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인용되곤 하는 심리학적 현상 가운데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것이 있다. 단순화하자면,  사람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게 했더니 하수는 자기 실력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고 고수는 오히려 과소평가하더라는 것이다. 사실 자기 인식과 실제의 괴리는 재미있는 인물 요소가 되어주곤 하는데, 대체로 전자의 이야기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좀 더 드문, 후자의 경우라면 어떨까. 자신의 고강함을 모르는 캐릭터로 속칭 ‘재수 없다’는 느낌을 들지 않게 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지 말이다.

  미디어다음 연재중인 <아비무쌍>(노경찬 원작, 이현석 만화)은 수련생 시절에는 천하제일을 꿈꾼 적도 있지만 자신의 실력이 무림에 명함을 내밀만한 정도가 아니라고 깨닫고 그냥 적당한 해결사 정도로 살아가는 주인공 노가장이 등장한다. 하지만 어느날 세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안정적 생활을 위해 무림 조직의 말단에 지원하는데, 상당한 고수였던 것이다. 노가장은 자신이 빈약한 노인인 사부한테도 못 이기는 약골이라고 믿었지만, 사실 그의 사부는 무림 최고 고수급이었고, 이유가 있어서 노가장을 속인 것이었다.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도 스스로를 그저 그렇다고 착각하며 무림의 풍파를 지나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무협 캐릭터가 짜증보다는 짠함을 이끌어내도록 만드는 핵심은 가족 생계형 대처에 있다. 노가장에게는 절세 고수, 혹은 고수의 운명을 타고 성장해가는 흔한 무협 영웅들의 대범함이 없다. 거대한 충의나 시대를 초월한 연심 같은 초인적 가치 대신 그를 움직이는 것은, 싱글대디로 세 명의 자식을 먹이고 교육시켜내는 좀 더 미시적이지만 결코 덜 묵직하지 않은 임무다. 융숭한 대접보다는 복지 혜택이 중요하고, 무림에 명성을 떨치는 과업보다는 애들을 돌보도록 정시퇴근이 가능한 직책을 선호한다. 영웅의 허상보다는 가족을 건사하는 소시민적 목표를 추구하기 바쁜 주인공이 엄청난 무공을 보여주면서도 계속 깨닫지는 못하는 흐름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감정을 솔직하고 크게 드러내는 주인공의 표정, 자각하지 않고 손쉽게 고수의 움직임을 보이는 괴리를 명료하게 표현해내는 그림이 지탱해주는 덕분이다.

  여기에는 즉각적 재미 너머, 우리들의 어떤 처지와 공명하는 페이소스도 있다. 골방에서 갑갑함을 견디며 엄청나게 ‘스펙’을 쌓아왔으니 분명 고수가 되어 취업세계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하필 내 주변이 다들 대단해서 내가 별 것 아니라는 기분에 눌리는 그런 심경이라든지 말이다. 자신의 그저 그러함을 인정하고 세상에 적응하며, 자신에게 소중한 작은 무언가라도 건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성숙함에 응원을 보내기 좋다. 그렇기에 그 과정에서 우연한 기회에, 틈새로 고수의 힘이 폭발할 때 더욱 열렬히 환호할 수 있다. 작품에서도, 현실에서도.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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