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에게 연구성과는 그의 얼굴이다. 논문은 학자의 연구성과를 학계에 알리는 기본적인 자료로 기능한다. 하지만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연구에 기여하지 않은 이를 저자명단에 포함시키거나 중요한 기여를 했음에도 저자명단에서 제외하는 부당한 저자 표시가 학계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2, 한국연구재단에서 실시한 연구논문의 부당한 저자 표시 예방에 관한 연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 참여자 2181명 중 절반이 넘는 1114(51.1%)이 부당한 논문 저자 표시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현재 부당한 논문 저자 표시의 예방과 해결을 위한 권고사항이 마련돼 있지만, 실효성은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부당한 저자 표시··· 대학원생들 피해 커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2018년 대학 연구윤리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국내 1764년제 대학에서 332건의 연구부정행위가 판정됐다. 그중 부당한 저자 표시는 86건으로 122건의 논문 표절 다음으로 많았으며, 2018년에는 전체 110건 중 41건으로 가장 빈도가 높았다.

  부당한 저자 표시가 발생하는 주된 원인으로는 연구자 개인의 연구윤리 부족과,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는 학계의 분위기가 꼽힌다. 황은성(서울시립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저자됨(authorship)의 기본 가치는 지식 생산자로서 정신적 보상을 받는 일인데 논문 생산을 명성 쌓기나 연구실적 축적으로만 여기는 학자들은 이러한 기본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이는 우리사회 전반에 도덕적 해이가 심각함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대로 학문을 다루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연구 전통이 세워져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에서 발표한 논문의 수가 교원들의 승급에 중추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압박을 느낀 연구자들이 부당한 저자 표시를 감행하기도 한다. 김기태(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는 연구실적을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 논문이나 저술에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인데, 양적 수준을 연구성과 지표로 삼는 현재 연구관리 시스템 하에서 절박한 연구자들이 부당한 저자 표시를 불사하기도 한다점진적으로 질적 수준을 평가지표로 삼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자 사이의 수직적 구조 속에서, 부당한 저자 표시는 더욱 쉽게 발생하고 있다. 김형엽(글로벌대 영미학전공) 교수는 공동연구라는 이름 아래 연구자들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인원들의 연구 과정에 합류하는 경우가 있다이 과정에서 해당 논문을 자신의 성과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말했다.

  결국 아직 박사 학위를 소지하지 못한 대학원생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이들이 학회지에 논문을 투고하는 과정에서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제3의 저자가 끼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우(대학원·정치외교학과) 씨는 박사학위를 소지하지 못한 연구자가 논문을 학회지에 등록하고자 할 경우, 대부분 박사학위 소지자 이상인 교신 저자(Corresponding author)를 등재해야 한다주로 교신저자가 되는 지도교수가 학회지에 논문의 저자 등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논문 작성에 관련 없는 이가 포함되거나 기여도가 낮은 이가 상위 저자로 등재되는 일부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억울한 상황이지만, 수직적 구조 속에서 이러한 부당함이 부각되기는 쉽지 않다. 이정우 씨는 대학원생들은 학위를 받고 난 후에도 연구자 생활을 이어나가려면 조용히 있는 것이 본인에게 이롭다고 생각한다알면서도 덮을 수밖에 없는 학계의 상황은 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저자가 불투명한 논문은 결과적으로 신뢰성을 잃게 된다. 김형엽 교수는 부당한 저자 표시는 논문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그 자체의 위상을 소멸시키는 행위라며 실제로 기여한 연구자의 공적이 반영되지 못한다면 해당 논문 결과의 수록도 재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이드라인의 일괄 적용은 쉽지 않아

  올해 10, 부당한 저자 표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국연구재단과 전국대학교 산학협력단장·연구처장 협의회는 연구논문의 부당한 저자 표시 예방을 위한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연구기관과 연구자가 지켜야 할 사항을 다양한 국외 학술지들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명확하고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의 제정까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저자표시는 마치 수학 공식처럼 체계화된 시스템에 적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조민호(과기대 컴퓨터융합소프트웨어학과)교수는 부당한 저자 끼워 넣기나 저자 역할 가로채기 같은 문제는 사실상 기계적으로 체크하기 어렵다연구자들의 자율권을 해칠 수 있는 부분이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자로 표시될 수 있는 지적 기여의 정도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과 관행이 학문 분야마다 다른 것도 가이드라인이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다. 비교적 소수의 인원이 연구에 참여하는 인문·사회계 논문에서는 논문을 작성한 연구자가 곧바로 저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김형엽 교수는 인문·사회계 논문에서는 팀 중심의 활동 양상이 적기 때문에 개인 혹은 최대 3인 정도가 논문 저술에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규모 인원이 투입되는 이공계의 경우 수천 명의 저자가 등재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조민호 교수는 이공계 연구는 단독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규모의 연구가 대부분이고 전공이 다른 분야의 연구자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실 김해도 실장은 이공계 논문에서는 연구 프로젝트 중 하나라도 기여를 했다면 저자로 등재될 수 있다학문마다 속성이 다르기 때문에 저자 표시 가이드라인에서 명확한 기준을 통과한 사람만이 저자가 될 수 있다고 제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단순히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고 해서 원하는 수준의 변화가 일어날지 확신하기도 어렵다. 김형엽 교수는 교수들이 대학원 연구자들의 미래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는 분위기가 학계에서는 여전히 팽배하다공기관에서 제시한 기준이 과연 현장에서 본연의 의도에 따라 지켜질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대학, ‘제 식구 감싸기는 이제 그만둬야

  현재 부당한 저자 표시를 예방하기 위해 각 대학에서는 연구윤리위원회를 설치해 연구자들의 연구윤리 인식을 강화시키고자 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2018년 대학 연구윤리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중 97.7%가 연구윤리 규정을 제정·운영 중이며 93.2%의 대학에 연구윤리위원회가 설치됐다.

  하지만 문제점은 대학 내 연구자들의 연구 부정을 눈감아 주는 분위기, 일명 집안 식구 감싸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김형엽 교수는 이미 연구 부정이 확인됐음에도 대학 내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재심, 삼심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죄를 피하거나 심사결과 발표를 지연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은성 교수는 대학은 연구자들에게 교육을 강화하고, 잘못이 발견됐을 때는 적절하게 징계해야 한다부정 행위에 대한 판정 결과와 징계 조치를 구성원들에게 공개해 재발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학교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을 위한 연구윤리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김기태 교수는 초등학교 과정부터 연구윤리 교육을 병행해 윤리의식이 내재하도록 유도할 필요성이 있다윤리의식 결여에 따른 표절, 무임승차 등의 행위에 대해 신상필벌이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당한 저자 표시 문제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선, 학계 자율의 교육과 연구자들의 인식 강화가 필수적이다. 황은성 교수는 논문의 저자가 연구를 통해 지식을 생산함으로써 숭고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부적절한 저자 등재 의심 논문에 대한 제보와 조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형엽 교수는 연구 윤리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 자신이 해당 기준들 그 자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군찬 기자 al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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