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은 씨가 자메이카에서 유래한 춤인 '댄스홀'을 추고있다.
그녀는 '좋은 바이브'를 주는 일을 열정적으로 할 때 가장 기쁨을 느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사는 것.’ 모두가 한 번쯤 꿈꾸는 삶이다. 일생에서 자신에게 딱 맞는 취미를 찾아내는 일도 쉽지 않지만, 그 취미가 직업이 된 삶은 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안암역 2번 출구로 나와 미디어관 쪽으로 걷다 보면, 매혹적이고도 신선한 문구가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DO YOU WANNA DANCE?’ 프롬제로(FROMZERO) 댄스 스튜디오 사장이자 프로 댄서로 활동 중인 조영은 교우를 만났다.

 

0’에서 시작하기

  조영은 씨는 작년 2월 안암동 유일의 댄스 스튜디오 프롬제로를 설립하고 2년째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춤을 한 번도 안 춰봤는데 괜찮을까요?” 프롬제로 댄스 스튜디오를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다.

  “다들 오셔서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질문을 한다는 조영은 씨. 춤을 못 추는 사람도 생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그녀의 이름 영은을 따라 ‘FROMZERO’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이름처럼 프롬제로에는 기초반 수업이 많다. “제가 스튜디오를 차린 건 슈퍼 댄서를 키우기 위함이 아니었어요. 안암동에 거주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부담 없이 춤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평소 쓰지 않던 관절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굽혀 보는 건 여간 쉽지가 않다. “처음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거울에 비친 우스꽝스러운 자기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하세요.” 발가벗은 기분을 느끼고 하루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괜찮아요! 멋있는 척하세요!” 조영은 씨는 춤추는 자신을 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 외에 아무도 없다며 스스로 만족하는 게 춤이라고 확언했다. 어느새 훌쩍 실력이 늘어 프롬제로에 오는 시간이 삶의 낙이고 행복이라던 수강생을 떠올리며 조 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을 드러냈다.

 

취준생에서 사장님까지

  젊은 나이에 조영은 씨가 스튜디오를 설립할 수 있던 배경에는 그녀만의 삶의 철학이 있었다. 더도 덜도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조영은 씨에게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학사 졸업 직후 조영은 씨는 본교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어려움을 느끼고 학업을 포기했다. “처음 대학원에 갔을 때, 연구와 실험을 주체적으로 계획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제가 선택했던 분야에서 그런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어요. 오로지 교수님의 손발이 돼 지시하시는 것을 따를 뿐이었죠.” 쳇바퀴같이 굴러가는 삶에 지루함을 느꼈던 조영은 씨는 대학원을 나와 공채 경쟁에 뛰어들었다. 취업 시장도 만만치 않았다. 원하는 곳은 모두 탈락했고 몇 군데 서류만 합격한 상황이었다.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대학원을 그만두고 불안한 마음에 충분한 휴식도 갖지 않은 채 바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어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기를 가졌어야 했는데 말이죠.” 연이은 서류 탈락에 낙담했던 조영은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스스로한테 가장 실망한 시기였다고 토로했다.

  그런 조영은 씨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학부 시절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해오던 회사에 자리가 난 것이다. “그 회사에 들어간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일단 출근은 하고 보자는 마음이었죠.” 그녀가 입사한 곳은 교육 계열의 스타트업 회사였다.

  “만약 이 회사에 오지 않았다면 저만의 댄스 스튜디오를 갖는 꿈을 이루지 못했을 거예요.” 조영은 씨는 회사에 다니면서 자꾸만 여기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서울대 졸업생들로 구성된 신생 회사였어요. 직원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반하게 됐죠.” 회사가 중시했던 가치와 조영은 씨의 신념이 일치하기도 했다. “교육 계열인 만큼 회사의 모토가 할 수 있어, 또 네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야 해였어요. 인간은 모름지기 각자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는 것이고, 또 열심히 살라는 것이었죠.”

