 여러 제도적 보호에서 배제되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많은 사용자가 기간제 근로자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 않게 하기 위해 주 15시간 미만 ‘쪼개기 계약’으로만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초과근무로 인해 15시간 이상 근무하더라도 초단시간노동자로 대우하고 있다. 주 14시간에 계약해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신지완(남‧20) 씨는 “사용자들이 의도적으로 주 15시간 미만으로만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한다”며 “초과근무를 해 근무시간이 주 15시간을 넘어도 초과수당, 야간수당, 주휴수당을 받은 적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서 주 14시간 30분을 근무하고 있는 돌봄전담사 최희수(여‧50) 씨는 “초과근무가 잦은데도 학교에서 초과근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퇴직금과 국민연금, 건강보험도 보장받지 못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쪼개기 계약’으로 인해 초단시간노동자들의 하루 근무시간은 2~3시간 내외로 짧다. 짧은 근무시간은 노동자들의 업무 수행에도 어려움을 야기한다.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돌봄전담사들은 짧은 근무시간 때문에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초단시간노동 돌봄전담사들에게 주어지는 업무량은 주 15시간 이상 근무하는 노동자들과 비슷하지만, 이에 비해 근무시간은 적기 때문이다. 돌봄전담사 이 모 씨는 “주어진 근무시간에 모든 업무를 끝낼 수 없어 귀가해 일을 마친다”며 “아이들을 놔두고 퇴근할 수 없어서 자발적으로 초과근무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초단시간노동자 보호법’ 발의…제도 보완 기대전문가들은 초단시간노동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과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용자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법제 개선을 통해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지선 부연구위원은 “초단시간노동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사용자들이 비용 이익을 위해 초단시간 고용을 선호한다”며 “초단시간노동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하고 사용자 책임을 강화해 열악한 상태의 노동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국회의원은 2017년에 ‘초단시간노동자 보호법’을 발의했다. 초단시간노동자 보호법은 근로기준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고용보험법, 국민연금법, 국민건강보험법 등 5가지 법안을 일부 개정하는 ‘패키지 법안’이다. 초단시간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배제 조항을 없애 소정(所定)근로시간(정규적인 업무 개시와 시각 사이 휴게시간을 제외한 시간의 총수)이 적어도 유급휴일 및 연차유급휴가 적용과 사회보험 적용이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다. 강병원 국회의원실 측은 “초단시간 노동자도 노동법을 적용받고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게 하려고 법안을 발의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강병원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열악한 환경의 주변화된 노동을 줄일 수 있는 법안으로 평가된다. 김세진 활동가는 “초단시간노동자도 법적으로 노동권의 보장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며 “이 법안을 통해 노동자들이 훨씬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법안의 통과는 아직이다. 노동법의 특성상 여야 간 입장 차가 첨예해 법안을 심사하고 논의하는데 많은 시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강병원 의원실 측은 ”입장 차를 줄이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며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 의원들에게 법안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진현준 기자 per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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