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온라인 강의와 사투를 벌이던 때, 오후의 나른함을 잊게 해줄 반가운 이메일이 도착했다. 고대신문 기자가 교수님은 스무 살이라는 코너에 글을 한 편 써달라고 청탁하는 내용이었다. 사실 어쩌면 그때 나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봄을 잊고 살아야 하는 억울함 때문에 은근히 마음속으로 온라인 강의 준비보다 더 신나는 일을 찾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메일을 열어본 순간부터 조금의 망설임 없이 내 마음속은 대학 시절의 기억으로 가득 들어차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30년 전 대부분의 고대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 역시 강의실보다는 소개팅 장소에서 더 빛나는 눈동자를 하고 있었고 전공 강의보다는 고연전을 더 사랑했던 것 같다. 다만, 그 와중에도 의외로 대학 생활 중 몇 장면만큼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학부생 시절에 나는 학생상담센터에서 근로장학생으로 1년간 일했다. 그 당시에는 겨울이면 고려대학교의 모든 건물이 난로 연통으로 장식되곤 했다. 건장했던 나는 따뜻한학생상담센터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석탄을 날랐다. 다행히 내가 센터장으로 재직 중인 지금의 학생상담센터에서 일하는 근로장학생들은 조금 더 우아한 업무를 맡고 있다.

 

 

  또 어느 봄날에 고대와 연대 심리학과 학부생들이 모여 연합학술제를 개최했던 기억도 난다. 사의 기획과 진행을 맡는 학회장이었던 내게 그 행사는 오늘날까지도 멋진 추억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당시로서는 학부생이 마치 교수님처럼 강단에 설 수 있는 기회는 정말 흔치 않았다(사진 참조). 하지만 아쉽게도 1회 행사를 성황리에 마친 후로는 두 번 다시 고대와 연대 심리학과의 연합학술제가 이어지지는 못한 것 같다. 돌이켜보니, 아마도 염불(심리학)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폼생폼사)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의 대학 시절 고려대학교에는 학생들에게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특별한 강의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내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강의 중 하나는 바로 당시에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 중 한분인 정운영 선생님의 강의였다.

  정운영 선생님의 강의실은 좌석은 물론이고 통로마저도 수강생들과 청강생들로 넘쳐났다. 정운영 선생님은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아서는 안 된다는 유교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있던 당시의 학생들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강의실 안에서만큼은 학생인지 교수인지 따지지 말고 계급장 떼고서 끝장 토론을 하자고 주장했다. 또 학생들이 당신과 맞담배를 피울 수 있게 허용해주시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선생님의 책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다. 정운영 선생님은 자택에 2만여 권의 방대한 서적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놀라운 점은 그 많은 책이 마치 도서관처럼 정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해 지난 달력들을 책 모양과 크기대로 오려서 책 위를 덮는 보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책에 먼지가 내려앉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런 점 때문에 소설가 조정래는 정운영 선생님을 종이책을 절실히 사랑한 마지막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원래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온라인 강의로 인한 스트레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일탈을 즐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오랜만에 정운영 선생님을 떠올리고 나니, 지금부터라도 온라인 강의를 조금은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영건 문과대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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