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봉사단 1기 기장 박정주 씨에게 봉사는 일상이자 삶이 됐다

  세상을 밝히는 따뜻한 봉사를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KUSSO(Korea University Social Service Organization, 단장=어도선 교수)라고 불리는 사회봉사단이 바로 그들이다. 사회봉사단은 2008년 발족 이래로 어느새 창단 10주년을 맞이했다. 본교생들이 실천해 온 봉사의 의미와 무게가 궁금해진 날, 사회봉사단 1기 기장 박정주(행정학과 00학번) 교우를 만났다.

 

  지나온 10년과 사회봉사단

  “제일 처음 시작할 때 10년 후에 어떻게 될까 하고 굉장히 많은 얘길 나눴어요. 사회봉사단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10주년이 되는 해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일 텐데 싶었죠.” 당초 총장 직속이었던 사회봉사단이 개편을 거쳐 교내 부서로 바뀌자 처음엔 사회봉사단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고 무사히 10주년을 맞았다. “잘 되고 있어서 저희도 좋아요.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OB모임도 만들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1기부터 9기까지 지난 기수의 단원들이 모여 만든 모임의 이름은 ‘지구촌 나눔 사랑회’, 줄여서 ‘지나회’다. 박정주 씨가 회장을 맡은 지나회는 2~3달에 한 번씩 꼭 봉사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사회봉사단이 10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던 데는 모두의 노력이 있었죠. 1~10기 단원들, 부장님과 단장님 등 모두의 노력이 사회봉사단을 고려대만의 끈끈한 문화로 정착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회봉사단으로부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거의 인생이 180도 바뀌었죠.” 학생들이 봉사를 직접 기획하고 실천하는 사회봉사단의 특성상 능동적으로 각종 봉사활동 계획을 만들면서 박 씨는 크게 성장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들어온 회사에서도 그는 ‘기획’을 선택했다. 지금까지도 기획업무를 하고 있지만 그렇게 어렵고 힘들진 않다고 한다. 봉사단에서 길렀던 기획력을 살려 사내에서 답사, 봉사 등을 척척 만들다보니 호응은 덤으로 따라왔다. 좋은 반응들은 고스란히 자신감으로 돌아왔다. 이제 뭔가를 직접 만들어내지 않으면 따분할 정도다.

  봉사단을 떠난 지 오래됐는데도 여전히 가족같이 지내는 단원들 간의 따뜻한 정도 큰 자산이다. “수많은 봉사를 오랫동안 함께하다 보니 참 끈끈해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많으니 살면서 도움도 참 많이 되고요. 만날 때마다 받는 에너지는 지치지 않는 삶의 원동력이죠.”

 

  얼떨결에 맡은 기장, 출범 초기의 고군분투

  사실 그는 고시 공부를 하느라 학교를 오랫동안 다니지 않았다. 쓸 수 있던 휴학을 다 쓰고 나니 학교에서 ‘복학을 하지 않으면 제적’이라는 통보 메일을 받았다.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곧장 사회봉사단에 지원했다. “사실 저희 아버지가 장애인이세요. 장애인이신데도 봉사활동을 많이 하셔서 어릴 때부터 봉사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때마침 학교에 봉사단이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합격하고 나서 나이가 제일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창단 초기, 제일 나이가 가장 많다는 이유로 사회봉사단 직원들이 주로 박 씨에게만 연락해 일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다 기장 투표를 했는데 제가 뽑혀버렸어요. 어린 친구들이 보기엔 제가 늘 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하하.”

  제일 부족한 건 시스템이었다. 일본까지 벤치마킹을 가면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회봉사단이 시작되긴 했지만, 큰 방향만 있고 다른 걸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특히 단순히 봉사만 하는 게 아닌, 봉사를 ‘기획’해야 한다는 사회봉사단의 새로운 기조는 그를 비롯한 단원들에게 큰 숙제였다.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봉사활동 시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신규 봉사는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오직 사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어요.”

