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부터 세계화가 본격화하며 기업들은 생산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인건비가 싼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프쇼어링이다.

  오프쇼어링이 기업들의 자발적인 조치였다면, 해외진출기업의 국내 복귀를 의미하는 리쇼어링은 정부 차원의 노력이 동반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저성장에 여러 국가들이 경기침체를 해결하고 국내 고용을 늘릴 방안 중 하나로 리쇼어링을 추진했다. 2013년부터는 한국도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법)’을 시행해 리쇼어링을 추진했다.

  최근 코로나19로 세계 공급사슬이 흔들리며 리쇼어링의 필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특별연설에서 한국형 뉴딜의 한 축으로 리쇼어링 정책의 활성화를 언급했다. 하지만 본지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한 5인의 전문가들은 국내 리쇼어링 정책의 전망이 흐릿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의 입장에서 인건비가 비싼 국내로 돌아올 이유가 없다. 정부의 유인책도 다른 나라에 비해 약하다. 리쇼어링 정책 자체가 별다른 경기 부양효과를 내지 못 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 전 세계적으로 리쇼어링이 추진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수영(Hobar t and William Smith Colleges) 교수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강화 조치의 일환으로 리쇼어링 정책을 시작했다. 금융위기를 잘 넘긴 독일을 보며 제조업이 튼튼해야 거시적 위기 속에서도 경제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의식이 생겼던 거다. 한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이러한 미국의 영향을 받아 추진됐다. 201312월부터 유턴법이 시행됐는데, 이처럼 중앙정부에서 리쇼어링 정책을 법으로 추진하는 사례는 드물다.

  강성진(정경대 경제학과) 교수(한국에서는)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FDI(외국인직접투자) 유입정책을 통해 국내에 해외 다국적기업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하지만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국내 제조업 비중이 낮아지자, 외국으로 투자·진출한 국내기업을 불러들여야 한다는 제안이 대두됐다.

  정무섭(동아대 국제무역학과) 교수리쇼어링이 확 불이 붙은 게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부터다. 사실상의 투자분쟁이다. 서로 수입품 관세를 높여가며 포커처럼 레이스를 하는 건데, 결국 수입을 많이 하는 쪽이 판돈이 많은 거다.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은) 중국이 못 버틸 수밖에 없다. 관세를 높이고, 법인세율을 파격적으로 낮춰 기업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트럼프의 전략이 주요했다(관세가 높으면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유리하다). 우리나라 기업도 이 시기에 미국으로 많이 진출했다.

-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이 위협받는다

  강성진 교수이번 코로나 사태 는 GVC(Global Value Chain)의 문제점을 강하게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 한국의 경우도 중국과의 무역이 중단되며 자동차 등 완성품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중간재 공급길이 막혔고, 이는 한국 공장의 중단으로까지 이어졌다. 만약 중간재 생산 공장들이 국내에 있었다면 이렇게 문제가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이수영 교수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농업에서 식량 주권을 강조하듯이 제조업 주권이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마스크, 인공호흡기 등이 부족하지만, 이러한 품목들을 중국 등에서 공수해 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물품은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국내에 생산설비를 갖추는 게 필요할 것 같다.

- 미국, 일본 등에 비교해 한국의 유턴 기업이 적은 편이다

  김태황(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한국은 법인세 수준,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보장 정도와 임금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우리나라의 법인세는 25%. 기업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경비 공제와 다양한 할인 혜택을 적용하면 실효 법인세는 10%대이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22%에서 25%로 인상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38%에서 28%, 트럼프 행정부에서 다시 21%로 인하했고 일본도 아베 정부에서 30%에서 23.2%로 인하한 흐름과 대조적이다.

