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高大)가 민주주의를 뜨겁게 부르짖던 때가 있었다. 교수, 학생 할 것 없이 붉은 머리띠를 매고 광장을 지나 도로를 질주하면서,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고 외쳤다. 생각만 해도 괜스레 가슴이 벅찬 순간. 고려대학교는 그렇게 선언적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항해하며, ‘민족고대넉 자의 이름을 이 나라에 심었다.

  허나 언제나 시간만은 무심한 법. “기사도의 시대는 갔다. 궤변가들, 절약가들, 그리고 계산가들의 시대가 나왔다.”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탄식은 그의 사망 200년 후에도 얼마간 유효한 것이었을까. 일치된 염원이 이루어진 뒤로 세기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파편화의 아픔을 거치고 있다. 어쩌면 삶의 안정이 비로소 각자의 연필로 그려야만 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학기의 끝 무렵에서야 학우들의 대자보와 연서를 통해 수면 위로 오른 등록금 반환 문제는 과거와 현재진행의 문제를 동시에 반증하는 일이다. 민주주의가 바로 있다면,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학교는 원활한 수업이 불가한 형국에 권리의 대가인 등록금과 관련한 능동적인 입장 발표를 해야 한다. 허나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소통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도, 요구해도 아무런 답변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도 생겼다. 슬프고 분하다.

  그리고, 등록금 반환 문제에 동감하는 학생들은 그 해결을 위해서 지속적인 힘을 모아야 한다. 파편화된 사회,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님을 안다. 그러니 등록금반환행동 연대체(TF)가 구축된 지금,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며 힘을 보탤 수 있어야 한다.

  왜 등록금을 반환해야 하는가. 등록금에 해당하는 권리들이 온전히 보장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행사가 취소되었고, 시설이 폐쇄되거나 제한되었으며, 온라인 수업 전환으로 불편이 잇따랐다. 열화상 탐지기 구매, 휴학생 증가 등 - 공식적인 메시지는 없었다 - 학교 측의 예상치 못한 손실도 있었겠지만, 그 사정들의 대부분은 모든 학생들이 지출하는 등록금 및 그에 따른 권리와 직접 대응되지 않는다.

  코로나19 정국, 학교가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려는 노력을 보인 부분들도 있었다. 온라인 강의의 낮은 질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권리와 힘듦을 챙기려 노력하신 교수님들께서 계셨다. 이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감사와 함께, 등록금 반환 문제를 통해 드러난 소통 부재학생 참여에 대하여 성찰하고 더욱 연대하자. 소통은 뜨겁게, ‘등록금 반환은 차갑게 접근하여 해결하자.

  “소수가 남아 있고 그들에게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한 기사도의 시대는 결코 갈 수 없다는 복거일의 말을 믿는다. 우리는 나무다. 언젠가 가려진 하늘을 보기 위해, 땅 위를 오르고 있다. 허나 햇살이 잘 들지 않는 숲에서는 나무가 건강하기 어렵다. 숲은 자꾸만 그 견고한 모양을 유지하려고 한다.

  나무와 숲이 서로를 기억할 때에, 진정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온다. 함께 돌아보자.

 

전언호(문과대 국문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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