맨땅에 헤딩하기에 가깝던 좌충우돌, 그 후로 9년이 흐른 지금 사회봉사단은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각자가 맡아야 할 역할들이 확실하게 잘 정립돼 있습니다. 기획부, 멀티부, 정보부 등으로 나뉘어 있어 누가 들어가도 일을 할 수 있게끔 해 놨어요.”

 

  사회봉사단을 만든 봉사들

  사회봉사단이 하는 여러 가지 봉사 중 주축이 되는 활동은 교육캠프다. “‘방학이니까 뭘 해야 하지 않겠나’ 하다가 ‘1박2일’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을 봤는데,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과 체육대회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보며 ‘아, 저거다’ 싶었죠.” 이후 박 씨는 교육캠프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1박 2일은 짧으니 닷새 동안 진행하되, 학생들에게 국어나 영어 등의 과목을 교육하는 방식으로 계획을 짰다. 때마침 농협과 시골 학교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사회봉사단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렇게 시작된 교육캠프는 영월중학교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열심히 기획해 진행한 캠프는 KBS에서 촬영을 올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가장 의미가 깊었던 건 중학생들과 계속 연을 맺고 지내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고려대에 진학하기도 하고 그 인연이 이어지다 보니 주변 시골 학교들에 소문이 났다. 이후 사회봉사단이 진행하는 교육캠프는 2018년 기준 21개 지역에서 총 93회나 진행됐다. “여름에만 했던 게 겨울까지 확대됐습니다. 봉사자들끼리도 되게 친해지고 다음 기수 봉사자들 지원도 많아져 선순환이 일어나게끔 해준 활동이었어요.”

  캠프에서 만난 중학생들은 고연전에 정기적으로 초대한다. 아이들은 학교투어를 하며 학습동기도 얻어간다. “1기들은 교육캠프 얘기가 나올 때마다 기분이 좋고 감회가 새로워요. 어떻게 보면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건데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뿌듯합니다.”

  이처럼 교육캠프를 통해 10년 동안 봉사를 하다 보니 국내에는 사회봉사단이 안 가본 곳이 드물 정도다. 전국 방방곡곡 시골학교들을 다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제는 해외로 나아가야 할 때예요. 해외로 적극적으로 교육봉사를 나가서 그곳 아이들이 나중에 고려대로 진학하도록 연계한다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요.”

 

  봉사와 평화, 인생의 모토

  박정주 씨에게는 인생의 좌우명이 딱히 없다. “뭔가를 정해 놓으면 그것에 얽매여서 살게 되더라고요. 어릴 땐 ‘최고보다 최선을’이란 좌우명이 있었죠. 그런데 좌우명과는 달리 제가 ‘최고’에 너무 집착하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최고에 집착하던 과거와는 달리, 평화를 인생에서의 가장 큰 가치로 삼고 있다.

  이렇게 바뀌게 되기까지는 ‘봉사’가 있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봉사활동을 하며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보니 그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 중심의 사고를 버리고 주변을 돌아보게 된 시발점이었다. “성공, 부, 명예, 다 좋아요. 그렇지만 내 주위 사람도 잘 챙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잘 산다고 말하겠어요.” 봉사는 그에게 세상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박정주 씨에게 봉사란 일상적 활동이다. “봉사라고 해서 굳이 시선을 달리할 필요가 없어요. 제게 봉사란 공기같이 무의식적으로 함께 지내는 거예요.” 봉사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도 싫단다. 해야만 해서 하는 형식적인 봉사만 반복되면 사람들은 자꾸 봉사를 어렵고, 시간을 따로 내야 하는 부담스러운 것으로 여겨 멀어지게 된다. “어디를 가는 것만 봉사라고 규정짓지 마세요. 길 가다가 휴지 한 개 줍는 것도 봉사입니다. 삶으로 자연스레 녹여내세요.”

 

글 | 이다솜 기자 romeo@

사진 | 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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