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수 한양대 교수·경영전문대학원
신민수
한양대 교수·경영전문대학원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은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데이터의 내용, 유형, 제공 사업자 등에 관계없이 트래픽이 동등하게 처리돼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동안 망 중립성을 둘러싼 토론은 구체적인 서비스 보다는 사고체계를 달리하는 진영 간의 논쟁으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최근 스마트 기기의 확산과 5G 도래 등으로 고도화된 네트워크 구축과 서비스 개발 투자를 위해서는 기계적으로 동등한 대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망 중립성은 2002Tim Wu의 논문,‘A Proposal for Network Neutrality’에서 처음으로 실체화 되었으며 인터넷에서의 단대단(end-to-end) 원칙을 기본 개념으로 한다. 단대단 원칙이란 네트워크의 지능 및 망()을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망의 끝단인 단말에 두고 네트워크 패킷은 단순히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이 원칙에 따라 인터넷은 패킷을 식별하는 기능을 최소한으로 유지시켰고, 이런 방식은 초기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전송하는데 복잡한 과정 없이 빠른 처리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현재의 인터넷 체계는 애플리케이션이 요구하는 품질을 보장하기 어려우며, 이에 따라 단대단 원칙을 무조건 적용할 경우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들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초기 인터넷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는가? 초기 인터넷 시기와 현재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변화 중의 하나는 사용자 간의 신뢰가 눈에 뜨일 정도로 약해진 것이다. 20여 년 전의 인터넷에서 최종 사용자들은 수적으로 매우 적었고, 인터넷을 주로 학술적 연구와 연구 결과의 공유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인터넷을 사용하는 개인이나 집단들의 동기가 항상 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윤리적이라 할지라도 단대단 원칙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단말 측이 상호 이로운 행위를 성취하도록 항상 협력한다는 가정 역시 옳지 않다. 또 하나, 인터넷 발전과 함께 달라진 운용의 주체를 중요한 변화로 들 수 있다. 초기 인터넷을 운용하는 책임은 학계 혹은 정부단체가 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인터넷 사업자들이 대부분의 인터넷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네트워크를 운용하고 있다. 이들은 상업적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로서 기술혁신에 따른 새로운 서비스 제공과 품질 보장에 대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망 중립성 개념 역시 달라지고 있다. 초기의 망 중립성은 망의 개방성 및 중립성 유지를 위한 엄격한 개념이었으나. 현재는 트래픽이 폭증하면서 ISP의 망 관리 권한이 일부 허용 되었다. 초기의 망 중립성에서는 모든 트래픽에 대한 동일한 처리와 무조건적인 접근성 보장이 요구되었으나, 현재는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지만 합법적인 경우에 한해 접근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변화되었다. 특히 현재의 망 중립성에서는 네트워크 연결 의무 보다는 망 및 트래픽에 대한 정보공개 등 투명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망 중립성이 고정된 목적 개념이 아니라 인터넷 환경에 따라 진화하는 도구 개념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망 중립성이 지지되었던 이유는 초고속인터넷 설비의 부족과 열악한 통신 품질 때문이었다. 네트워크 설비 부족을 명분으로 과점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ISP가 지배력을 남용하여 트래픽을 차별 또는 차단할 경우 ISP에 비해 약자인 콘텐츠 사업자가 통제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망 중립성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미국에서 망 중립성의 주요 원칙에 대한 폐기 선언이 이루어졌다. 2017년에 발표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의 이 선언은 망 중립성의 상대성네트워크의 플랫폼 기능에 대한 인정이라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망 중립성이 경쟁과 혁신·이용자 편익 제고 등 시장의 근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시장의 경쟁상황 변화와 정책목표 등에 따라 합리적으로 재검토될 필요성이 인정된 것이다. 또한 통신사업자가 네트워크라는 플랫폼을 통해 구축되는 양면시장에서 적절한 가격을 책정하여 투자의 선순환을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와 달리 유럽의 다수 국가는 망 중립성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EU 차원에서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기 위해 공정경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망 중립성에 대한 정책 접근방향은 해당 국가의 인터넷 시장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통신망의 합리적 관리·이용과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에 관한 기준을 통해 기본적인 체계를 정립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이 시행된 이후에 위반사례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 들어 5G의 상용화가 임박하면서 망 중립성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논의의 요지는 5G 시대의 네트워크 기술과 망 중립성 간 갈등이다. 다양한 산업 및 사물 간 연결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5G에서는 네트워크 슬라이싱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산업별 속성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안전과 직결된 자율주행차 등의 서비스와 단순 웹브라우징은 각각 네트워크에 대한 요구 수준이 다르기에 5G에서는 속도·용량 등 개별 서비스에 최적화된 기능을 제공하는 방식이 확대될 전망이다. 그런데 망 중립성을 고수할 경우에는 이러한 5G 시대에 소비자가 요구하는 질 높은 개별 서비스 출현이 어려워지고 산업 혁신의 지연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5G 시대의 환경 하에서 시장 참여자의 공정한 수익과 비용 배분을 위한 망 공정성(Network Fair Use)’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인터넷 초기 단계의 비차별성과 형평성 원칙은 현재와 같은 대용량 트래픽과 과점적 콘텐츠 시장 하에서 공정성 원칙과 응익원칙(Pay as you go)이 적용되는 망 중립성 정책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다만, 망 중립성 원칙이 망 공정성 원칙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망 중립성의 근간이 되는 철학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야 하며, 논의의 방향은 시장과 기술 환경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망 중립성을 찬성하는 측에서 우려하고 있는 소비자 선택에 대한 제한과 차별의 해결을 위해서는 경쟁법을 통한 규율 가능성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망 중립성은 1990년대 말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정보통신 시장 개방과 유사한 글로벌 이슈로 향후 국내만이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 대해 보편성을 가질 원칙이다. 해외 각국의 망 중립성 정책은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감안하여 자국의 강점을 더욱 강하게 하는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내시장 방어적 관점에 그치기보다는 적극적인 전 세계시장 공략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해야 할 때다. 망 중립성 정책은 전 세계적 공조를 전제로 수립되어야 함으로 망 중립성에 대한 글로벌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네트워크 사업자, 포털 사업자, 사용자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조정에 초점을 맞추는 차원에서 벗어나 무엇을 위한 망 중립성 논의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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