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빈대학연구윤리협의회 정책이사
이효빈
대학연구윤리협의회 정책이사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시간강사
  - 대학연구윤리협의회 정책이사

  <저서>
  - 부실학술활동의 주요 특징과 예방 대책(2019)
  - 한국과 미국의 연구비 부정 처리 사례 비교 연구(2017)
  - 미국의 연구비 부정 처리 사례 연구(2017)

 

  얼마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후보자 낙마의 결정타는 다름 아닌 ‘부실학회’ 참석이었다. 작년부터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학계를 강타하고 있는 부실학회와 부실학술지 논란은 우리 학계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사회와 국민들에게 학계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었다. 이번 부실학회 논란은 주로 특정학회(와셋, 오믹스, BIT 등)을 참석한 그 자체가 문제가 되어 학회에 참석한 연구자와 교수에 대한 비난이 가해졌다. 자신이 속해 있는 학계에서 어떤 학회가 저명한 학회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만한 연구자나 교수들이 질 낮은 학회에 정부의 세금이 들어가는 국가연구개발비를 썼다는 것 자체는 분명 비판받을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부실학회 논란과 조사과정에서 특정학회 참석만을 문제 삼아 조사하고 경고나 징계 조치를 내린 것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부실학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현재 부실학회의 정의에 대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부실학회를 ‘학문의 발전보다는 참가비 수입 등 영리적 목적이 강하여 발표 또는 심사 과정을 부실하게 운영하는 학술대회’라고 정의하였다. 이 정의에서 부실학회는 두 가지 특성, 1. 순수한 학문적 교류가 아닌 영리 추구에 그 목적이 있는 단체에서 운영되고 있고, 2. 논문 또는 논문 초록에 대한 동료평가(peer-review)가 없거나 부실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저명한 학회는 이 두 가지 특성에 자유로울까? 저명한 학회에서도 논문이나 논문 초록에 대한 심사가 평이하게 이루어져 학회 참가 수락율(acceptance rate)이 높은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고 있는 출판단체인 Nature Publishing Group이나 Elsevier등은 모두 영리를 추구하는 단체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학술단체의 유동성 때문이다. 어떤 학회의 경우 초기 설립단계에서는 부실하게 운영되다가 점점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고, SCI에 등재될 만큼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학술단체도 부실해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특정 부실학회 참석만을 비난의 대상으로 한다면,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때에 학회에 참석한 연구자의 경우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또 그 시기는 언제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남는다.

  이러한 논란 속에 강조되어야 할 사실은 ‘정상적인 학회’를 가야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정상적인 학회’에서 학회 참석 본연의 목적을 달성했느냐 아니냐에 무게 중심이 실려야 한다. 학회에 참석해보면 포스터 발표에 아무도 없이 포스터만 덜렁 걸려 있다거나 본인의 발표만 마치고 나머지 시간에는 여행만 한다거나 하는 연구자의 ‘부실학술 활동’이 더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점은 부실학회에 다녀온 학자들에 대해 비난만 했지 왜 이러한 부실학술활동이 끊이지 않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부실학술단체가 성행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연구자를 평가함에 있어 연구자가 그 분야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깊이 있게 고민하기 보다는 논문의 수나 학회 참가 수 등에 집착한다는 점에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연구실적에 대한 압박감으로 인해 쉬운 방법으로 실적을 쌓기 위해 이러한 부실학술단체를 이용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해외의 유명 DB에 등재된 저널을 맹목적으로 존중하거나 우대하는데 있다. 연구의 질보다는 연구자의 논문이 어떤 학술지에 게재되었는지를 연구자를 판단하는 근거로 사용하다보니, 연구자는 아무런 검증 없이 국제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거나 국제 학회를 다녀오기도 한다.

  세 번째로 그동안 학계에서 이러한 연구 부정이나 부실학회 참석과 같은 부실학술활동에 대한 교육이나 각성이 미진한 탓이다. 대학원생이나 신진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이러한 부실학술활동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중견연구자들도 이러한 고민을 하는데 있어 게을렀다. 또한 연구 부정이나 연구비 횡령, 연구실 갑질 문제 등 수많은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지만 그에 대한 처벌은 늘 솜방망이에 그쳤다. 이러한 낮은 처벌은 연구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왔다.

  부실학회 논란이 일자 연구자들은 정부에 어떤 학회를 참석해야하고 참석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문의를 하고 있으며, 일부 언론에서는 정부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정부에게 학회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 특정 학회 참석만을 문제 삼아 처벌하는 왜곡된 관행으로 볼 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는 연구자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 추구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연구 부정, 연구비부정, 부실학회, 부실학술지 전반에 대한 예방 및 대책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연구기관과 대학 등은 연구자들이 학회 활동이나 학술지의 질을 평가하고 학회에서 얻은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마련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나눈 경험과 논의를 토대로 연구자 스스로가 자신의 학문 활동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두 번째로는 대학 및 연구기관은 학자들을 대상으로 부실학술활동 예방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특히 대학원생이나 신진연구자들은 쉽게 논문을 발표하고 게재할 수 있는 부실학회나 부실학술지의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교육이 필요하다. 예방 교육을 통해 부실학술단체를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상적인 학회에서 부실한 학술활동을 하고 오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하겠다. 셋째, 연구 부정이나 연구비부정 등이 발각된 연구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 연구 부정이나 연구비 부정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올 때 마다 잠깐 이슈가 되고 처벌에 대해서는 유야무야하게 처리되곤 했는데 재발방지 차원에서도 강력한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 나아가 더 근본적으로 연구기관, 대학, 출판사, 연구비지원기관은 연구자를 평가함에 있어 단순한 양적지표만이 아닌 연구자의 전반적인 연구능력, 가능성, 학문의 공헌도 등을 평가하는 시스템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연구자, 연구공동체, 학계가 다 같이 고민하여 학계 스스로 부실학술활동에 대한 자정능력을 갖추고 보다 나은 학문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좀 더 근본적이며 깊이 있는 고민이 이루어져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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