  강성진 교수중요한 원인은 매우 빠른 한국의 인건비 증가 속도와 정부 규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급속히 증가하고 52시간 노동제 등으로 인건비의 경쟁력이 급속히 악화됐다. 수도권에 대한 신규 공장 신설 규제 및 외국인투자에 비해 인센티브가 적은 점 등도 한국 기업들이 국내에 대한 회귀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수영 교수산업부의 유턴법은 해외 투자를 철수하고 국내에 신규투자를 할 때만 유턴기업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그 숫자가 미국 및 유럽에서 발표하는 리쇼어링 건수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리쇼어링은 (세계적으로도) 제한된 현상이다. 대학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그룹에서 발표한 ‘UniCLUB MoRe’ 리쇼어링 데이터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2018년까지 유럽의 리쇼어링은 총 727건으로 나타난다. 리쇼어링이 활발했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은 2014년에 208개 회사가 리쇼어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2월, 한국경제연구원이 산업통상자원부, KOTRA, 각 시ㆍ도의 협조를 통해 파악한 U턴기업 총 30 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실제로 복귀한 사례를 살펴봐도 국내의 지원 정책보다는 중국 등 현지에서의 인건비 상승이 요인이 된 경우가 많다

  강성진 교수그렇다. 실제로 중국에 위치한 국내기업들이 인건비 경쟁력이 높고 각종 규제가 약한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현재 인건비 경쟁력으로 이들 국가와의 직접적인 경쟁은 어렵다. 그래서 (노동집약적 산업보다) 기술집약적인 산업에 대해 국내유입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김태황 교수중국의 기업 환경이 달라진 거지, 우리나라의 기업 환경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특히 중소기업은 생산비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인건비를 절감하는 효과가 설비 이전 비용보다 더 크다면 기동력 있게 생산지를 이동한다. 대기업의 경우에는 이미 설비투자 한 규모가 크고 철수 시 현지국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하므로 현지국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부분도 있다.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상당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연관돼 함께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는 전적으로 대기업의 이동 방향에 의존하기 때문에 단독으로 이동하기가 어렵다.

리쇼어링이 고용 창출이나 경기 침체의 완화에 도움이 되고 있나

  정무섭 교수지금은 투자에 국경이 없다. 국내에서 투자가 많이 일어나야 일자리가 생기고 부가가치가 생긴다. 투자를 어떻게든 국내로 끌어와야 하는데 그 방법의 하나가 리쇼어링이다. 그런데 리쇼어링이 한국에서는 별 성과가 없다. 미국처럼 관세를 올린다고 한국에 기업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법인세를 많이 깎든지 해서, 내부의 유인책을 높여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한국은 수도권에 R&D 센터가 많다. R&D 센터를 활용한 투자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국내·외 기업의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중국 기업 제품의 디자인만 한국에 위치한 회사에서 맡는 방식으로 GVC를 구성하는 거다. 생산 공장을 다시 들여오지는 못해도 서비스 영역의 기능을 한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이수영 교수리쇼어링 정책의 경제적 근거는 취약하다. 독일이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도 고용을 견고하게 유지한 비결은 제조업 비중이 높아서라기보다 유연한 노동시장에 있다는 연구가 있다. 리쇼어링을 해도 국내 고용이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오히려, 해외생산을 늘리는 것이 국내고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해외생산 기지에서 저임금 노동을 사용하면 국내에서는 중간 수준 노동자 고용이 높아질 수 있다. 각 나라가 비교우위에 집중하게 되는 거다.

- 그렇다면 국내 투자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이현훈(강원대 국제무역학과) 교수유턴 비용의 절반을 정부에서 대준다고 해도 기업들이 그것 때문에 돌아올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뿐 아니라 다른 나라 기업들까지 생산이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김태황 교수제도적 또는 정책적 대안으로 가능한 조치는 세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첫째, 기업에 대한 국민과 정부의 인식이 전환되도록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확산해야 한다. 일자리는 기업이 창출해야 지속 가능하다. 정부가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늘려나가면 단기적으로는 수월해도 장기적으로 재정 악화와 비효율성 등 중대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둘째, 기업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셋째는 노동시장 환경의 개선이다. 기업이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를 부담하는 만큼 리쇼어링을 활성화하려면 생산성 향상 또는 양질의 노동력 등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 박성수 시사부장 park@

인포그래픽 | 송유경 기자 c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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