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혼동하기 쉽지만, 누군가에게 이입하는 것과 그래서 그에게 공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입은 타인의 시점이 되어 그에게 부여된 여러 조건을 정밀하게 조망함으로써 그 결과로 나온 생각과 감정의 이유를 이해하는 절차다. 한편 공감은 생각과 감정에 실제로 동조하는 것이다.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함께 살아가야 할 가까운 타인과 공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섣부른 공감에 빠지지 않되 이입을 해보는 것, 즉 실재하는 마찰을 어설프게 덮어버리지 않되 특정한 사람이 만들어진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 (티부이/내인생의책)>은 속칭 ‘보트피플’이라고 불렸던 베트남 전쟁 난민으로 어릴적 미국에 이주한 작가가 자신의 생활 경험과 부모님의 경험을 교차시키며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작가의 이야기에는 이민자 1.5세대로 성장하며 겪는 인종차별, 불안정한 신분과 문화적 격차 속에서 겪었던 부모와의 가족 갈등이 펼쳐진다. 그러다가 학교 과제를 시발점으로 해서, 아이를 낳는 경험 즉 ‘가족이란 것이 그저 그 안에서 태어나버린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 되면서 부모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연에는 베트남의 굴곡진 현대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2차대전 이후 프랑스에 의한 재식민지화, 독립운동과 미국 개입으로 인한 베트남전, 적화통일 등 거시적 역사는, 그 안을 살아갔던 부모의 미시적 일상의 모든 부분을 형성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부모 세대가 그렇게 고생했음을 알게 되었으니 젊은 사람들은 좀 공경하고 효도해라 같은 어설픈 화합의 훈계로 흐를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당당할 만한데도 위축된 모습, 가족을 친절하게 대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어두운 그림자, 결국 이혼하고도 온전히 남으로 살지도 재결합을 생각하지도 않는 상태, 그 어떤 것도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차곡차곡 그 분들이 겪어온 인생 과정을 되짚으며,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이렇게 될 만 했구나 좀 더 이해를 할 따름이다.

  커다란 역사 속에 처했는데 그나마 ‘장기판의 말도 아닌’ 일개 개인들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그저 정상적인 생활이라도 이루어 나가기 위해 매번 나름 최선을 다 하려고 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바로 작가의 가족이다. 식민지 현실 안에서도 나름 좋은 교육을 받고, 가족과 도움을 주고받고, 체제로 나누어진 나라에서 지낼 곳을 찾고, 생존을 꾀하고, 피난을 선택한다. 최선을 다 했으니 세상 앞에 당당하다거나 행복해졌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선택의 조건과 순간들을 이해함으로써, 이 모든 것이 단순히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자신에게까지 이어져오는 어떤 연결과 흐름임을 잊지 않아야 할 뿐이다.

  부모가 겪은 모든 과정은 그들을 만들었고, 그런 그들이 자녀들에게 겪게 한 성장 과정은 다른 여러 경험들과 섞이며 저자를 만들었다. 이제 그 다음 세대에게는 무엇이 이어지고, 무엇이 새로워질 것인가. 모든 것은 어설픈 화해가 아닌, 정직한 이해에서 시작될 것이다.

 

김낙호 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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