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조 개의 미생물과 그들의 유전정보가 이루는 생태계. ‘휴먼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은 인간의 또 다른 장기라고 불린다.

  미생물은 다른 미생물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동시에 그들을 둘러싼 서식처와도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간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미생물 군집인 마이크로바이오타(Microbiota)와 그들의 유전정보를 파악해 이것이 인체와 맺는 복합적인 관계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배양을 통해 개별 미생물의 기본적 특성을 파악하는 데 그쳤던 기존 미생물 연구에서 분석 범위와 대상이 크게 확장된 것이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진행되며 질병과의 관계가 점차 드러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치료제 개발 위해 기전 규명해야

  미생물 군집은 우리 신체 부위 대부분에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장 마이크로바이옴은 가장 활발히 연구되는 생태계다. 풍부한 미생물 영양원과 낮은 산소의 농도를 갖춰 발효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 미생물이 다양하게 존재할 최적의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장 마이크로바이옴은 다른 장기의 질병에 관여하기도 한다. 전체 면역세포의 70%가 모여있고, 융모의 모세혈관으로 다른 기관과 연결되며, 미주신경을 통해 뇌와 상호작용(Gut-Brain axis)하는 장의 특성 때문이다. 김봉수 교수(한림대 생명과학과)장 마이크로바이옴이 불균형 상태가 되면, 면역 체계와 비정상적으로 작동해 여러 질환에 영향을 준다이 과정에서 장 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비정상적인 대사산물도 신체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장 마이크로바이옴은 심장··신장·피부·간 질환, , 치매, 우울증 등 다양한 질병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장 마이크로바이옴을 앞세워 휴먼 마이크로바이옴과 질병의 연관성을 밝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마이크로바이옴을 치료에 적용하는 것은 아직 시작 단계라고 강조한다.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 마이크로바이옴과 질병의 명확한 기전이 규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유전적 특성과 생활습관 등 다양한 변수는 개인의 마이크로바이옴에 차이를 유발한다. 같은 질병을 앓는 사람도 마이크로바이옴의 차이가 커 문제의 원인이 되는 마이크로바이옴을 특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김봉수 교수는 분만과 수유방식, 질환과 치료 이력까지도 마이크로바이옴 조성에 관여한다질병만을 기준으로 원인이 되는 마이크로바이옴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마이크로바이옴과 질병의 복합적 관계도 난제다. 김희남(보과대 바이오의과학)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의 문제로 질병이 발생하고, 질병으로 인해 변화한 마이크로바이옴이 신체에 다시 영향을 준다마이크로바이옴의 상태는 질병의 원인임과 동시에 결과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해 규명해야 할 과제가 많은 만큼, 당장 치료제로 사용하긴 어렵다. 2019년 미국에서는 높은 C. diff 감염병 치료율로 주목받던 대변 미생물 이식술(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을 받은 환자가 사망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질병과 마이크로바이옴의 기전을 바탕으로 필요한 미생물 조합을 투입하는 것이 아닌, 사람의 분변 안에 있는 미생물 전부를 주입하는 방식에서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김희남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 분야가 유망한 바이오헬스 분야로 떠오르며 많은 기업이 치료제 개발 등의 응용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하지만 이에 앞서 최소한의 질환 기전을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궁극적 목표인 인류 건강증진을 위해선 아직 기초연구 중심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단계인 셈이다.

 

대용량화에서 통합 분석까지

  그래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발전하는 추세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미생물의 유전정보에서 16S rRNA 유전자를 분석해 마이크로바이오타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인체의 특정 위치에 어떤 미생물 군집이 존재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군집 안에서 미생물이 수행하는 역할을 파악하는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선 미생물 유전자 정보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홀 메타게놈 시퀀싱(Whole Metagenome Sequencing)이 주로 사용된다.

  이처럼 대량의 미생물 유전자 분석이 필요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염기서열 분석기술의 발전이 있다. 현재 사용되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ext Generation Sequencing)’은 한 번에 수백만 개 이상의 조각 염기서열을 결정·분석하는 대용량 염기서열 분석기술이다. 100개 단위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생어 염기서열 분석법(Sanger sequencing)에서 혁신적인 대용량화가 이뤄진 결과다. 김지현(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는 슬라이드글래스 위에 수백만 개의 단분자를 붙인 후 증폭과 합성을 통해 시퀀싱하는 방식도 가능해졌다각 샘플을 별도로 중합반응 시킨 후 서열을 분자량에 따라 전개한 기존 방식에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의 기능을 밝히기 위한 홀 메타게놈 시퀀싱에는 유전체(메타유전체), 전사체(메타전사체), 단백체(메타단백체), 대사체(메타대사체)를 통합 분석할 수 있는 다중오믹스 기법(Multi-Omics Analysis)’이 종종 활용된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어떻게 미치는지에 대한 다각적인 데이터 확보가 다중오믹스 기법의 장점이다. 김봉수 교수는 서로 다른 미생물들이 생태계 차원에서 어떻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지속적인 고찰이 필요하다마이크로바이옴에 개인 간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과 그것이 마이크로바이옴과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밝히기 위해 향후 다중오믹스와 빅데이터 분석을 융합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용재 기자 ildo114@

일러스트김시온 기자 ohn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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