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중앙대 교수·교육학과

  최근 고려대는 SK하이닉스와, 연세대는 삼성전자와 함께 반도체 관련 계약학과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서울대, 반도체 인력은 대학원서 육성 검토’란 총장의 인터뷰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성균관대는 이미 삼성전자와 함께 하는 계약학과인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청년 취업의 난 시대, 파격적인 지원 아래 고용이 보장되는 이들 대학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반면 일각에서는 계약학과가 대학의 본질을 흐리고 대학을 취업 양성소로 전락시킨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분법적으로 진영을 나누어서 논쟁을 할 사안이 아닌 듯싶다. 이슈 해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몇 가지 관점을 나누고자 한다.

일러스트 | 장정윤 전문기자

  첫째, 계약 당사자주의 원칙이다. 나의 고향은 일손이 많이 가는 가장 힘든 농사 중의 하나인 담배농사 주산지였다. 담배 농사는 당시 전매청과의 계약재배로 재배면적이 정해지고, 전량을 전매청이 수매해주어 일거에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대표적인 환금 작물이었다. 앨빈 토플러 선생의 말처럼, 기르는 데(Growing)에서 부가 생기는 농경시대의 계약재배는 만드는 데(Making)에서부가 나오는 반도체 산업시대의 계약학과로 이어진다. 계약재배의 갑이 전매청인 국가라면 계약학과의 갑은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다. 물론 국가기관인력의 수급에는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간여한다. 신분사회에서 계약사회로 넘어오면서 계약학과를 포함한 우리의 대부분의 행위는 계약에 따른다. 힘든 담배농사의 계약재배와 마찬가지로 계약학과의 경우 당사자주의 원칙이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삼자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둘째, 맞춤형 인력양성이다. 그동안 기업에 취업한 대졸 인재가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없다는 기업의 불만이 누적되어왔다. 온라인 취업정보업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63%가 대졸 인재를 바로 실무에 투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 6개월 이상 재교육을 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공급하는 기술 및 인력과 원하는 기술 및 인력의 불일치를 뜻하는 ‘스킬 미스매치, 잡 미스매치’가 대학을 주눅 들게 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저만치 앞서가는 데 대학은 10마일로 느릿느릿 한참 뒤떨어져서 온다는 격차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대학은 불량품 인력양성 공장 신세가 되어 ‘반품처리, 인력AS’를 안 해준다면서 기업한테 배우라는 질책을 들어왔다. 이러한 미스매치 해소를 위한 산학협력중심대학(LINC+)과 같은 사업의 경우, ‘맞춤형 인재양성’을 단골 메뉴로 제시한다. 계약학과는 미스매치를 덜고자 하는 특수목적형 맞춤인력양성 사업의 한 형태로 보인다.

  셋째, 오늘날의 대학은 더 이상 신학, 법학, 철학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중세의 대학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와 산업을 책임지는 거대한 종합대학 시스템이다. 문법, 수사학, 변증법, 산술, 기하, 음악, 천문의 자유칠과(Seven Liberal Arts)를 중심으로 한 인문교양교육의 상아탑, 학문의 요람이란 비유는 적합성을 상실했다. 대학은 엘리트 단계와 대중화 단계를 거쳐 누구나 향유하는 보편적 단계에 들어선 지 오래다. 대학교육은 종국교육(Terminal Education)의 단계로, 졸업하면 곧바로 직업과 연결된다. 취업난이 고질적 사회문제가 돼버린 오늘날은 인문계이든 이공계이든 관계없이 대학교육은 취업과 연결되어야 한다. 종국교육 단계의 모든 교육은 취업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넷째, 교육자도 아는 경제학자 게리 베커(Gary S. Becker)의 인적자본의 일반요인(General, G요인)과 특수요인(Specific, S요인)설에 따르면, 계약학과는 직업 및 산업 특수적인(Job and Industry Specific)인 S요인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학교까지의 교육은 의무교육이다. 누구나 필요로 하는 일반교육, 보통교육, 기초교육에 해당하는 것으로 혜택은 전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러니 무상교육, 의무교육, 국가부담으로 G요인설이 적용된다. 반도체계약학과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이 산업 및 직업 특수적인 것으로 다른 직업 및 산업에는 직접적으로 전이되거나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수익자 부담원칙이 적용된다. 계약학과에 찬성하는 사람은 인적자본의 S 요인설을, 반대하는 사람은 G 요인설을 암묵적으로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G로 보느냐, S로 보느냐는 관점의차이다.

  다섯째, 교환가치에서 사용가치로의 전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교환가치 모델(exchange value model)에서는 학습은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학습의 결과로 자격증(qualification)을 받으며, 졸업 후 자격은 일자리와 맞바꾼다. 취업 후는 신기술에 대처하는 등 기술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따라잡기 학습(catch-up)을 제외하면 사실상 학습은 끝나는 종국적 학교교육 모델이다. 공부를 한다면 일과는 관계없는 자기개발과 정신해방 등의 사심 없는 학습 형태를 취한다. 일터와 학교의 분리 모델이다. 사용가치 모델(use value model)에서는 학습과일은 동시에 일어난다. 일의 경험은 훗날의학교 학습을 고양시킬 수 있고, 학교 학습은 훗날 일터 학습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오늘날 일학습병행제, 선취업 후진학, 인턴제, 마이스터 고등학교, 그 전의 2년은 학교교육, 1년은 현장실습을 하는 실업계 고등학교의 2+1 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일터와 학교의 통합모델, 곧 평생학습 모델이다. 계약학과는 사용가치 모델, 평생학습 모델을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게리 베커 교수의 말로 맺고자한다. 게리 베커 교수는 특수 훈련과 일반훈련 둘 다 인적자본 개발의 수단이며, ‘교육과 훈련은 인적자본에 가장 중요한 투자’라고 강조하였다.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실시하는 리더십, 문제해결, 소통은 어느 기업에서나 필요한 일반적인 것이기에 G요인으로 설명된다. 계약학과 내에서도 S요인 관련 교육만 시키지 않을 것이다. 대학의 교양교육은 G요인으로 설명된다. 둘 다 필요하고도 중요하다. S요인 교육은 G요인 교육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계약학과는 G요인 관련 교육과정으로 계약학과교육의 내실을 기할 필요가 있다. S요인 교육과 G요인 교육은 상부상조하여 교육을 완성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요구에 따라 대학에서는 일반인재 양성뿐만아니라 특수인재 양성에도 기여해야 할 것이다. 다만, 대학에서 일반 인재와 특수 인재를 나누어서는 곤란하다. 앞에서 언급한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의 최종 단계가‘생각하기(Thinking)’라고 하였다. 생각하는 갈대에 부의 미래가 있다. 계약학과도 S요인 중심 교육과정으로 취업만을 위한 기술 중심의 인재 양성소가 아닌, G요인 교육의 거름을 기반으로 백년대계(百年大計), 백년수인(百年樹人)으로서 교육 본연에 충실하다는 평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세상만사 균형유지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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