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서술은 역사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공역사는 대학이나 연구소 등의 학술공간을 벗어나 수행되는 역사 서술·재현·활용 활동의 총칭으로, 학계 내에서 전문적으로 이뤄지는 역사 활동과 대비된다. 일상생활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역사박물관과 역사기념관, 역사를 소재로 한 미디어 콘텐츠, 역사정책 등이 모두 공공역사에 포함된다.

 

학계 밖으로 뛰어나온 역사

 공공역사의 개념은 역사 연구자만이 갖던 역사 서술의 특권에 대한 반발로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반전운동, 민권운동, 여권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학문의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고, 기존에 간과됐던 일상사와 사회적 약자의 역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병욱(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초기 공공역사 개념은 보통사람들의 일상에 주목하는 민중사와 비전문가가 역사를 서술하는 아래로부터 역사로 대변된다고 설명했다.

 비전문가의 역사 서술만을 강조했던 공공역사의 개념은 1970~1980년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역사 붐현상과 함께 확장됐다. 이동기(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는 당시 미국에서 방영된 TV 시리즈 <홀로코스트>가 큰 반향을 일으키는 등 역사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역사 활동이 전방위로 일어나 전문가 혹은 비전문가로 특정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역사 활동 주체가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더는 누가 역사를 서술하느냐의 구분보다 역사 활동이 이뤄지는 학계 밖 공공이라는 영역 자체가 더 중요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공역사는 1990년대 역사학의 독립적 분과로 발전했지만, 국내에선 아직 역사학의 대중화개념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지는 실정이다. 민주화운동과 함께 국내에서 성행한 역사학의 대중화는 학계의 연구성과를 그대로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행위로, 역사지식의 생산자와 수용자라는 이분법적 구분과 전자에 의한 후자의 계몽이 전제된다. 정병욱 교수는 이미 사람들은 학계 밖에서도 여러 형태로 과거를 접하고, 스스로 역사관을 만들어 왔다역사학의 대중화 개념만으로 학계 밖 다양한 역사실천을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학계 바깥의 역사실천은 학계와 독립적으로 진행되며, 때론 학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공공영역에서 먼저 조명된 대표적인 역사가 바로 한국전쟁 시기 발생한 황해도 신천 학살사건이다. 당사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황석영의 소설 <손님>MBC 다큐멘터리 <망각의 전쟁: 황해도 신천 사건>은 사건을 세상에 내놓았고, 그 후 비로소 역사학계가 연구에 착수했다.

 정병욱 교수는 공공역사 개념은 역사학 대중화 개념이 놓치는 역사실천까지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바라본다국내에서도 명확한 개념수용을 통해 공공영역에서의 학계 안팎의 관계를 새롭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연구 오류에 대해 지속적인 심사와 검토 과정을 거치는 학계와 달리 비전문가의 역사 활동에서는 자정 작용이 이뤄지기 힘들다. 공공영역에선 사실관계가 틀릴 뿐 아니라 역사를 해석하고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악용과 오용이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파급력이 큰 스타 강사의 강연이나 미디어 콘텐츠에서도 크고 작은 오류가 지적된다. 김대보(한국교원대·역사교육과) 강사는 다양한 역사 활동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현상은 필연적이라며 주목도가 높은 콘텐츠로 대중의 능동적인 역사 참여를 끌어낸다면 이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사실관계에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학자들이 입 모아 강조하는 준칙이 있다. 공공역사의 장에 역사 오용·남용·악용은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연구자, 학계 넘나들어야

 공공영역은 비전문가들끼리의 소통뿐 아니라 비전문가와 학교를 벗어난 역사연구자의 수평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으로도 제시된다. 나인호(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공공역사의 영역에서 연구자는 일방적인 비판자나 조언자가 아닌 협력적인 중재자로 역사 활동에 참여하는 대중과 상호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독일의 역사연구자들은 현대사의 충돌하는 기억을 풀어나가고자 온라인 역사프로젝트와 트위터를 활용한 트히스토리프로젝트를 통해 대중과 자유로운 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편 국내 역사학계에선 대중과 역사연구자의 소통은 아직까지는 미진하다. 이제야 역사연구자와 공공영역의 여전한 간극에 대해 학계에선 자성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중이다. 김정인(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국가중심연구시스템에 포획된 학계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가 전제돼야 공공역사의 장에 역사연구자가 참여할 수 있다“2000년대 들어 진행된 BK, HK 사업 등으로 제도권 내 학술연구에만 몰두한 역사학계는 공공영역과 더욱 멀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역사 활동물에 대한 연구자들의 비평문화 확산 필요성도 강조된다. 김대보 강사는 역사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을 비평하는 발표를 하고 학자들은 그저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면 된다는 일부 학계의 반응이 있었다대중과 연구자가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학계 스스로 초래한 문제라고 단언했다. 이동기 교수 역시 국내 학계는 아직도 역사학의 대중화수준에 머물러 있다역사연구자들이 공공영역에서 역사 활동물을 만들고 향유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결과물에 대한 적극적인 비평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용재 기자 ildo114@

사진 양가위 기자 fle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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