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 그릇, 바로 건축이다. 서현(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의 건축은 사람과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공간으로 빚는다. 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연구실의 큰 창, 들어오는 빛을 따라간 책장 한쪽에는 한 가족의 삶을 고민한 집 해심헌의 건축 모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현 교수는 '건축의 가치는 사회의 모습을 공간으로 구현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현 교수는 '건축의 가치는 사회의 모습을 공간으로 구현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건축이 무엇인지 물었다. “건축은 인문학으로 시작해서 공학으로 끝나고, 결과물은 예술작품으로 남는 것이죠.” 그가 내린 정의다. 건축가는 건축물이 왜 그런 모습으로 자리 잡혀있는지, 사회의 가치와 건물이 구성하는 공간이 일치하는지 질문하고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대학을 지을 때는 현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학의 역할과 교육방식을 먼저 이해해야 그에 맞는 건축을 시작할 수 있어요. 공학은 이런 인문학적 질문들을 물리적 구조체로 구현하는 방식이고요. 그 결과물이 이전 시대의 집합적 다수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을 때 건축은 비로소 예술작품으로 남을 수 있죠. , 좋은 건축이 되기 위해선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명확히 목격하고, 공간으로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면 건축물의 가치는 낮아지는 건가요

물리적 구조체인 건물은 한 번 지으면 바꾸기 어렵지만, 건축물이 담은 사람과 조직은 유연하게 변화하죠. 특정 시점의 사회를 구현한 건축물과 모순 관계를 이룰 가능성이 큽니다. 건축물은 시간이 지나면 시대에 뒤떨어진 공간이 되겠죠. 하지만 아무 문제 없어요.

 도시는 도서관, 건물은 도서관 책장에 꽂힌 책과 같다고 봅니다. 신간 서적뿐 아니라 다양한 책으로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이 도서관의 덕목이듯, 각각의 책은 그 시대를 잘 설명할 수 있기만 하면 돼요. 결국, 건축가는 현시점에서 인간과 조직이 어떤 공간에 담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가를 고민해 공간으로 만들어내면 됩니다. 그 건물의 가치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죠.”

 

 ‘아파트 공화국인 대한민국. 2018년 통계청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한국 아파트 거주 가구 수는 전체 가구의 절반인 1000만에 이른다. 서현 교수도 한국사회를 가장 잘 설명하는 건축양식으로 아파트를 꼽았다. “아파트는 철저한 익명성을 추구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반영하죠. 층간소음을 생각해 보세요. 우린 소리를 통해 공간을 침해받는 것도 싫어합니다.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조그마한 불편도 참지 않죠. 자연스레 아파트 편의 수준이 세계 최고가 됐어요. 집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잡고, 지하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향후 아파트의 모습은 어떻게 진화할까요

크게 두 개의 변화 축이 보입니다. 첫 번째는 마당 있는 아파트예요. 한국사회는 익명성에 열광해 아파트를 선택하며 마당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에 살다 보면 또 마당 있는 집이 낭만 있어 보이죠. 신도시 주변에 있는 단독주택지로 이사도 가보지만, 지구단위 계획 때문에 담을 1m 이상 설치하지 못해요. 익명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데 말이에요. 그래서 건물을 미음 모양()으로 만들고 그 가운데에 마당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넓은 땅에서 아파트와 다를 게 없는 생활을 하는 거죠. 앞으로는 개인 마당이 가정마다 들어있는 아파트 형식이 나타날 것입니다.

 또, 아파트에 계층분화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봐요. 소득수준과 주거 형태에 따라 아파트의 모습이 달라지는 거죠. 대표적인 것이 여성 전용 아파트입니다. 지금까지는 익명의 중성 개체나 불특정한 가족을 주거 대상으로 상정해 아파트를 만들어왔지만, 사실 여성과 남성이 요구하는 공간 구조는 다릅니다. 여성들은 낯선 이가 탄 엘리베이터나 지하 주차장에서 상대적으로 더 불안할 수 있죠. 이제는 그러한 필요에 맞춘 건축공간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건축이 모이면 하나의 도시가 된다. 아름다운 도시는 건축물과 자연경관이 이루는 조화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혹은 유려한 건축물이 뽐내는 미학으로 완성되는 것일까. 건축가로서 그가 간직하는 문장은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공정한 사회가 만드는 것이라는 명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도시는 아름답지 않죠. 길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가장 공적인 공간인 길을 누가 제일 많이 점유하나요. 자동차죠.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지 않고 올라서 있어도 상관없어요. 사실, 가장 고려돼야 하는 존재는 보행인, 특히 장애가 있는 보행인입니다. 한국의 도시는 장애인이 다니기 어렵죠. 이는 정글입니다. 권력의 비대칭이 도시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공정한 사회의 개념은 현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자원을 공평한 방식으로 물려줘야 하지만, 현재 한국도시의 모습은 그와 거리가 멀죠. 우리는 자원을 낭비하며 작동하는 미국 도시 모델을 가져왔어요. 거주지를 따로 만들고, 산업지구를 거주지와 분리해 설계했습니다. 물건을 사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죠. 이런 자원낭비의 도시 모델은 공정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아요.”

 

- 대안적 도시 모델이 있을까요

주거로 좁혀보면, 아파트의 공급문제를 주목할 수 있어요.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제안은 건축 밀도 제한을 푸는 것입니다. 아파트값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아니라, 부족한 공급에 대한 의심으로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선 35층 이상의 건물을 세울 수 없어요. 건물의 층수가 제한되니, 주거 공간이 부족할 것이고, 이에 따라 아파트값은 오른다는 가정이 아파트값을 결정하는 하나의 요인이죠.

 궁극적으로는 좁은 땅에서 모여 사는 도시 모델을 만들어야 해요. 애초에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형성이 된 겁니다. 도시의 가치는 사람들 간의 교환이 얼마나 손쉽게 이루어지느냐에 있는 것이죠. 현재 한국도시는 교환을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신도시나 행정도시를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신도시인 분당에서 친구들과 맥주 한잔 마시기 위해선 가게가 밀집된 서현동까지 차를 몰고 나가야 하죠. 슬리퍼를 끌고 3분 안에 갈 가게가 있는 곳이 좋은 도시입니다. 거주지와 산업지구, 행정지구가 분리된 형태가 아니라 모두 함께 모여 있는 도시 모델이 필요해요.”

 

 변화하는 사회의 가치를 담는다는 건축, 서현 교수는 코로나19로 맞이할 새로운 시대에 대한 예상도 덧붙였다. 그의 관심사는 대학의 새로운 모습이다. “유연한 조직이었던 초기 대학에선 건물이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어요. 베를린 훔볼트 대학(Humbolt-Universität)을 시작으로 대학이 기관화되면서 건물이 중요해졌죠. 대학 본부가 생겨나고, 행정을 위한 건물들이 지어졌습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지식 전달체계에 변화가 일어났잖아요. 이제는 굳이 대면 수업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죠. 건축 양식적으로도 기관형이 아닌 새로운 대학의 모습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정용재 기자 ildo114@

사진양태은 기자 aur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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