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구성지게 이어지는 장대한 이야기가 주는 몰입감이 서사문화가 줄 수 있는 재미의 한 축이라면, 짧고 절묘하게 핵심을 자극하고 멈춤으로 남기는 여운이 그에 못지않은 큰 축이다. 헤밍웨이가 썼다는 전설의 아우라가 들러붙었을 정도로 유명하며 6단어 소설이라는 일종의 도전 양식을 유행시킨 작품, “매물: 아기 신발. 신은 적 없음”을 생각해보면 된다. 아무런 준비동작 없이 곧바로, 장르 코드의 정수와 보편적 인간사의 핵심을 동시에 건드려야 한다. 그런데 그 장르가 하필이면 과학적 상상력에 기반하여 우리의 것과 다르게 돌아가는 세계의 이야기를 펼쳐야 하는 것이라면, 더욱 골치 아프다. 핵심이 되는 과학적 개념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어떻게 움직이는 세상이 되어있는지가 전달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 다시금 인간사의 울림으로 독자들과 연결이 이뤄져야 한다. 실패한다면 서사의 재미조차 없는 단순한 클리셰 덩어리가 되고, 만에 하나 성공한다면 허를 찌르고 오랜 뒷맛을 남기는 세계관을 고밀도로 즐길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작품 당 분량이 작으니, 그만큼 더 많이씩 말이다.

 <슈뢰딩거의 고양희>(반바지/나무야미안해)는 기승전결이 있는 단편부터 아예 한 칸 분량으로 특정한 순간만을 엿보고 지나가는 한 칸짜리 엽편까지, 대부분 독립적인 짧은 SF물의 모음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우주 개척이든 미래사회든 신화적 판타지 세상이든, 각 작품 안에는 과학적 상상으로 풀어나가는 어떤 기발한 세계관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인간적 상호작용이 있다. 예를 들어 <안녕, 나의 외골격>은 외골격 강화복에 탑승하는 사람과 기기에 탑재된 시스템 사이에 이뤄지는 짧은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인공지능의 학습 과정, 사람과 기계가 맺어온 인간적인 친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서, 도구적 활용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인 낙천적 공존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장대한 이야기 없이, 그저 만화 한 칸을 통해서 말이다.

 과학적 상상으로 제시된 다양한 세계에서, 시공간은 다양하게 접히고 양자역학은 존재의 확정성을 흔들며 여러 종류의 멸망이 코앞에 놓여있기도 하다. 그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을 작가는 때로는 인생 전체를 훑는 이야기로, 때로는 그들이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을 상대의 시점에 들어가서 엿듣는 한 순간을 통해, 때로는 거의 직접적인 설명으로 펼쳐낸다. 그 안에서 양자역학의 상태 중첩성은 딸의 불치병 치료를 위한 애틋한 도전이 되고, 시간 루프의 클리셰는 멸망 앞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누리겠다는 고전적 인간미가 되고, 우주공간에서의 재난이 흥부놀부 만담이 된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인 <할아버지의 시계>는 이 모든 장점을 결국 하나로 응축시킨다. 양자역학의 원리를 시간의 유한성과 우주적 거리감과 엮이면서, 작품 내의 그런 과학적 현실이 가능하게 하는 사람의 꿈과 인간들의 고리를 이야기한다. 추상적 개념 놀음에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시작하든 결국 구체적 삶을 직시하는 미덕의 즐거움이다.

김낙호 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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