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봉사자 사이. ‘선거사무원’
노동자와 봉사자 사이. ‘선거사무원’
  • 박문정 기자
  • 승인 2018.06.07 14: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임금요? 최저임금보다도 적잖아요. 개인적으로 후보님과 아는 사이라 시급이 적더라도 도와드리는 마음으로 나왔어요. 돈만 보고는 하기 힘들죠.” (성동구의원 후보 선거사무원 A 씨)

# “확실히 지난번 선거보다 선거사무원을 구하는 게 힘들어졌어요. 최대 8인까지 등록할 수 있지만 선거운동이 시작된 오늘까지도 인원을 충족하지 못했어요.” (서울시의원 후보 B 씨)

 

  5월 31일부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운동기간이 시작됐다. 여기저기서 후보자를 알리기 위해 흰 장갑을 낀 손을 흔들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눈에 띤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출퇴근길의 유권자들에게 후보의 번호를 외치는 ‘선거사무원’들이다. 이들의 일당은 24년째 7만원이다. 도로 위에서 언제든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산업재해보상규정에 대해선 유관기관마다 해석이 다르다.

 

모순되는 관계 법령

  공직선거관리규칙에 따르면 선거사무원의 일급은 수당 3만원, 일비 2만원, 식비 2만원으로 총 7만원이다. 현행법상 수당 3만원만이 최저임금 산정 범위에 해당하며, 식비와 관할구역 내에서 소요되는 교통비를 뜻하는 일비는 현행법상 통상임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사무원의 수당과 실비에 관해서만 규정할 뿐 근로시간에 대한 부분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에 각 캠프에서는 자율적으로 근무시간을 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법과 최저임금법을 동시에 준수하기 위해선 근로시간이 3.9시간을 넘으면 안 된다. 하지만 실제 선거사무원들은 대개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활동하며,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평균 8시간을 근무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2018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8시간 근로 기준 일급은 60240원이지만 선거사무원들이 받는 수당은 이에 반절도 미치지 못한다.

  선거사무원은 기본임금 외 추가수당을 받을 수도 없다. 현행 선거법상 선거사무원 급여는 근로일수에 7만원을 곱한 금액을 초과하지 못한다. 따라서 일주일 만근 시 8시간분의 임금을 추가로 받는 주휴수당이나,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했을 시 최저임금액 기준 1.5배를 지급해야 하는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없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 대상에서 제외된다.

  선거법과 최저임금법이 충돌하는 상황에 대해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거법상 명시된 수당과 실비 이외에는 어떤 혜택도 지급해선 안 된다”며 “보험료를 지급할 시 기부행위에 해당돼 선거법에 저촉된다”고 말했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최저시급을 준수하지 않을 시 처벌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관계자는 “선거사무원이 근로자로 인정됐다면 근로기준법이 적용돼야 하는 게 맞다”며 “근로시간 대비 지급되는 급여가 최저임금법을 위반할 경우 신고가 들어온다면 처벌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 대법원 판례로 선거사무원의 근로자성이 인정됐음에도 선거법과 충돌해 근로기준법에 저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관계부처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후보자들은 당선인자격박탈 등 선거 상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선거법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구의원 후보에 출마한 한 후보는 “후보자 입장에서는 선거법을 우선적으로 준수할 수밖에 없다”며 “최저임금을 지키지 못하기에 선거사무원분들의 근무조건을 개선하는 등의 배려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목소리 낼 창구 없어 처우개선 미진

  지난 24년간 최저임금은 큰 폭으로 상승했으나 선거법상의 선거사무원 수당은 1994년 이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수당에 일비와 식비를 포함한 추가수당을 받고는 있지만 큰 금액이 아니다. 유급 선거사무원들도 일당이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이를 감안하고 지인들의 소개 등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성동구의원 후보 캠프의 선거사무원 C 씨는 “7만원에 교통비와 식비까지 전부 포함돼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받는 금액은 최저임금보다도 적다”며 “후보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으니 도와드리는 마음으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선거사무원 A 씨는 “수당이 적기 때문에 돈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선거사무원 일을 찾지 않는다”고 선거사무원 구인난의 이유를 짚었다.

  근로조건이 열악해 노동 공급이 줄면서 동원력이 없는 지방선거 후보 중에선 구인난에 시달리는 경우도 생긴다. 지난 지방선거에도 출마한 서울시의원 후보 B 씨는 “그동안 최저임금이 늘었지만 선거사무원 수당은 그대로여서 인력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며 “아직 할당된 선거사무원 인력을 충족하지 못했는데, 일급이 10만 원 내외로 상승한다면 수월하게 사무원을 모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에도 관련 규정이 개정되지 않는 이유는 선거사무원이라는 직무에 봉사성과 근로성이 혼재돼 있어서라는 분석이 다수다. 선거사무원들은 주로 후보자의 지인을 통해 업무를 제안받거나 당 활동의 일환으로 캠프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선거의 후보자와 선거사무원들은 한정된 지역구 내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의 특성상 인간적인 친밀감으로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꼽았다. 그렇기에 일당은 적지만 이에 대한 불만 제기가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안산시 시의원을 지낸 D 씨는 “선거사무원의 경우 봉사자와 후보의 지지자라는 성격이 강하다”며 “일반 근로자와 동일하게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선거사무원의 비정기적이고 짧은 근로일수도 규정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다. 김종곤 성동구의원 후보는 “선거사무원으로 일하는 기간이 짧고, 자주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조직을 꾸리거나 단체로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다”며 “입법자들의 고려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선거사무원, 근로기준법 적용 받아야

  최근 선거마다 해당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선거사무원의 수당을 인상해야 한다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지난 5월 25일 소병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최저임금 기준 기본 수당 △휴일근로 수당 △근로 중 재해 발생 시 보상 규정 등을 명시하고 있다. 해당 법률안은 선거사무원의 수당을 매해 최저임금액의 8시간분 이상으로 책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휴일 수당의 경우 평일 수당의 150%를 지급하도록 했다. 한편 산업재해보험 가입 시 후보자가 제공하는 혜택으로 간주돼 보험가입을 할 수 없던 기존의 복지 사각지대도 보완했다. 유사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선거비용과는 별도로 보상금을 보전해주도록 했다.

  하지만 산재보험 등 현재의 근로기준법에 포섭시키지 않고 선거사무원에 대해서만 특별한 규정을 만든 점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유성규 노무사는 “선거사무원 또한 일용직 노동자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만큼 법안을 통해 일반적인 사회보험시스템 안으로 포섭하는 게 맞다”며 “선거사무원을 다른 노동자들과 분리하면 또다시 사회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안을 발의한 소병훈 의원실은 “국가가 선거비용과는 별도로 산업재해에 따른 보상규정을 마련해 후보자의 보상 부담을 덜어주고, 선거사무원에 대한 실제적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글·사진│박문정 기자 moonligh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