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로 임기를 마치는 염재호 총장. 오랜 기다림 끝에 총장에 선임된 만큼, 4년의 임기 동안 자신의 교육철학을 투영하며 고려대를 변화시키기에 매진해왔다. 염재호 총장은 개척하는 지성이라는 교육철학 아래 3무정책,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 확장, 생활 장학금 확대, 창의 공간 개설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며 고대생의 일상을 바꾸어놓았다. 염재호 총장과 함께 지난 4년의 고려대를 되돌아보는 자리를 가졌다.

 

  - 총장으로서 4년의 임기를 마치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는데, 즐겁게 소임을 다했습니다. 우리나라가 21세기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대학이 시대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대학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학내에서 의미 있게 전달되고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낸 보람찬 4년이었습니다.”

 

  - 가장 중시한 현안은 무엇이었고 이를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하셨습니까

  “고려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고등교육기관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목표 의식에서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문명사적 변환기를 맞이하는 현재, 지식의 반감기는 점점 짧아져 학문은 10년도 유효하지 않다는 말이 나옵니다. 임기 동안 21세기에 알맞은 대학교육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학생들이 더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유연학기제, 3무정책 등 교육 체제를 개편했으며 지식의 놀이 공간인 SK미래관, 파이빌, X-Garage 등을 건설해 학생들의 교육 환경을 바꿨습니다.”

 

  - 임기 중 가장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효율적인 학사행정체계를 구현하고자 학사지원본부를 설치했는데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제가 취임하기 전에는 단과대 차원에서 각각의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단과대 행정 조직이 비대했습니다. 단과대끼리 서로 강의실도 빌려주지 않는 등 교류도 부족했습니다. 이에, 단과대별 공통 업무를 담당하는 학사지원본부를 인문사회계와 이공계 캠퍼스에 하나씩 둬 업무 효율을 높이는 행정 개혁을 꾀했습니다. 개편된 학사행정체계가 자리 잡도록 임기 초반부터 신경 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 학내 구성원과의 소통 과정에서 느낀 한계가 있다면

  “소통을 위해 노력했으나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임기 초에 학생들과 소통하고자 질의응답 형식의 총장과의 대화특강을 열었습니다. 당시 학생회관 리모델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어 학생회관 내부 환경부터 먼저 정리하면 리모델링을 진행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이 구두로 약속한 학생회관 공간 운용방식을 명문화 하지 않으면 리모델링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반발했습니다. 학교를 신뢰하지 않는 학생들의 태도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당시 학생들은 강의를 개설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에서 제공하는 정규 강의를 학생이 개설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가 불통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소통을 위해 시작한 특강이 투쟁을 위한 기회로 변모돼 안타까웠습니다. 소통은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이해하며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최선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데,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를 보며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 급변하는 시대에 고려대가 추구해야 할 고대정신은 무엇입니까

  “총장이 되면서 들고 나온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개척하는 지성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라는 목표에 맞춰 정형화돼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대학에 입학해서도 교육의 목표가 취업이라는 큰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학생들 다수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하고자 학점 관리에만 만전을 기합니다. 하지만 21세기는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유람선을 기다려 봤자 더는 유람선이 오지 않습니다. 직접 뗏목과 보트를 만들어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개척의 정신인 것입니다.

  또 학생들이 지성과 야성을 균형적으로 갖췄으면 좋겠습니다. 학문을 닦으며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은 물론이거니와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야성의 고대정신은 100년 이상을 지켜온 우리만의 전통입니다. 끈끈한 고대정신을 이어나가면서 끊임없이 개척하고 혁신하는 미래지향적 인재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 앞으로의 대학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20세기는 대학에서 학문의 핵심을 빠르게 습득해 사회에 진출하는 게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21세기는 다릅니다. 지식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내는 인재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다수의 한국 대학생들은 여전히 빠르게 지식을 습득하려고만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학교육이 학생들의 사고 능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SK미래관에 111개의 캐럴(개인연구공간)111개의 토론실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식을 습득한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고 새 지식을 창출해내는 생각의 근육을 키우도록 돕는 겁니다. 앞으로 대기업에서도 채용 시 학교 졸업장보다는 개인의 비판적·창의적 사고 능력을 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는 대안대학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 사회에서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에선 이상하게도 대학이 특혜 받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대학이 기득권을 갖고 폐쇄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집단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대학을 꼽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이 해야 할 역할도 이와 같습니다. 대학은 한발 앞서 새로운 사고의 흐름을 주도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사회 이슈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곳곳에 존재하는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사회 혁신가를 양성해야 합니다.”

 

  - 고대인에게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변화를 시도한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세상은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맞아 급변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국내 대학들은 제자리에 서 있습니다. 취임 전에 고대는 고대로(그대로) 있어서 고대다라는 우스갯소리를 듣고선 더 경각심을 가졌습니다. 제 노력이 뿌리를 못 내렸다 하더라도 변화를 위한 화두를 많이 던지고, 시대를 앞서가는 대학을 만들고자 힘썼던 총장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 퇴임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실 계획입니까

  “글쎄요. 학생 시절, 법대 진학 후 사법시험 공부 대신 교수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자유 때문이었습니다. 자유롭게 살고자 교수의 길을 갔는데, 학교 보직을 맡고 총장 일을 하면서 그리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면서 되찾은 자유를 만끽하려고 합니다.”

 

  - 고려대 구성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학생들이 가진 두드러진 문제점은 자신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해외 교우들이 고대생처럼만 하면 세계 어디서든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여러분들이 더 큰 자신감과 비전을 갖고 사회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30년 뒤 여러분들의 세상은 지금과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길 바랍니다.”

 

글 | 이준성 기자 mamba@

사진 | 조은비 기자 juli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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