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규(농업경제학과 95학번) 동인이 변화하던 1990년대 당시의 대학사회와 대학언론을 설명하고 있다.

  “제가 고대신문에서 활동할 때 즈음엔 폭력적으로 변질된 일부 운동권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이 차갑게 식어갈 때였죠. 학내 구성원들은 대학사회에 떠오른 새로운 의제를 공유하길 원했어요, 고대신문이 다양한 주제로 눈을 돌려야 하는 시대와 마주한 거죠.” 1998년 1학기 편집국장 이성규(농업경제학과 95학번) 동인은 확 변한 대학사회 분위기에 고민하던 98년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고대신문 기자로서 했던 고민들이 모두 제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데 밑거름이 된 것 같군요.”

 

  운동권 끝물, 다양한 이야기를 싣다

  대학가를 뒤흔들었던 대단위 학생운동은 9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 이성규 동인이 입사한 1996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운동이 강하게 일었다.

  이성규 동인이 이끈 편집국은 학생운동을 이어나가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에 대해 여러 번 심층 보도했다.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수감되며 운동권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듯 했지만 그 해 한총련 소속 대학생 2만여 명이 연세대 교내시설 일부를 점거한 ‘연세대 사태’가 일어나면서 폭력적인 학생운동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고 희생됐었죠. 사회적인 메시지를 발산하기 위한 방법으로 폭력 운동이 정당한지 의문이 쏟아져 나왔어요.”

  한총련 보도에 있어서 고대신문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오랜 토론 끝에 지면에는 과격한 운동권에 비판적인 입장이 담겼다. “과거부터 이어져 오던 운동권의 전통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과 많이 충돌했었죠. 하지만 한총련의 폭력적인 투쟁방식과 비민주적인 조직 운영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이성규 동인은 단단하고 투쟁적인 성격이 강했던 학생운동의 중심 가치관이 깨지기 시작하면서 그 틈새로 다양한 움직임이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90년대 중반은 학생들이 운동권에 공감했던 마지막 시기였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문화가 대학사회로 폭넓게 들어오며 다양한 가치관이 뒤섞이던 시기였죠. 말 그대로 과도기였어요.”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여성 문제도 적극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학회 단위의 페미니즘 담론이 형성됐고, 성폭력 학칙 제정 논의도 진행됐다. “남성 중심적이던 고대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문화에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고대신문에서 당연히 그 목소리를 키우는 역할을 해야 했죠.” 1998년 3월 9일 발간된 1312호에 실린 시사면은 직업 전선에서 먼저 밀려나고 해고되는 직장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당시 편집국 내 여성 기자 비중도 적지 않았어요. 고대신문이 그런 사회의 일면을 꺼내놓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해요.”

 

  학내 구성원들의 관점에서 다룬 IMF

  이성규 동인이 편집국장이 된 1998년 1학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였다. 고대신문도 당시 IMF 영향을 받았다. “편집국 장비나 기계적인 조작 문제로 발행이 자주 늦춰지다 보니 편집 장비를 전체적으로 바꿔야 했어요. 그런데 IMF로 학교 재정도 안 좋아지면서 지원이 끊겨서 무기한 지연되기도 했죠.”

  교직원과 교수, 그리고 학생마다 IMF를 체감하는 온도는 천차만별이었다. “제가 편집국장을 맡은 직후만 해도 IMF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학내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곧 단국대 부도 사태가 터지면서 우리 학교도 영향을 받을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 이후로는 IMF의 영향을 받은 교직원과 교수는 물론, 학생들 반응도 다양하게 취재했습니다.”

  학교 운영 조직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했기 때문에 직원노조가 제일 먼저 파업을 진행했다. 학과 통폐합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교수들의 일자리마저 위태로워졌다. “1998년도에는 IMF에 대한 조치가 하나둘씩 취해져 가는 상황이어서 교직원과 교수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실으려고 노력했어요.”

  이어지는 기업 부도에 채용 규모가 작아지면서 취업 준비에 난관을 겪는 ‘취업재수생’도 늘어났다. 이런 취업문제를 보도하는 동시에, 대학부도 현실화와 그 대책을 다룬 ‘빅딜’ 기획을 준비했다. “등록금이 동결돼서 IMF를 잘 체감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환율 폭등으로 어학연수를 포기하는 등 점차 피부로 와 닿는 사례들도 많이 들려왔죠. 보도성 기사부터 주제 탐구형 기사까지 IMF가 대학 내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을 여러 방식으로 다뤘어요.”

 

  독자들이 원하는 관심사를 다뤄야

  그동안은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학생운동에 초점을 맞춘 기사들이 주가 돼왔지만 학생의 일상을 조명하길 바라는 요구가 점차 늘었다. “독자들이 거대담론을 다루는 기사나 지나치게 전문적인 학술기사에 피로감을 느낀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였어요. 특히 독자들은 학보가 강의실이나 학생자치공간 부족과 같은 복지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길 바랐죠. 수강신청 문제나 공간문제는 지금이나 그때나 여전했거든요.” 1998년 3월 9일 발간된 1312호에는 <학내 복지 실태 점검> 기획을 통해 학내 복지와 본교 교직원 복지 실태 현황에 대해 보도하기도 했다.

  이성규 동인은 여전히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를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미디어 스타트업 회사가 언론생태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투자해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90년대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 가장 설레더군요.”

  끝으로 이성규 동인은 고대신문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며 ‘독자 우선주의’를 강조했다. “수많은 언론사에서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어 고대신문도 차별화 전략을 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이제 ‘독자’에 초점을 맞춰야 하죠. 고려대라는 사회 안에서 누굴 독자로 삼고 어떻게 그 이야기를 풍성하게 전달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성규 동인은 독자층 조사(Audience Research)를 통해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다양해진 관심사를 어떻게 전달하고 다룰 것인지를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내에서 고대신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재정립하고 독자들과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합니다. 고대신문의 존재감을 다시금 확보해야죠.”

 

글 | 김예진 기자 sierra@

사진 | 류동현 기자 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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