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스스로 한 발명을 특허 출원하였다.

 미국의 인공지능 과학자인 스테판 탈러(Stephen Thaler) 박사가 만든 ‘DABUS’라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인명 구조용 램프프랙탈 음료 용기를 발명하고 이것이 ‘DABUS’의 이름으로 2019년 미국과 유럽 특허청에 특허 출원된 것이다. 두 특허청은 고민 끝에 인공지능은 출원인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등록을 거절하였지만, 사실 이것은 탈러 등이 이슈의 공론화를 위해 의도한 해프닝에 가깝고, 이미 오래전부터 인공지능이 이룩한 발명은 속속 세상에 나오고 있으며 그 진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한다. 실제로 탈러는 이미 1994년 창작형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11000소절의 음악을 작곡해 낸 일이 있다. 지금까지는 인공지능이 한 발명을 그 인공지능의 개발자가 특허를 받아오는 것이 관례였는데 드디어 인공지능 자체를 발명자로 드러내고 권리를 얻으려 하기에 이른 것이다.

 최근의 이런 사태가 가지는 함의는 남다르다. 인류 문명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을 기술문화라고 할 때 장차 인공지능이 그 중 기술의 영역을 인간으로부터 급격히 빼앗아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통해 양질의 기술을 더 빠르게 개발해 나간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런 기술의 독점은 막대한 부()와 직결되어 있고, 그 뒤에 인공지능을 움직이는 소수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욕망이 개재되는 한, 인간은 그다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발명이라는 것은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무수한 기술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널리 알고 취사선택을 잘하는가, 그리고 시뮬레이션을 거쳐 원하는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선행기술의 빅데이터와 딥 러닝 그리고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발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인간과 비교 불가의 경쟁력을 가지리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역량이 네트워크를 통해 집단화한다면 인간의 기술적 창의성이라는 것은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투석전이 벌어지는 들판 위에 폭격기가 나타나는 형국이라고 할까. 사실 인공지능은 음악, 디자인, 문예, 건축 등 다양한 문화적 창작 분야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인간의 것기계의 것이라는 본래적 구별(일종의 아우라(Aura)’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 남아 있다. 그러나 기술에는 이런 여지란 없으며, 인공지능은 아무런 장애나 거부감 없이 인간의 창작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인공지능이 타인의 특허권을 침해하는데 사용되는 경우인데, 이 또한 이미 상당 부분 현실이 되고 있다. 특허란 자신이 이룩한 발명을 세상에 공개하는 대가로 일정 기간 독점권을 보장받는 것인데, 인공지능이 고도화될수록 더욱 교묘하고 다양한 우회 방법을 개발해 공개된 기술정보를 활용할 것이다. 여기에는 결국 특허권이 미치지 않으므로 발명자로서는 더이상 특허제도를 이용할 동기를 갖지 않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앞으로 개발되는 기술은 특허 대신 영업비밀로 감추려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영업비밀을 지켜내거나 누가 먼저 발명을 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블록체인 등 타임 스탬프로 기술내용을 봉인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결국 기술에 관해 비밀이 주도권을 쥐는 닫힌 공동체, 기술의 편중과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사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인공지능이 이룩한 발명에 대해 게임의 룰을 마련해야 한다. 인공지능에 의한 발명은 어마어마한 경제적 부와 관련되기 때문에 그 결과물에 대한 분쟁도 심각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한 발명이라면 인공지능에게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일각의 논의도 있지만, 그 비현실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결국은 그 뒤에 있는 인간들에게 이익을 공평히 배분하고 그런 이익의 추구를 위해 기술을 남용하거나 극단적으로 다루지 않게 통제하는 제도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는 설마설마하던 상상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인공지능이 기술의 독점에 이용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준비 없는 미래는 비극일 수 있다.

 

조영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영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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