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9일, 동아사이언스 조승한 기자는 부실학회가 열린다는 서울의 한 호텔을 찾았다. 호텔 로비에 들어섰지만, 안내 문구 하나 없이 썰렁했다. 심지어 학회 관계자대신 학회 진행 대행사 직원 한 명이 ‘연구논문 모음집은 없다’며 학회 일정표를 나눠주는 게 전부였다. 조 기자는 “눈으로 직접 본 부실학회 현장은 정말 황당한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작년부터 문제가 불거진 부실학술단체는 연구 과정과 결과가 허술한 논문을 게재해주고 논문 게재료나 학회 참가비를 탈취하고 있다. 학계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여전히 연구실적에 급급해 부실학술활동에 참여하는 실정이다. 이렇듯 부실학술단체는 학문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학술활동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돈 좇는 사업가와 안일한 연구자의 만남

  부실학술단체는 부실학술지를 발간하고, 부실학술회의를 개최해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는 물론이고, 돈까지 편취하는 사이비 학술단체다. 보통 ‘약탈적 학술지’, ‘허위학술단체’ 등으로 불린다. 학계에서 부실하다고 추정되는 학술단체는 와셋(WASET), 오믹스(OMICS), 월드 리서치 라이브러리(World Research Library, WRL), BIT가대표적이다.

  부실학술단체는 출판사의 지나친 상업화를 극복하고, 온라인에서 누구나 무료로 논문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오픈액세스 운동을 악용하면서 등장했다. 오픈액세스 운동으로 출판비 전액을 독자들의 구독료가 아닌 연구자들의 논문 게재료로 충당하게 됐는데, 부실학술단체는 논문을 철저한 심사 없이 빠른 시일 내에 실어주는 대가로 학술지의 질에 비해 과도한 논문 게재료를 챙기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서태설 학술정보공유센터장은 “부실학술단체는 오픈액세스 학술지를 가장해서 활동한다”며 “학자들이 자신의 논문을 싣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부담하니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실학술단체는 유명 학술단체의 이름을 도용하거나 부실학술지임에도 질이 좋은 학술지인 것처럼 속인 뒤 이메일로 논문투고를 요청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공학계 4대 학회 중 하나인 대한전기학회의 대표영문학술지 JEET(Journal of ElectricalEngineering&Technology) 웹사이트 주소가 부실학회에 의해 사칭 당한 사건도 있다.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출판윤리위원회 윤철희 위원장은 “저명한 학술단체의 이름을 도용해 연구 결과를 불법 탈취한 사건”이라며 “정식 학회가 항의했음에도 허위 학회는 한동안 계속 활동했다”고 지적했다.

  투고된 논문 대부분을 철저한 동료 평가 없이 단기간에 통과시켜주는 것도 부실학술단체의 특징이다. 빠르게 논문을 게재하거나 발표해 연구 실적을 올리려는 일부 연구자들을 유인하는 것이다. 이인재 연구윤리정보센터장은 “부실학술단체는 학술활동을 상업적 목적에 악용하는 사람들과 쉽고 빠르게 연구 업적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안일한 연구자들이 결합돼 나타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내 연구진, 부실학술활동 수준 ‘심각’

  학술 데이터베이스인 스코퍼스(scopus)에 등재된 국내 논문 중 부실 추정 학술지에실린 논문 비율은 5%로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논문 1만 편당 철회 건수도 6건으로 전체 국가 중 6위에 해당한다. 이인재 센터장은 “논문이 부실하거나 연구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있을 때 불가피하게 논문을 철회한다”며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부실학술활동에 참여하는 수준이 다른 국가에 비해 높다”고 전했다.

