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테리이글턴
'악'
테리이글턴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비평가이자 이론가인 테리 이글턴은 <>(2010)에서 악을 비롯한 윤리적 문제에 관해 합리적이고 정교한 방식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여러 문학 텍스트, 신학, 정신분석과 홀로코스트를 종횡무진하면서 악이라는 실체를 거부하지 않고도 (evil)’부정(wickedness)’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악의 특성으로 원인과 합리성 부재, 사회적 조건화에 관한 거부, 불가해한 초월성을 향한 무한한 욕망, 무의미, 극단적 순수성, 공허함 등을 꼽는다. 반면 선은 유한한 것과 불완전한 것, 생명이 있는 것들을 향한 연민과 애정이라는 함의를 담고 있다. 악은 타인과 자기의 소멸을 통해 지리멸렬한 일상을 통쾌하게 날려버리는 것 같기에 인간의 조건 자체에 내재된 초월을 향한 욕망은 선보다 악을 거쳐 매력적으로 구현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글턴이 가장 경계하는 사고의 형태는, 특정 범행을 악이라고 호명함으로써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일상의 사회조건을 초월하는 행동으로 규정하고 논의와 협상의 가능성을 봉쇄해버리는 것이다. 그는 이런 행태야말로 물질을 향한 무한한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가 무한이라는 변질된 형이상학적 관념에 기대야 굴러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교묘하게 은폐하는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인간 타락의 원인을 전적으로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악이 일상의 사회조건을 넘어선다 해도 근본적으로 불가해한 것은 아니며, 선이 그렇듯 악 또한 사회적 조건화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유물론적 시각을 견지한다.

 이글턴의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사람은 악인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악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선천적인 과 후천적인 의 성질을 논하는 데 있어 영화 <조커>(2019)는 흥미로운 사례다. 주지하듯 <조커>는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조커(Joker)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의 삶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지리멸렬이다.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는 게 꿈이지만 현실에서는 늘 무시당한다. 직장을 잃어 분노로 가득한 상태에서 자신을 조롱하며 때리던 남자들을 우발적으로 총으로 쏴 죽인다. 그는 처음에는 죄책감에 사로잡히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응원하며 광대 시위를 하자 점차 자신감을 갖게 되고 마침내 서서히 조커로 변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지만 조커는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었다. 평상시에 그는 소심하고 자신의 말대로 존재감 없이 살았다.” 아이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환대적대로 대한다. 그런데 광대 분장을 한 상태에서 저지른 우발적인 살인이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광대 분장을 하면 그는 신나고 직설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그때는 웃음 발작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때 웃는 웃음은 진짜 웃음이다. 그리고 오직 그때만 해피하다.

 <>은 악을 비롯한 윤리적 문제에 관해 합리적이고 정교한 방식으로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글턴은 정치와 현실이 최악이라는 비극성에 관한 발본적 이해와 수용을 거쳐 새로운 것을 바랄 수 있다는 믿음을 비극적 휴머니즘으로 규정한다.

 

윤정용(초빙교수·세종캠 글로벌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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