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미정 교수는 '돌봄은 가족 뿐만 아니라 공동체 모두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입속에 머금을수록 뭉클해지는 이름, 바로 가족이다. 문학과 드라마가 다룬 가족 서사는 많은 이를 울컥하게 했다. <엄마를 부탁해>가 그랬고, <응답하라 1988>이 그랬다. 가족은 다른 모습으로도 우리를 눈물짓게 한다. 노인학대의 88%, 아동학대의 85%가 가족에서 일어난다는 통계는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한국 사회의 가족은 서로를 잘 돌보고 있을까.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진미정(서울대·아동가족학과) 교수는 행복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진 교수를 만나 가족과 돌봄에 대해 물어봤다.

 

가족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개인의 발달과 삶, 사람들이 맺는 관계, 거시적인 사회현상 등을 가족이라는 렌즈를 통해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가족이 개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생활·규범·건강·젠더 등의 측면에서 가족을 탐구하기도 합니다. 연구 대상이 꼭 가족으로 한정되지는 않아요. 가족과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 가족학의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가족 관계에서 ‘돌봄’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돌봄이란 무엇인가요

  “관계 안에서 상대의 생명과 생활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활동이 돌봄입니다. 아이, 노인, 환자 등 혼자서 생명과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운 이들을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돌봄이에요. 정서적인 지지가 필요한 사람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일도 돌봄입니다. 한국에선 여성이 주로 돌봄을 담당해요. 한국 가족은 성별에 따른 분업이 너무나 명확해 바깥일과 집안일의 구분이 확실합니다. 성역할에 대한 기대나 규범이 뚜렷해요. 하지만 돌봄은 어느 한 젠더가 담당해야 하는 일은 아닙니다. 가족 모두의 일이어야죠.”

 

우리 사회에서 돌봄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돌봄이 어렵고 수고스러운 부담일 수 있어요. 하지만 돌보고 돌봄 받는 관계에서 생기는 가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 수 있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요. 돌봄은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돌봄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요. 말로는 인정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좋은 평가를 주지는 않습니다. 돌봄 덕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정주부, 보육 교사, 간호사 등에 대한 사회적 처우를 보면 알 수 있죠.”

 

‘돌봄의 사회화’는 무슨 의미인가요

  “우리가 태어날 때 가족을 선택해서 태어나지는 않잖아요. 태어나 보니 그 가족인 거예요. 누구는 건강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요. 우연한 이유로 누구는 돌봄 받고 누구는 돌봄 받지 못합니다. 굉장히 불공평한 거죠. 돌봄을 오롯이 가족의 일로 전가하면 불우한 가정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배제돼요. 자신의 생존과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회와 가족이 돌봄을 분담해야 합니다. 이를 ‘돌봄의 사회화’라고 불러요.

  저출산·고령화로 한 가족이 돌봄을 전담하기는 더욱 어려워졌어요. 예전에는 기대수명이 짧아 가족이 노인을 돌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기대수명이 늘어 노인에게 돌봄이 필요한 시간도 많이 늘었습니다. 저출산으로 가족 구성원 수도 줄었어요. 예전과 비교해 가족이 돌봄을 전담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해요. 사회가 이 부담을 덜어주지 않으면 노인은 방치되고 맙니다. 사회적 기반이 더 많이 늘어야 하는 이유죠.”

 

‘돌봄의 사회화’를 실현하는 정책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지금 우리나라는 ‘보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보육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어요. 어떤 가족을 만나든지 아이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양육 서비스는 보장이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부모가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없는 가정의 부담을 덜어줘야 할 필요가 있어요.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보육의 공공성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보육 서비스 확대가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며 실패한 정책이라 말해요. 돌봄의 사회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보육 서비스 확대가 마냥 실패한 정책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보육의 개념이 저출산 문제 때문에 등장한 것도 아니고요.”

 

1인가구가 증가하면서 가족이 해체된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족은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맞는 문제를 갖고 있어요. 보통 가족이 해체된다고 얘기할 때, 사람들은 머릿속에 전형적인 모습의 가족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전형적인 가족이 주위에 더 보이지 않으니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가족을 하나의 전형성을 두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은 매우 복잡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에요.

  1인가구가 늘어난다고 사람들이 평생 혼자 사망할 때까지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혼자 살다가 배우자를 만나고, 함께 살다가 또 헤어집니다. 그러다가 재혼하면 또 가족을 꾸려 살아갑니다. 이런 식으로 1인가구로 살다가, 가족을 구성했다가, 다시 혼자 사는 식으로 삶이 펼쳐집니다. 1인가구가 늘어난다고 해서 가족이 해체되는 것은 아니에요. 어차피 사람은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잖아요.”

 

일상에서 경험하는 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가족관계가 아무 문제 없이 항상 행복할 수는 없어요. 이는 신화일 뿐이에요. 모든 관계는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게 심각해져 상대방과 자신 사이의 신뢰를 모두 깰 정도가 아니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 물론 갈등의 골이 깊다면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전국 시군구마다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있어요. 가족상담이나 가족생활교육, 부모교육을 지원합니다. 요즘 부모교육을 굉장히 많이 해요.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라는 말이 있잖아요. 부모교육을 통해 부모의 역할을 미리 연습할 수 있습니다. 부모교육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은 사소한 것 같아도 차이가 커요. 아이들의 나이별 특징을 알고 자녀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면 분명 얻는 게 많을 겁니다. 어른의 기준으로만 아이를 보지 않는 법도 배울 수 있어요.”

 

언젠가 새로운 가족을 꾸릴지 모르는 대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자칫하면 남에게 하기 쉬운 충고만 나열할 것 같아요.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겠어요. 젊은 사람도 저마다 처해 있는 상황과 맥락이 다 다른걸요.

  굳이 말씀드리자면, 누구나 자연스레 때가 되면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게 가족생활이라 생각할 수도 있어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나답게’ 살려고 노력하잖아요. 가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모두 자신의 가치와 생각이 있죠. 어떤 가족이 좋은 가족이고, 행복한 가족인지는 그 가족에게 달린 일입니다. 다른 가족과 비교할 필요 없어요. ‘이렇게 살아야 해, 이 정도는 갖춰야 해’와 같은 사회적인 기대들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답니다.”

 

 

글│김태훈 기자 foxtrot@

사진│조은비 기자 juli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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