  지난 13일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와셋과 오믹스에 참가한 국내 연구진 현황을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부터 작년까지 90개 대학 574명의 교원이 국가 연구비와 대학 자체 재원을 활용해 와셋과 오믹스에 총 808회 참석했다. 이 중 452명이 주의, 경고를 받았으며 76명이 경징계, 6명이 중징계를 받았다. 특히 와셋에 무려 9회 참석한 강릉원주대 A교수는 소명서를 통해 “저명한 학술지에 게재하기는 부족한 논문이지만 사장하기 아까웠다”며 “학술대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면 바로 논문을 게재해주는 와셋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9회 중 3회는 징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나머지 6회만 참석한 것으로 인정됐고,A교수는 견책 처분을 받았다. 이인재 센터장은 “우리나라는 부실학술활동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 많다”며 “연구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람은 엄격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WRL과 BIT에 참가한 국내 연구자 중에는 본교를 포함해 상위권 대학 소속 교원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WRL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한 경우는 금오공대가 35건으로 가장 많았고, 고려대가 25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BIT 학회에서는 서울대가 63건의 논문을 발표했고, 연세대와 카이스트가 각각 38건과 32건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상위권 대학일수록 대개 양적 측면에서 연구 실적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양선숙 경북대 연구진실성위원장은 “상위권 대학일수록 절대적인 연구자 수가 많아서 부실학술활동 참가 건수가 많을 수도 있지만, 국제학술대회 참석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연구 프로젝트 수주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정우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은 “학교의 중대한 연구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선 학술지에 투고하거나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논문이 몇 개인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학술지에 단독으로 논문을 투고하기 힘든 대학원생들이 결국 와셋과 같은 부실한 해외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는 연구 실적을 정량평가하는 학계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진다. 현재 대부분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논문의 수를 평가 지표로 삼고 있다. 논문의 질은 평가자의 주관에 따라 기준이 다른 반면, 논문의 수는 객관적이라는 인식 탓이다. 양선숙 위원장은 “그동안 연구업적에 따라 보수를 차등 지급하던 체계에서는 질적 평가는 도외시된 채 양적평가에만 매몰돼왔다”며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논문을 발표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부실학술활동에 참여하는 현상을 줄이려면, 연구의 질적 평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도미노처럼 무너지지 않으려면 자정 필요해

  부실학술단체로 인한 피해 유형은 다양하다. 부실학술지인지 모르고 논문을 투고한 연구자는 애써 이룩한 연구 결과를 약탈당한다. 이미 게재된 논문을 다른 저널에 다시 투고하는 것은 자기 표절이기 때문에, 부실학술지에 꼼짝없이 발이 묶이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선한 피해자라 하더라도 부실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다는 오점은 지워지지 않은 채, 연구 성과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의로 허위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이 실적으로 반영됐을 때는 성실하게 연구를 수행한 다른 연구자들이 승진이나 과제 수주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서태설 센터장은 “부실학술단체에 등재된 논문이 실적 평가에서 배제되든 포함되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부실학술활동은 학계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전문가들에게 철저한 검증을 받지 않은 논문을 토대로 진행된 후속 연구도 진실성을 잃게 된다. 부실한 논문 하나가 학문후속세대까지 오염시키고, 결국 학계 전반의 신뢰도가 저하되는 것이다. 연구 결과가 산업에서 활용될 경우엔 소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건강과 직결된 연구는 그 파급력이 더욱 크다. 이인재  센터장은 “허접하고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행된 후속 연구는 지반공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높은 건물을 세우는 것과 다름없다”며 “부실학술단체가 우후죽순 생겨난다면 학계는 물론이고일반 시민들도 병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뒤이어 “부실학술단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부실학술단체는 법이나 제도로 쉽게 처벌할 수 없다. 특정학회가 처음엔 부실하게 운영되더라도 나중에 개선되거나, 혹은 그 반대로 변하는 사례도 있어 함부로 부실학술단체라고 지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또 정부차원에서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를 배포하는 것은 헌법상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실 김해도 실장은 “어떤 학회가 100% 부실하게 운영된다고 단정 짓기엔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서도 “대학 혹은 개별 연구기관 차원에서 부실하다고 추정되는 학회 리스트를 만들어 내부적으로 공유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연구자들이 부실학술단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연구윤리를 제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실학술단체가 연구자들에게 접근하는 전략을 숙지하고, 어디에 논문을 투고할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에 본교를 포함해 각 대학은 한국연구재단에서 배포한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연구진들과 공유하고 있다. 김해도 실장은 “한국연구재단에서 부실학술단체 예방가이드라인을 배포한 이후로 부실학술활동에 참가하는 연구자 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여전히 일부 연구자들은 참가하고 있어 부실학회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정한솔 기자 del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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