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본교 교수·국어국문학과)

  시는 삶에서 자양분을 얻고 삶은 시에서 자양분을 얻는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기도 하겠으나 이 둘이 얽혀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을 것도 없다. 이 말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시적인 순간을 생각하지 않고 부유하는 삶과, 삶을 단정 짓거나 삶과 동떨어진 곳에 전시된 말이다. 삶과 유리된 곳에서 권위적인 말이 나타나고 얽혀 있는 곳에서 시의 말이 간신히 발설된다.

  응모작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취해 시적인 것을 확보하려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 가족에 대한 연민, 이웃에 대한 관심 등 시심은 자신과 둘레 세계를 배경으로 일어났다. 자기 자신을 주목하고 바깥과 소통하려는 응모작들의 시도 자체에는 신뢰가 갔으나 이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인 느낌을 확장하려는 의도는 읽을 수 있으나 그것이 쓰고 싶었던 첫 감정을 앞설 때 막연하거나 익숙한 말들이 들어서게 된다. 익숙한 것에 마음을 맡기는 것과 서툴러 보이더라도 낯선 마음을 관철시키는 것의 기로에서 대학 신문이 문학상을 제정할 때의 그 최초의 시간을 떠올리며 후자의 길에 주목했다.

  「저기요」는 과감하다. 결핍과 죄, 초록과 죽음을 말하는 대목은 막연해 보이고 그곳에서 화자가 편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2연을 한 행으로 처리한 뒤 급격히 목소리를 전환하는 대목에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마음이 보존되어 있으며, 돌담 밑 ‘발끝’을 주목하거나 그림자를 ‘뒤로’ 보내겠다고 말하는 부분은 달빛내리는 풍경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을 발휘한다. 이처럼 시적 상태를 성공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이 마음이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며 수상자에게는 축하의 인사를 응모자에게는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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