  조영은 씨는 본래 계약 기간인 4개월을 채우고도 계속 회사에 남게 됐다. “회사가 저에게 영감을 너무 많이 주는 거예요. 제가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를 다시 확고하게 다져준 곳이 됐어요.” 댄스 스튜디오를 구상하게 된 것도 회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 그녀는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춤을 계속 출 수 있는 본거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어요. ‘그래, 나도 하고 싶은 걸 하자!’라는 마음으로 결국 안암동에 자리를 잡았네요.”

  같은 회사에서 조영은 씨는 지금도 주 5일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사내 교육담당 부서였던 그녀는 작년부터 유튜브 팀에서 근무하며 영상제작 업무를 맡고 있다. “영상제작은 댄서로서도, 스튜디오 운영자로서도 욕심나는 분야예요. 마침 회사에서 해당 업무의 필요성을 발견하고 유튜브 팀을 꾸리게 됐어요.”

 

댄서 ZOEY, 새로운 꿈을 꾸다

  조영은 씨는 올해부터 ‘KOREA WHINE’이라는 댄스홀 장르 댄스팀의 리더로도 활약 중이다. 프로 댄서로서 해외까지 넘나들며 댄스홀 장르를 널리 전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댄스홀이 한국에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블루오션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배울 기회가 적은 게 사실이에요.” 이 때문에 러시아와 중국, 댄스홀 문화의 종주국인 자메이카까지 손을 뻗어 해외 댄서들을 한국에 초청하고 여러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때로는 팀원 모두가 직접 해외로 가서 다양한 댄스홀 문화를 배워오기도 한다. “‘힙합이 노래, ,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진 것처럼, 댄스홀도 단순히 춤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하나의 문화예요. 댄스홀 댄서로서 배워야 할 게 정말 많죠.”

  조영은 씨는 대학 시절 댄스홀을 처음 접했다. 본교 중앙스트릿댄스동아리 KUDT에서 회장으로 활동하고, 졸업 이후에도 매년 공연을 이어가며 그녀는 다양한 장르의 춤을 접했다. 처음에는 팝핀으로 시작했지만 걸스힙합으로 장르를 옮기고, 레게음악에 빠져 자메이카의 다양한 문화를 찾아보던 중 댄스홀을 발견하고 정착하게 됐다. “우사인 볼트가 베이징 올림픽 당시 금메달을 따고 바로 췄던 게 댄스홀이에요. 흥 많은 자메이카 사람들이 낮에 힘들게 일한 후, 밤에는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고 나와 모두가 파티에 가서 같은 춤을 춰요. 그런 역사와 문화를 가진 것이 댄스홀이죠.”

  댄스홀 장르로 자리 잡은 조영은 씨는 교내 동아리를 벗어나, ‘Zoey’라는 예명으로 외부 활동을 이어갔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동시에 더 잘하고 싶었죠.” 그녀는 동아리를 벗어나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댄서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동아리에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만 보여주고도 박수를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발전도 없었죠.” 어떻게든 빛나야 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본격적으로 댄스팀을 꾸리고 경쟁을 하며 스스로 성장을 실감했다는 조영은 씨의 이야기다.

  그녀가 생각하는 댄스홀의 매력은 같이 추고 즐기는 것이다. “파티 댄스에서 유래된 춤이잖아요. 다 같이 즐겨야 하는데, 이걸 저희밖에 모르는 게 아쉬운 거죠.” 댄스홀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이며 새로운 목표를 다짐하기도 했다. “이 문화를 제대로 한국에 뿌리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힙합이 뭔지 알듯이, 댄스홀을 알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좋은 바이브열정’, 조영은 씨가 인생에서 가장 중시하는 두 가지다. “되돌아보니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은 일정 목표를 향한 희생이 아니라 그때그때 제가 하고 싶은 것, 좋은 바이브를 주는 것에 최선을 다한 노력이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열심히 하는 것, 저에게는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해요.” ‘쓰리잡러를 마다치 않고 댄서도, 운영자도, 회사 생활도 모두 해내고 싶다는 조영은 씨, 좋아하는 일에 온몸을 다할 때가 가장 행복한 그녀다.

 

글 | 김영현 기자 carol@

사진 | 양가위 기자 fle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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