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은 제조업 기반 보호법

근로환경 고려한 탄력성 필요해

  음식 배달을 원하는 시간에 하고(배민커넥트), 택배도 자가용으로 운반할 수 있는(쿠팡플렉스) 시대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노동 형태가 범람하고 있지만, 이를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논의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박지순(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노동법이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물었다.

박지순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노동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노동법은 다른 법과 비교해 어떤 차별성을 갖나요

  “노동법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법과 달리 근로자라는 특정 대상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법입니다. 역사적으로 근로자-사용자 관계가 사용자 쪽으로 기울어지다 보니, 양자의 불평등성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죠. 노동법은 사인(私人) 간의 관계에 국가가 강력하게 개입한다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국가가 근로기준법 같은 최저기준을 마련하고, 그 이상으로 근로자에게 유리한 근로조건을 설정하게끔 만든 것입니다. 또한, 노동법은 자유경쟁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일반 시장에선 허용되지 않는 카르텔을 근로자의 권리로 인정합니다.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사용자와 체결한 단체협약은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그보다 낮게 정해지는 임금이나 근로조건은 무효가 돼버리죠. 사용자와 근로자의 자유로운 계약체결을 제약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조건을 지속해서 개선할 수 있도록 헌법이 근로자에게만 특별히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겁니다.”

- 최근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근로기준법이 전제하는 근로자는 모두 정시에 출퇴근하고 공휴일에 쉬는, 공장식 작업집단입니다. 지금은 산업구조가 완전히 달라졌죠. 공장은 자동화됐고,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이 산업에서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해요. 업무 형태가 다양한 서비스업에서는 표준화되고 획일적인 근로조건이 작동하기 어렵죠.

  단일한 이해관계를 가지던 근로자들의 집단성이 약화되고 개별화, 다양화, 개인주의화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자기중심적 성향을 가진 취업계층이 늘고 있는 거예요. 이들은 근로시간·근무장소의 구속이나 사용자의 업무통제를 잘 받으려 하지 않아요. 현행 근로기준법이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플랫폼 노동자가 대표적이죠. 이처럼 노동의 토대와 근로조건에 대한 이해관계가 다양하게 분산되고 있습니다. 전면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속에서 어떻게 노동법을 혁신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 현 노동법에 한계가 있다는 말씀 같습니다

  “현 노동법은 20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근로기준법 중심입니다. 당장 서비스업에만 가도 충돌이 생겨요. 미용실이나 편의점에 고객이 없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시간은 어떻게 계산해야 하나요?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휴게시간인지,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대기시간인지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또한, 18시간, 140시간의 근로시간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은 획일적 통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공장노동자를 상정해 만든 법이어서 서비스업 중심의 현실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같은 노동법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에서 동시에 비판이 나옵니다

  “현재 취업자 다수가 노동법 외부에 포진해 있는데, 노동법은 제한된 내부자, 즉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노동계와 경영계는 서로 다른 대상을 주목하고 있어요. 노동계는 배달 라이더, 학습지 교사, 퀵서비스 같은 노동법 사각지대를 지적합니다. 이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돼서 산재 인정이 어렵고,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보장도 쉽지 않은 등 사회안전망이 취약하죠. 근로기준법 바깥에 있는 취업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니 현 노동법이 근로자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한편 내부자인 근로자들은 근로기준법을 독점적으로 누리게 됩니다. 기업은 성과 없는 직원도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올려줘야 하고 정년도 보장해줘야 해요. 해고는 더더욱 못 해요. 기업으로서는 그 돈이면 생산성 높은 신입사원을 여럿 뽑을 수 있는데도 노동법이 근로자를 과잉보호해서 채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 그렇다면 근로기준법을 새로운 법으로 대체해야 할까요

근로기준법은 나름의 시대적 역할이 있어요. 전통적인 산업부문에서 사용자의 엄격한 지휘·감독을 받아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에게 근로기준법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노동법의 사각지대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에요. 결과적으로는 노동법을 다층구조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One size does not fit all’이란 말처럼, 하나의 노동법으로는 모든 근로자 또는 취업자를 동일 수준으로 보호하지 못해요. 모든 취업자에게 적용되는 최소한의 규칙인 근로계약기본법을 제정하고, 그 위에 근로기준법이나 다른 맞춤형 보호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미래지향적인 노동법의 구조에요. 그 맥락에서 제3지대법, 중간지대법, 특수고용직보호법 담론이 나오고 있는 거죠.”

- 플랫폼 노동자는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요

  “플랫폼 사업자는 앱 개발해서 수수료만 받는데 왜 내가 사용자냐는 입장이죠. 고용을 전제로 플랫폼 노동자와 관계를 맺은 게 아니라고 항변하는 겁니다. 하지만 사업자가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창출했다면, 일부라도 그들에게 환원해야 한다고 봐요. 그 맥락에서 플랫폼 사업자가 보호 책임의 주체인 것이 더 타당합니다. 서비스 이용자에게 보호책임을 지울 순 없어요.”

- 52시간 근무제를 놓고도 논란이 거셉니다

  “52시간이 좋다 나쁘다는 단순한 프레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반 공장의 생산직 직원과 IT기업 프로그래머가 똑같이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할 순 없어요. 52시간을 기본값으로 하더라도, 이를 적용하기 부적절한 업종이 있어요. 직무에 다양한 유연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선진국엔 이미 다양한 유연근무제가 정착했어요. 예를 들어 핀란드 기업 노키아(NOKIA)는 업무 시간과 공간 모두 유연한 자율근무제를 시행합니다. 1주에 40시간만 일하면 돼요. 언제, 어디서 일하든 통제하지 않아요. 이렇게 근로자가 유연하게 업무 형태를 결정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은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의 수요에 부합하죠. 그런데 아직도 국내에서는 업무가 루틴하게 이뤄지는 근로자를 기준으로 근로시간을 절대적으로 줄이는 방향만을 모색합니다. ”

- 자율근무제가 국내에 도입될 수 있을까요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자율근무제의 출발점이라고 봐요. 대개 분기별로 업무 단위가 형성되니까, 한두 달 열심히 일해서 업무 끝내놓고, 나머지 시간을 휴가와 휴식으로 충전하는 겁니다. 기업에서는 그 기간의 근무시간 총량만 규제하면 되는 거죠. 석 달 동안 해야 할 업무와 시간을 정해주고, 이를 관리할 결정권을 직원에게 주는 겁니다. 이것을 근로시간 주권이라 해요. 회사도 업무 생산성을 높여 이익을 극대화하니까 서로 좋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근로시간 단축 방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재 논의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철저한 제조업 기반입니다. 근로자와 기업이 원하는 건 선택과 집중, 그리고 자율적인 업무처리 방식인데 정작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어요.”

- 노동 개혁은 어떠한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까요

  “산업구조가 바뀌고 노동방식이 변화하는 한 노동 개혁은 시대적 과제입니다. 개혁 방향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가 역지사지해야 해요. 노조는 어떻게 기업경쟁력 강화에 기여할지, 기업은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직원이 창의성을 발휘할지 고민해야죠. 무조건적 임금인상이나 단기적인 생산성만 추구하는 건 서로를 갉아먹는 거예요. 변화를 정확히 인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

 

조민호 기자 domino@

사진양가위 기자 fleeting@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